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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재 Feb 07. 2017

인내의 돌

어떤 여인의 고백 : The Patience Stone, 2012

들어가며.

2008년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수상한 소설 '인내의 돌'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프랑스 망명 작가 아티크 라히미가 프랑스어로 쓴 첫 작품이다. '인내의 돌'은 억압받는 이슬람 여성의 삶을 소재로 다루고 있으며,  전쟁으로 황폐해진 도시를 배경으로 아프간 여성의 고독과 소외, 그리고 실존을 간결하고 시적인 언어로 그려내었다.(출처: Daum 책)


중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이 영화가 처음이었다. 원작에 대한 설명을 보고 있으면 책을 읽어보진 못했으나 영화를 보고 난 후 소개글을 읽었을 때 '어떤 여인의 고백'은 원작의 느낌 그대로를 고스란히 담아낸 영화가 틀림없다고 여긴다. 아프가니스탄의 처절하고 황폐해진 환경의 이미지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음을 느끼며 동시에 여성인권에 관해 성숙한 고찰을 해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출처: 영화 <어떤 여인의 고백>

1.

남편은 누워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남편은 누워있고 아내가 되는 여인은 초조하게 남편 옆에 앉아 말을 꺼내고 있다. 그리고 지속되는 아프가니스탄의 내전 상황에서 불안과 초조함이 함께하고 있다. 여인은 이슬람의 종교인의 말을 빌려 2주 정도 지나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조금은 다급한 어투로 남편 곁을 지키고 있다. 남편 곁을 지키고 있던 여인은 쓰러진 남편을 일으키기 위해 집 주변의 약국에서 수액을 구하려고 하지만 돈이 없어 수액을 구입하지 못한 채 임시방편으로 설탕물을 남편 입에 물린다. 돈을 빌리기 위해 '이모'집을 찾았으나 '이모'는 이사를 가고 사라진 뒤였다. 이윽고 두 아이들이 쓰러진 남편 방에 들어가 장난을 치자, 여인은 급하게 아이들을 말린 후 방 밖으로 내보낸다. 여인은 지극정성으로 할 수 있는 선에서 모든 간호를 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 초반에 보이는 쓰러진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있던 여인은. 하루하루가 비희망적인 환경과 초조한 상황을 담담하고 절제된 표정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것이 마치 늘 있어왔던 일이었던 것처럼 조금은 두렵지만 침착하고 담담하게 움직인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의 현실에 적응하게 된다면, 이런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하는 보는 이의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여인의 행동은 침착하고 간결하다. 마치 이것이 지금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인 것처럼 말이다. '공포'의 그 끝은 결국 적응된, 순응된 '침착'함을 낳게 되는 상황을 만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전쟁과 폭동의 공포가 당연시되는 상황의 모습은 너무나도 절제되어 있기에 오히려 더 무서운 공포를 만들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출처 : 영화 <어떤 여인의 고백>

2.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도 남편의 증세는 차도를 보이질 않자 여인은 걱정과 근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지금의 상황이 어떻고, 지금의 하루는 어떤지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마치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나 둘 꺼내놓는 고해성사의 시작처럼. 이윽고 공습이 터지자, 여인은 거동을 할 수도 의식이 깨어있는지도 모를 남편을 두고 아이들과 함께 지하실로 향해 몸을 숨긴다. 전쟁의 상황에서 약자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을 보인다. 여인이 살고 있는 옆집의 가족들도 함께 지하실로 피신한다. 공습이 끝나자 여인은 남편의 상황을 보러 허겁지겁 올라온다. 안전함을 확인 하지만, 집에 군인들이 들어와 뒤적였다는 것을 확인해 남편에게 더욱 조급하고 걱정스럽게 말을 꺼낸다.


