내 생애 최고의 순간
누군가 나에게 생애 최고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33년 전 첫째 딸이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1993년 3월 중순 새벽부터 불규칙적이던 진통이 10분 간격으로 오기 시작하여 부랴부랴 입원준비물을 챙겨 아내를 차에 태우고 평소 다니던 산부인과로 출발해 7시에 도착했다.
간호사가 “진통 간격이 5분 이내로 들어와야 하니 좀 더 기다려야 한다”라고 하여 기다리는데 진통이 2~3분으로 점점 짧아졌지만 기다리던 아이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진통이 14시간 동안 계속되어 아내는 거의 탈진상태가 되었는데 옆에 있던 나는 무기력하게 도와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말로만 “조금만 더 힘내!”라고 이야기하고 마음속으로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하게 태어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첫째를 자연분만 해야 둘째도 자연분만이 가능하고 산모에게도 좋다고 해서 사전에 의사 선생님에게 “자연분만을 꼭 하고 싶다”라고 의지를 보여서 그런지 자연분만을 시키기 위해 의사 선생님이 진땀을 흘리며 노력했지만 자연분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통시간이 15시간을 넘어가자 아내는 완전히 탈진하여 도저히 자연분만이 힘들겠다고 생각했는지 마지막 안간힘을 쓰면서도 “여보! 수술시켜 줘 ~ 응 ~ ” “ 여보! 수술시켜 줘 ~ 응 ~”하며 계속 내 손을 붙들고 애원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만 갈팡질팡 고민할 뿐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때 마침 의사 선생님이 보호자인 나를 부르더니 “자연분만을 시키려고 여태까지 노력했는데 잘 살펴보니 아기가 탯줄을 목에 감고 있어 자연분만이 어렵겠고 시간을 끌면 산모와 아기가 모두 위험하다.”라고 이야기해 나도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수술’에 동의하게 되었다.
결국은 이렇게 수술하게 될 것을 괜히 아내만 16시간 동안 고생시켰다는 자책감에 수술실 앞에 고개 숙이고 앉아 있는 동안 앞으로 아기가 태어나면 남보다 더 고생한 아내와 아이에게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또 다졌다.
드디어 23시 05분 수술실 앞에 설치된 ‘파란색 고추와 분홍색 하트’ 전광판에 ‘분홍색 하트’에 불이 들어오며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3.4kg의 갓난아기와 첫 대면 하는 순간 이렇게 조그만 몸이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그 후 아내는 입원실에서 빠르게 회복하며 하루하루 커가는 갓난아기의 미소를 보며 스스로 고생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제왕절개로 출산하면 회복기간이 길기에 아내가 입원한 동안 휴가내서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라는 책을 읽어가며 아기이름을 내손으로 작명했다.
나름 마음에 드는 이름을 여럿 지어놓고 아내에게 보여주고 그중에서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아름답게 사는 삶, 인생을 살아가는데 긍정적이고 주도적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으로 결정했다.
이처럼 어렵게 태어난 큰딸은 어느덧 30대 성인이 되었으니 세월 참 빠르다. 이제는 어엿한 중견 직장인으로 사회생활을 잘하는 것을 보면 대견하고 성격도 좋고 마음도 넓은 것을 보면 나를 닮지 않고 아내를 닮은 거 같아 다행이다. 그동안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잘 커주어 고맙고 늘 애틋한 마음이 든다.
지금도 큰딸이 힘들게 태어나 나에게 안겼을 때의 감동은 영원히 잊을 수 없고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