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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자 Sep 17. 2020

'핵전쟁' 직전까지 간 북한과 미국, 그리고 우리.

밥 우드워드의 신작 'Rage'를 통해 복기하는 2017년 위기.


1. 밥 우드워드 기자의 신작 “Rage”가 나오자마자 킨들 버전으로 읽기 시작했다. 

“Korea”를 검색해 한국/북한 검색된 내용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내려갔다.  북한, 한국, 북미관계 관련 내용에 대한 감상이다. 


2. 저자는 지금도 대부분의 미국인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2017년 7월-9월 두 달간 북한과 미국은 핵전쟁 코앞까지 갔었다고 기록한다.  그 기간 동안 당시 트럼프 정부 국방부 장관이었던 제임스 메티스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홀로 기도를 하기 위해 워싱턴 대성당을 찾았다. 


“신이시여. 수백만의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결정을 제가 해야 하는 것입니까 


해병대 출신 장관은 기도했다.


수번의 성당 방문 이후 그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결정했다. 


( 무력사용에 대한) 고민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다. 




3. 밥 우드워드는 북한 관련 내용 내내 “미국-북한” 양자 간 전면전이라 서술했지만, 더 정확히는 북한-대한민국/미국의 전면전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우리 땅에서 벌어지는, 우리 국민들의 피와 눈물을 요구로 하는, 우리가 이루어온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할 수는 있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4. 하지만 저자는 이 점을 철저히 간과한다.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기준을 본토를 향해 미사일이 날아올 경우로 산정하고, 그 경우 메티스를 비롯한 군 수뇌부가 취할 수 있는 군사옵션을 논한다.  


그 옵션은 북한의 항구도시를 경고성으로 치는 것일 수도, 핵무기를 투하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혹은 북한 지도부를 비밀리에 없애는 특수부대 작전일 수도 있다.   그 논의 속에 청와대가 설 자리는 없다.  적어도 그의 책 안에선 말이다. 




5. 우드워드를 비롯한 수많은 서방 언론인, 관료들은 북미 관계의 중심에 한국 또한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한국을 북미관계의 중심의제가 아닌 변방 이슈로 치환한다. 


그들은 남한과 북한이 1948년 이전까지 천년이 넘는 시간을 단일 국가 체제 아래서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했다는 사실을 정책결정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인식 속에 북미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청와대의 치열한 노력을 “현실감 없는 이상주의자들의 치기”로 냉소하기도 한다. 


6. 안타깝지만 “Rage”는 한반도를 바라보는 주류 서양 미디어의 시각을 나에게 다시 한번 각인시켜주는 책으로 남을 것 같다. 


서글프지만 힘으로 정의되는 냉정한 외교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닌 책으로 말이다.


ps. 지난 며칠간 책에 나온 ‘80개 핵무기’ 번역과 관련 번역 논란이 일었다.  조선일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은 유사시 미국이 핵무기 80기를 북한에 쏠 수 있는 작전계획이 있다고 했고,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들은 “핵무기 80기를 쓴다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핵무기 80기를 쓸 수도 있는 도발을 할 경우의 작전계획이란 뜻” 이라며 오역의 가능성을 말했다. 


청와대는 "해당 작계에 핵무기 사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라고 밝혔다. 


전자의 해석이 맞다면 우리 정부의 동의/인지 없이 일방적으로 한반도 내 80기에 달하는 핵무기 사용 계획을 세운 미국의 모습이 보이고, 후자의 해석이 맞다면 어느새 핵무기 80기를 지니고 있는 북한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무엇이 되었건 서글픈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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