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화란 Dec 14. 2021

불안, 편안

화란인들에게 '대강'은 기본값이다

동네 체험식 농장에서 쇠덩어리 펌프로 놀고 있는 노아, 한국이라면 위험하다 물이 더럽다 등 이야기가 나올수도 ..


화란은 한 편으로는 살기가 그리 편한 나라는 아니다. 행정시스템은 느리고 주관적이기 짝이 없다. 시청에서 불쾌함을 겪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지금은 이 나라를 어느정도 이해하기에 그리 감정적인 동요가 없지만 처음 화란에서 살 때 나는 이 친구들도 별 수 없는 유러피안이구나 생각했다. 인종차별적인 어떤 것들이 존재하는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2019년 면허를 바꾸려 했다. 한국 면허가 있으면 구두로 건강테스트를 하고 네덜란드 면허로 바꿀 수 있다. 이 면허를 가지고 있다면 유럽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된다. 우리 대사관에서는 친절히 우리 면허를 네덜란드 면허로 바꾸는 방법을 설명해 두었다. 


내가 있는 지역 시청에 방문했다. 그러나 내 면허는 한국 것이어서 바꿀 수 없다고 했다. 나는 면허를 관장하는 정부부서의 홈페이지를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면허 교환 가능국에 한국이 있었다. 그러나 자기는 그런 것을 모른다며 서류 접수를 거절해 버렸다. 집에 돌아와 대사관에 전화를 했고, 다시 요청을 해 볼 텐데 다시 내 말을 무시하면 전화로 설명을 해 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시청에 이메일을 한 통 넣었다. 당신들이 잘 못 알고 있으며, 원하면 한국 대사관 직원과 통화를 시켜주겠다고 했다. 즉각적으로 전화가 왔고 시청으로 약속없이 오라고 했다. 시청 데스크에 있는데, 좀 전에 조금 뻐팅기던 나를 봤던 한 직원이 돌아가라고 이야기를 했다. 내가 막무가내로 들이댄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내 서류를 반려했던 직원이 다시 나와 나를 인도했고 정상적으로 면허 교환 서류를 접수할 수 있었다.


화란은 삶의 방식이 이런 식이다. 일단은 자기가 맞다 싶으면 그대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상대가 너가 틀렸다고 이야기를 해도 어느정도 버틴다. 그리고 정말 틀렸다고 이야기를 하면 그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한다.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할 때 까지 답을 하지 않는다. 매뉴얼대로 하기 원하는 한국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내지 않아도 될 세금을 내라고 하고, 없는 이유를 만들어 세금을 내라 했다. 돈이 없던 나는 끝까지 지방 규례까지 찾아 따졌고, 결국 학교 국제부는 내게 사과를 했다. 나도 이후로 큰 문제 삼지를 않았다. 이것이 화란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울 아버지가 항상 입버릇처름 하셨던 말씀은 

 인생 40 넘어가면 실수가 받아들여질 수 없다

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나 간다는 말이 이 한국 사람들이 정서를 잘 대변해 준다. 그렇지만 실수를 두려워하면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척이나 어려워진다. 속내 이야기를 오래 못하다 보면, 속내를 이야기 할 방법 자체를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실수를 피하기 위해 서론을 엄청 길게 빙빙 둘러 이야기 하고, 본론은 재미없게 짧게 이야기를 하고 만다. 


화란에 살며 좋은 것은 내 이야기를 해도, 좀 틀려도 내가 틀렸네 하고 허허 실실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화란 경찰이 신호위반에 과속을 한 사람을 추적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아주머니는 빨간 작은 차를 타고 가셨다. 위반을 많이 해 재판을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아주머니는 "변호사를 선임하는게 좋겠죠"라고 이야기를 했고, 경찰은 그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주 재미있는 것은 아주머니는 허허실실 웃으며 경찰에게 "신나게 계속 근무하세요" 라고 이야기를 하고 악수를 청했다. 경찰도 웃으며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했다. 


실수고 잘못이고 일어날 수 있는 것이 화란인들이 기본 마인드이다. 이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말이 Gezellig이라는 말이다. 발음은 허젤럭이라 하면 가장 가까울 텐데, 이 허젤럭은 우리의 '정'과 같이 화란인들이 삶의 가장 자연스러운 화란인들만의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릴렉스되고, 웃고, 농담을 주고 받고, 서로 길에서 반갑게 인사할 때 느껴지는 그 특유의 감정이 바로 허젤럭이다. 이 허젤럭과 칼같이 정확해야만하고 틀려서는 안된다는 사고방식은 같이 갈 수가 없다. 


화란 살이는 육체적으로는 여간 불편한게 많다. 그러나 긴장이 어느정도 풀린 사람들을 계속 보니 내 긴장도 덩달아 풀어진다. 이 낯선 곳에서 점점 긴장이 풀려가는 것 만해도 이 동네가 참 허젤럭한 동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안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회에서 행복이 찾아오기 어렵다. 반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서로 편안함을 추구하는 사회는 여유가 있다. 내 나이 36세 나의 기억력은 시간이 갈 수록 좋아지고 있다. 머리가 편하면 나이 들어도 머리가 좋아지나보다. 

작가의 이전글 거꾸로, 바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