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는고?
나는 네덜란드에서 역사학자가 되는 훈련을 받고 있다. 이미 나는 스스로를 소개할 때 역사학자라고 소개를 하며, 나를 지도하시는 교수님도 역사학자라고 나를 부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은 스스로를 역사학자라고 부르기에는 준비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다행히도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역사학자로 발돋움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내가 어떻게 역사학자가 되어가는지에 대한 글을 이제 써보고자 한다.
한국에서는 언론홍보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숭실대학교에서 나는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학사는 언론홍보학으로, 석사는 신학으로 마쳤다. 학벌위주의 한국 사회에서는 내세울 것이 없는 학벌일지라도 다원성을 중시하는 네덜란드에서 나의 숭실대에서의 학업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숭실대학교에 입학하여 언론홍보학을 공부하며 사회과학적인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익혔고, 글쓰기 연습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이 학교의 언론학교수님은 싸쓰 킴이라고 불리는 김사승 교수님이었다. 아주 진지하게 학생들에게 언론 이론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이 이론 공부가 너무도 재미 있어 열심히 공부했고, 내용을 외워 군대에서 스스로 복습을 하기까지 했다. 김사승 교수님은 영국에서 석박사를 하고 오셔서 숭실대의 교편을 잡으셨고, 이전에는 문화일보 기자를 하셨다. 문화일보는 옐로 저널리즘의 느낌이 강해 교수님의 저널리스트로써의 커리어에 대한 큰 존경은 하기 어려웠지만, 저널리즘을 산업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그 방식은 참 좋았다.
PR이라고 불리는 학문은 김효숙 교수님으로부터 아주 잘 배웠다. 이 PR에서 배운 것으로 나의 공부에 대한 재원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주 소중한 것들을 배웠다. PR의 핵심은 한 기관이 다른 공중들과 관계를 잘 맺는것에 대한 원리이다. 내 공부를 서포트하는 많은 분들과 나와 관계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기에 현재 나의 공부가 가능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PR 강사로 오신 조임출이라는 분이 하신 이야기중 "약속시간에 지각을 할 지언정 이마에 물이라도 뭍히고 들어가라"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해지스 브랜드의 옷만 입으셨는데, 사람들 사이에서의 신용은 잃기는 쉬워도 쌓기는 어렵다는 관계의 핵심을 알려주신 분이다.
이 숭실대학교에서 또한 봉사의 중요성을 배웠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쌓는데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봉사이다. 봉사는 진심으로 하며 댓가를 바라지 않는다. 이미 댓가에 대한 전제가 없기 때문에 봉사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관계를 쌓는 것은 그리 어렵지가 않다. 어떤 사회에 진입할 경험을 쌓는데 봉사가 참 좋다. 그리고 무엇인가 어떤 일을 하는 것에 대해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봉사는 참으로 좋은 것이다. 이런 숭실에서의 학부생활을 마치고 나는 대학원에 입학하게 된다.
대학원은 언론홍보와는 관계 없는 기독교학 대학원 성서신학전공으로 입학을 하게 된다. 이런 입학의 동기에는 인문학에 대한 막연한 환상 같은 것이 자리했고, 당시 학부때 나의 혼을 쏙 빼놓은 강의를 하신 김회권이라는 구약학 교수님과, 학자로써 곤조의 멋이 있는 신약학 권연경 교수님,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한국인으로써 세계적인 리더십을 갖출 것을 당부하신 역사학자 박정신 교수님의 영향이 컸다. 박정신 교수님은 특별히 글로만 나의 생각을 말하지 말고 나가서 피켓이라도 들어라는 말을 해 주셨다. 그 분은 개혁적인 삶을 추구하시는 분으로 나와는 통하는 생각이 많았다.
성서학은 정말 즐거운 학문이었다. 텍스트를 읽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훈련을 했고, 또한 텍스트를 이해하는데 있어 많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하는 두뇌스포츠와 같은 학문이었다. 성경이라는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책을 공부한다는 자부심도 있었고, 성서학을 공부한 탓에 사람들이 흥미있어하는 해석을 내어 놓고 그 반응을 살피는 것도 참 좋았다. 성서학을 공부할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었다. 삶의 아주 즐거움을 준 순간이었다.
