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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k Jul 13. 2017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말의 사악함

헬조선 보고서

최근 '헬조선'이란 단어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 피로감과 더불어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큰 몫을 하는 것 같은데, 왜냐하면 실제로 변한 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청년들의 단어인 헬조선의 뿌리에는 청년실업이 있다. 21세기 들어 최악의 청년실업률에, 그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70만명의 '취준생'과 '공시생'이 이제는 너무 흔한 신분이 되어버렸다. 중,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무한경쟁 속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일할 곳이 없다니.. 가치도 없으면서 결과 또한 없는 경쟁에 왜 그렇게 몰두했나.. 이것이 지옥의 틀을 형성한다.


그렇다고 취업과 함께 '탈지옥'하는 것은 아니다. 우선 어딘지가 중요하다. 대기업이냐 중소기업이냐,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한 단계씩 내려갈수록 내 일에 대한 보상은 1/3이 날아간다. 즉, 소수의 원청(대기업과 공무원, 전문직 등)에 들어가지 못하면 미래를 대비할 수 없어 너무 불안하다. 그렇게 또다시 취준생이 늘어난다. 운 좋게 대기업에 들어가 돈을 많이 번다한들, 시간이 없다. 저녁이 없다. 자유가 없다. 일 뿐만 아니라 꼰대질에 받은 스트레스로 오늘도 '시발비용'을 지불한다. 가끔 연휴가 생기면 티켓을 끊고 잠시 '탈조선'을 하지만, 돌아오면 다시 시간이 없다. 물론 초과근무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하청 직원들에겐 꿈같은 이야기이다. 이렇게 누군가는 자기비하로 여겼던, 헬조선이 완성된다. 우리나라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현실을 바라본 것이다. 근데 이렇게 거대한 문제들을 어쩌면 한두 개의 단어로부터 풀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을 문화, 그리고 연공서열제(호봉제)가 그것이다.


갑을 문화와 호봉제는 조직의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갑을 문화는 우리 사회에 아주 진하게 녹아있다. 조선시대-일제시대-독재시대를 거쳐, 민주사회가 된지 채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았기에,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DNA가 아직 많이 남아있는 탓 일수 있다. 또한 징병제로 상당수의 남자들이 어린 나이에 2년 동안 철저한 상명하복 트레이닝을 받아 사회에 공급되는 원인도 있을 것이다. 초면에 이름보다 나이를 먼저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막내들의 커피심부름과 '손님은 왕이다'까지, 우리 주변은 생각보다 갑과 을의 미학으로 가득하.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을들의 눈치싸움이 벌어진다. 언제 어떻게 갑질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높으신 분이 친히 방문하시면,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 놓고 대기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은 말대답이기에 일단 '예'라고 하고, 홀로 밤을 새우며 머리를 싸맨다. 할 일이 없어도 감히 퇴근을 하지 못한다. 여기에 장유유정신으로부터 태어난 아주 단순한 시스템인 호봉제가 결합한다. 호봉제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을에서 시작해서 버티기만 하면 갑이 된다는 것이다. 젊을 때 조금만 고생하면 나중에 편할 수 있다. 그러니 고생하는 것은 참을 수 있고, 고생했으니까 편해도 된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과도 꼭 닮아 있어서 너무 당연한 성공방정식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정의의 관점은 차치하더라도, 갑을 문화와 호봉제의 결합은 엄청난 문제를 일으킨다. 극심한 비효율을 야기하여 조직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효율성과 생산성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청년들이 겠다는데 어떡하나. 이 문화와 제도의 결합은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이 점차 일을 놓게끔 만든다. 그것도 고액 연봉을 받으면서 말이다. 대한민국은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위로 갈수록 실무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직접 보고 들은 것만 해 공무원은 물론, 최고의 엘리트들이 모인다는 학계와 컨설팅계, 크리에이터들이 모인다는 광고계 마저 그러하다. 갑들의 업무는 지시와 검토가 다다. 직접 문서나 발표자료를 만들지 않는다. 키보드가 아닌 마우스와 전화, 회의 혹은 회식을 통해 업무를 한다. 물론 그만한 혜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수학문제를 눈으로만 풀면 실력이 느나? 세상이 변하는 만큼 그들은 퇴화되고 만다. 감을 잃는다. 그런데 지시와 검토가 무슨 의미가 있나? 아, 있다. 을들을 야근하게 만든다. 애매하고 두루뭉술한 지시는 을들의 노오력을 통해서만 회사를 돌아가게 한다.


열심히 일했던 그들이 청년들의 휴식을 빼앗아가고 있다.


얼마 전, 한 유명 외식업체가 1년간 알바생들에게 조금씩 떼어먹은 임금이 3년간의 총 영업이익과 맞먹는다는 기사가 났다. 을들을 착취하지 않으면 장사가 안되는 우리 기업들의 민낯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생산성은 미국의 절반 정도로, OECD 국가들 중 낮은 편에 속한다. 우리나라가 제조업 비율이 매우 높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한국 사람들'의 생산성은 더욱 낮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일하지 않는 갑들이 있다. 이들의 존재가 청년들의 취업을 가로 막는다. 게다가 그들은 회사 안에서 다른 청년들을 저임금에 고노동으로 부리고 있다. 그들은 젊은 시절 고생해서 회사와 대한민국을 키워내셨다. 공이 크신 분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열심히 일했던 그들이 청년들의 휴식을 빼앗아가고 있다. 사실 이것은 그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헬조선은 신성한 교육터를 원청에 들어가기 위한 전장으로 바꿔 놓았고, 그 결과 교육열과 사교육비 부담이 폭증하여 그들의 목을 죄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나라에 그렇게 큰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해보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우리가 단지 너무 늦게 출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 방향으로 걸레 짜듯 모든 걸 짜냈고, 어엿한 경제대국이 되었다. 하지만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고생했으니 쉬라는 말은 합리적인 것 같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매우 사악한 말이다. 결국 아랫사람들을 부리겠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떠날 생각하지 말고, 적당히 일하면서, 새로운 걸 배우면서, 후배들을 키우면서 쭉 그렇게 살아가자.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탈지옥의 방향이다.


어린놈이 뭘 안다고 지적질이 과했다. 불평만 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당이 떨어지고, 글이 너무 길어져서 대안에 관한 글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 이 글의 상당한 아이디어는 직접 뵌 적은 없지만 넘나 존경하는 주진형 선생님께 영향을 받았다. 사실 선생님의 블로그나 <경제, 알아야 바꾼다>를 읽어보는 게 백배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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