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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니정 Feb 11. 2024

말레이시아 화교들은 축구를 하지 않는다

화교들조차 축구를 못한다

아시안컵이 한창인 가운데 우리나라는 결국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한국인으로서는 아쉽지만 축구팬으로서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소위 '해줘 축구'라는 신박한 표현이 생성될 정도로 전술 따위는 전혀 없었고, 오직 특정 선수들에 대한 의존만을 드러낸 처참한 축구였다.



이번 대회는 흥미롭게도 말레이시아와 우리나라가 같은 조에 있었다.


모두가 한국의 일방적 승리를 예상했던 가운데 이게 웬걸?


3대 3 무승부였다. 상당히 대등한 경기였다.


점유율은 가져갔지만 경기 내용을 지배했다고 볼 수는 없었고, 오히려 말레이시아의 카운터 어택에 매번 죽을 쑤다 겨우 비겼다.


이번엔 공교롭게도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이 우리나라 축구계의 거목이라고 수 있는 김판곤 감독이었다.


그는 경기 내내 장발을 휘날리며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지도했다.


동점골을 먹힌 상황에서도 벤치에 앉아 쓴웃음이나 짓던 클린스만 감독과 비교되면서 더 큰 주목을 받게 됐다.   

김판곤 감독 (from 연합뉴스)


덕분에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말레이시아 국민들은 열광했다.


우승후보로 꼽히는 팀을 상대로 비긴 것도 모자라 대등한 경기를 펼쳤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러한 로컬들의 반응을 바로 옆에서 보는 와중에 의문점이 하나 생겼다.


그것은 바로 아시안컵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곧 축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절대다수가 '말레이계'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현재 나의 경우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지인들의 대부분은 화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 중 그 누구도 아시안컵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여태까지 한 명도 없다.


한국이라는 우승후보와 대등한 경기를 펼칠 정도로 발전한 말레이시아 축구임에도 불구하고 화교들은 그에 대해 별 반응이 없는 것이다. 



가만 생각해 보니 재작년 월드컵 때도 똑같았다.


말레이 동료들은 매일의 경기들을 업데이트하면서 업무 중에도 열띤 토론의 장을 여는 반면 화교 동료들은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심지어 한 번은 사무실 스크린으로 경기를 생중계해준 적도 있었는데 그 상황에서조차도 화교들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곁눈질만 하면서 자기 일만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월드컵이며 아시안컵이며 대회까지 갈 것도 아니었다.


그냥 '축구'라는 그 자체가 화교들과의 대화에서 주제가 되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음을 문득 깨달았다.


'저번 주에 친구들이랑 축구했다.' 정도 일상적인 말조차도 이 나라에 있는 2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들로부터 들어본 기억이 없다.


(이따금씩 주말에 풋살을 하러 갈 때마다 느끼는 게 중국인 같이 생긴 사람은 나 빼곤 한 명도 없다. 같이 하는 친구들도 전부 말레이다.) 



그래서 직접 물어봤다.


"궁금한 게 있는데... 너희는 축구를 안 해? 난 여기 중국 사람들이 축구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축구 문화 자체가 중국 문화에 없는 거야?"


대답은 심플했다.


"응, 안 해. 우리는 농구하고 배드민턴 많이 해. 아, 탁구도."


그렇다. 결론은 '안 한다'였다.


말레이시아에 와서 내가 경험한 수많은 문화 충격 중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축구'라는 스포츠는 인종, 국적, 나이 등을 초월하고 전지구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통상 그 나라의 국가대표팀이 축구를 못한다고 해서 민간 레벨에서의 축구 문화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아시안컵만 봐도 알 수 있다.


유럽이나 남미 같은 정통적인 축구 명문들에 비해 항상 몇 수 아래로 여겨졌던 아시아 국가들조차도 국민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과 열정만큼은 엄청나다.


Malaysia's badminton team (from New Straits Times)


화교 친구들에게 물어본 결과 그들이 축구를 안 하는 이유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학교에서 축구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다.


말레이시아에서 화교들이 다니는 중국인 학교는 시내에 있는 경우가 많아 학교가 기본적으로 작은 편이다.


운동장을 설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그나마 농구 코트나 배드민턴 코트 까지는 겨우 가능하다.


둘째, 햇빛에 피부가 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곳 부모 세대의 경우 자신의 아이들이 밖에서 놀면서 햇빛에 피부가 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동남아에서는 실제로 미와 귀티의 기준이 하얀 피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운동을 시켜도 농구, 배드민턴, 탁구와 같은 실내 스포츠만 장려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앞선 언급 했듯 '축구 문화' 자체가 발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 본토부터 비롯되어 대만,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중화권 전반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축구를 정말 끔찍하게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알 수 있듯이 16강에 진출한 팀들 중 중화권 팀은 한 팀도 없다.


중국은 조별리그 3경기 전부에서 '무득점' 경기를 펼치며 경악스러운 탈락을 했고, 홍콩은 깔끔하게 3전 전패로 탈락했다.


싱가포르와 대만은 이번 대회에 참가도 못했다. 전멸이다.


이쯤 되면 '중국인은 원래 축구를 못한다.'라는 일반화가 가능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중화권 전체의 공통적이고 고질적인 특징이다.


일례로 말레이시아의 축구 대표팀에서는 중국인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중국계가 대다수를 이루는 싱가포르에서도 마찬가지다.)


Malaysia's national football team (from New Straits Times)
Singapore's national football team (from New Straits Times)


이러한 경향을 보면 '민족성'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로 존재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중화 민족은 역사적으로 인도 차이나 반도 전역에 걸친 수 세대의 이민으로 지금의 중화권을 형성하였다.


그 과정에서 기존에 그 땅에 살았던 현지인들과의 갈등, 타협, 융합과 같은 로컬라이제이션 과정을 (Localization) 거치면서 지금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대만, 홍콩 등과 같은 나라가 탄생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유전자, 곧 같은 피로 연결되는 중화민족의 민족성만큼은 국경을 초월하고 고유하게 보존되는 느낌이다.


그래서일까? 본토 중국인들 뿐만 아니라 화교들조차도 축구를 끔찍하게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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