공부를 잘 한 이후 고려신학대학원이라는 목사가 되는 과정에 진학을 했다. 다니던 교회에서 여름 수련회에서 설교가 세상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경공부를 좋아하기도 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본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교단 신학교로 그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공부는 아주 힘이 들었다. 생계를 위해 과외를 뛰었고, 남는 모든 시간에는 공부를 해야 했다. 신학교는 숭실대학교보다는 분위기가 조금은 경직되어 있었지만, 합숙생활을 하는 탓에 인생의 인연들은 잘 만들 수 있었다. 지금 나의 아내도 신학대학원 입학동기의 소개로 만나게 되었다. 이곳에서 내가 들은 말은 "글을 잘 쓴다"라는 말이었다. 사실상 내 글을 아무것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그런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 때 글쓰는 일이 나의 천직이다라는 직감을 하게 되었다.
신학대학원에서 1년 6개월 공부를 하고 유학의 길이 열려 네덜란드에 와서 계속 신학을 공부했다. 1년간 간문화간 개혁주의 석사라는 코스를 공부해 학위를 받고, 성적이 나쁘지 않아 박사과정 진학을 권유받았다. 나는 어떤 과목으로 공부를 할까 하다가, 현재 역사학자이신 지도교수님이 "나와 함께 역사공부를 하고자 하는 한국학생이 왜 없냐?" 라는 질문을 했다는 것을 전해 들어, 저 분이라면 나를 학생으로 받아주실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여 이 분에게 박사지도를 요청했다. 이 분은 나를 임시로 받아 1년간 책을 읽게 하였고, 나는 네덜란드어로 쓰여진 벽돌과 같은 책들을 일일히 스캔하여 구글 번역기를 돌려 내용을 이해하고 리포트를 써서 작성했다. 그리고 드디어 학생으로 받아들여졌다.
모르고 있으면 다이아몬드도 돌로 보이듯, 역사를 공부하고 나니 역사가 왜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다소 황당할 수는 있지만 나는 역사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 역사를 알게 되었다. 역사가 좋아 역사학자가 된 것이 아니라, 역사학자가 되기로 하고 나서 역사가 좋아졌다. 사실 인생은 의도와 상관 없이 태어나고 경험을 통해 좋아하는 것과 취향이 생기고, 경험을 통해 자신의 타고난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먼저 해보고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이 없는 나는 2020년 역사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게 되었다.
역사가의 길을 걷겠다고 작정해보니 발견한 나의 과거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좋아했던 "학급문집 편찬"과 "학급일지 작성" 이었다. 학급문집은 중학교 2학년 때 편찬해서 발행했고, 학급일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썼다. 학급일지를 쓸 때는 조금 우스운 말들을 많이 썼다. 오늘 있었던 일을 적는 란에는 "김 아무개가 축구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등의 글을 썼다. 주로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그런 글을 썼는데, 아주 즐겁게 썼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의 특별한 과거는 사물놀이에서 북을 연주한 경험이다. 사물놀이에서 꽹가리와 장구는 아주 정밀한 컨트롤이 필요한 악기이다. 그러나 북은 단순하되 강한 힘을 가지고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역할을 한다. 중학교 2, 3학년 때 배우고 연주했던 사물놀이 북이 참 좋았고, 역사학도 이 사물놀이의 북과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논리가 철학과 비교해서 그리 복잡하지는 않지만, 역사의 중요 사건을 엮어 '치고 나가는' 형식으로 스토리를 만드는 그 점이 나는 좋았다. '사실'들이라는 힘있는 어떤 것을 다루는 것도 사물놀이의 북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네덜란드에 있는 캄펜/위트레흐트 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 정치역사를 공부하게 되었다. 고려신학대학원 때 처음 알게된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1837년에 태어나 1920년에 사망한 네덜란드의 기독교 정치지도자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아주 즐겁게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계속 이 역사공부를 하고 싶은 열망이 아주 크다.
이것이 내가 대략 역사공부를 하게 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내 개인적인 신앙적 이유도 빼 놓을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한 어떤 특별한 것들을 심겨두셨다고 생각을 한다. 세상이 보이는 것은 악하고 험하고 잔인하고 치열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것들이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하나님께서 반응을 하시는데, 그 반응을 하시는 장이 이 세계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다. 이런 것들을 실제 발견해나가는 연습과 실전을 역사학 공부를 통해 하고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