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차식은 흔히 골칫덩이 취급을 받는, 명절때나 되어야 30분 남짓 얼굴만 비치고 방으로 숨어버리는 술담배에 찌든 모습을 한 집안의 애물단지 삼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삼촌들이 몰래 방으로 불러들여서 들려주는 음악이 또 기가 막힌 법. 그 삼촌들은 항상 알고보면 어느 하나의 분야만큼은 전문가였고, 그들이 내뱉는 세상 욕은 이상하게 맞는말처럼 들리곤 했다.
그랬던 차식이 삼촌이 뉴오더와 디페쉬 모드 티셔츠를 입고 어두침침한 방에서 나왔다. 사실 이전 솔로 앨범들에서도 그의 뉴웨이브 사랑은 꾸준했지만 그의 전매특허인 K-가락, 또는 장단에 섞는 양념에 가까운 역할에 머물렀다. 이번 앨범에선 뉴웨이브가 전면에 나서며 늘 잿빛에 가까웠던 그의 옷장을 총천연색 홀치기 염색으로 물들였다.
80년대 수많은 클럽들을 지탱한 기둥같은 비트들과 서정적이고 댄서블한 신스 위에 널어진 목소리에서는 아직도 무기력과 분노가 문득문득 묻어나오며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팝의 감성을 만들어낸다. 거기에 중간중간 Connect와 Bird 같은 서정적이다 못해 빛나는 곡들이 정차식의 앨범을 듣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그의 음악은 늘 어지럽게 엮여있는 전신주 사이의 전선과 간판들 밑에서 바라본 빌라촌 풍경 같았다. 이번 앨범 또한 그 살풍경한 모습은 남아있으나 차식 삼촌은 이제 초저녁 빌라 옥상에서 하나 둘 켜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춤추는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