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빼곤 다들 부자인 줄
제목 그대로다.
이 나라의 청년들은 대부분 자가용을 가지고 있다. 내 주변을 보면 자동차를 가진 이가 70프로, 오토바이는 25프로 정도인 것 같다. 아무것도 없는 이는 대략 5프로 정도 수준으로 매우 적은 느낌이다.
입사 첫날 트레이닝을 마치고 파할 때의 장면이 문득 생각난다. 회사 정문을 나가자마자 너나 할 것 없이 차 키를 꺼내더니 "삑, 삑, 삐빅!" 하는 불규칙한 선율이 터졌다. 하이톤의 장조 (Major)도 있고 낮은 톤의 단조 (Minor)도 있어 귀가 즐거웠다 (어릴 때 바이올린을 했었기 때문에 귀가 예민한 편이다).
그러고는 쿨하게 손을 흔들며 자신들의 차로 흩어진다.
물론 그 와중 나는 직선보행이다.
마치 모세가 신께 기도드려 둘로 갈랐던 홍해 바다를 혼자 건너가는 그런 느낌이었다.
한국인인 나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생소한 광경이었다. 왜냐면 우리나라 청년들은 차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 초년생의 경우 더욱 그렇다.
차량 운영 자체의 리스크가 크다는 게 문제다. 구매 비용은 생각보다 크지 않지만 유지비, 세금, 보험, 유류비 (기름 한 방울 안나는 나라) 등 고정비용이 상당하다. 작은 영토에 비해 인구는 많은 편이라 주차공간 찾는 것도 스트레스다.
그래서 이곳 말레이시아 청년들의 대부분이 차가 있는 것을 보고 처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 애들은 다 있는 집안 애들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닌 것이 이곳 로컬들의 월급이 나의 3분의 1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 적은 월급으로 도대체 어떻게 차량 유지비를 감당하는 걸까?
직접 물어보고 이유를 듣고 보니 납득이 가게 됐다. 일단 집에서 통근하니 렌트는 세이브. 차량은 중고 + 할부로 구입하며 대부분 '페로듀아 (Perodua)' 아니면 '프로톤 (Proton)'이라고 하는 로컬 브랜드를 탄다. 이 경우 외국 브랜드에 비해 가격이 훨씬 낮다.
국토가 넓어서인지 주차공간도 있는 편이고 보험료 또한 합리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장점은 말레이시아가 산유국이므로 기름값이 매우 저렴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와 접경 지역인 '조호 바루 (Johor Bahru)'라고 하는 곳은 기름을 넣으러 이곳까지 원정을 오는 싱가포르 사람들로 인해 말레이시아 로컬들과의 갈등이 빚어지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위의 열거한 장점들을 선행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교통이다. 내가 사는 말레이시아의 페낭은 교통이 안 좋은 편이다.
이건 사실 싱가포르를 제외한 어느 동남아시아 국가를 가도 같은 이슈가 될 것 같다. 페낭에서는 자가용이 없으면 이동에 제한이 많아진다. 수도인 케이엘 (KL)과 같은 지하철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이민자들이 페낭 정착을 망설이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대중교통으로는 버스가 있긴 하지만 서는 곳이 제한적이다. 실제 우리가 근무를 하게 되는 오피스가 있는 위치는 보통 길가에서 꽤 들어가야 하는 곳이 많은데 버스는 오직 큰 길가 위주로 선다.
즉 내려서 땡볕 아래를 걸어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버스 서비스의 질 또한 좋지 못하다. 정시에 오지 않으며 기사들은 불친절하고 내부도 위생적이지 못한 편이라 로컬들에게 이미지가 매우 안 좋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버스를 타는 계층은 외국인 노동자 계층이 주를 이룬다.
(이 글의 다음글은 '말레이시아 버스로 본 말레이시아의 계층사회'라는 주제로 쓸 예정이다.)
정리하면 이곳 로컬들이 (특히 젊은 사회 초년생조차도) 대부분 개인 차량을 소유하고 있는 이유는 '불편한 대중교통 + 합리적인 차량운영 비용', 이 두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나 빼곤 다들 부자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뭐 그런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