또 다른 공습과 더불어 지하실에서 피신한 뒤 나왔을 때. 잠잠하게 흘러가던 영화의 흐름이 한순간에 반전을 맞이한다. 옆집의 가족들 중 아주머니를 제외한 남은 가족이 군인들에 의해 살해당하자, 여인은 허겁지겁 짐을 챙겨 자신의 '이모'가 있는 곳으로 피신을 한다. 이사를 간 이모를 찾기 위해 이사 온 주인에게 이모의 거취를 애타게 물은 뒤, 이모를 찾아간다. 여인과 이모와의 만남은, 여인에게 커다란 변화를 이끌어내기 시작한다. 영화의 새로운 장이 열리기 시작하는 매개체가 되는 부분이다.


이모는 여인이 그동안 단절되어 살아온 여자의 삶을 일깨우는 매개체로서 자리하며, 여인이 가지지 못했던 사회와 사상의 자유와 억압되었던 한 사람의 인권의 힘을 일깨우는 존재로 자리한다. 아울러 이모와 여인의 대화에서, 남성성에 갇혀있는 이슬람 여성의 자유를 당당하며 거칠게 그려내나 그 모습은 자뭇 담담하고 간결한 것은 굉장히 인상 깊다. 이를 보고 난 후의 극 중의 남성들을 볼 때 의도한 건진 몰라도 굉장히 못나게 비친다.

출처 : 영화 <어떤 여인의 고백>

3.

여인은 이모와의 만남을 통해 억압된 자유성을 찾을 원동력을 얻었으나 그 자유를 표현할 계기를 갖추지 못했다. 여인에게는 부부의 인연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직 쓰러져있는, 누워있는 남편을 다시금 찾아간다. 남편을 돌보기 위해 몇 번을 왔다 갔을까. 공습을 하는 군인과 맞닥드리게 되며, 여인은 자신을 창녀라고 말하며 누워있는 남편을 돌보기 위해 몸을 팔고 다닌다고 한다. 이슬람 군인은 이런 여인의 모습에 종교, 코란에 반하는 행위며 그런 일은 결코 성스럽지 못한 일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욕을 퍼붓는다. 이후 한 젊은 군인이 들어고 이 대화 내용을 모두 듣게 된다. 이 날, 여인은 다시 이모집으로 돌아오게 되고. 있었던 일을 이모에게 털어놓자 이모는 잘했다고 칭찬하며 이슬람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언급한다. 영화의 시간이 이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 이슬람 여성 인권의 상태에 심각하게 고찰하게 된다.

출처 : 영화 <어떤 여인의 고백>

다음 날, 여인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남편에게 들렸다. 남편에게 있었던 일을 언급하며 끊임없이 말을 하게 된다. 마치 못다 한 말을 이제야 꺼내는 것처럼. 그때였다.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어제 왔던 젊은 군인이 들어와 돈을 던진 후 여인의 몸을 범한다. 여인은 말만 그렇게 했을 뿐, 몸을 파는 사람이 아님을 적극적으로 말하나 그런 이야기는 통하지 않는다. 그렇게 여인은 젊은 군인에 의해 범해졌다. 이후 젊은 군인은 떠났고 여인은 강간을 당했으나 남편을 지켰다는 것 하나에 안도감을 느낌과 동시에 새로운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극단적인 상황이 여인의 자유성을 깨운 것이었다.


이후 젊은 군인과의 관계를 꾸준히 맺으며, 젊은 군인에 대해 알아간다. 젊은이가 말더듬이라는 것과 군대 내의 폭력의 피해자라는 것. 그리고 여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귀 담아 들어준다는 것. 이런 부분에서 여인은 설렘을 느끼고 그 과정에서 비롯되는 감정선을 남편과의 있었던 이야기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남편과의 옛이야기선의 비교와 더불어 있었던 이야기에는, 남편의 불임과 더불어 나타나는 씨받이의 장면이 나타난다. 비교에 따른 이 이야기의 끝에, 쓰러져 침묵해 있는 남편을 깨우게 된다. 남편을 깨운 여인은 감탄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들떠있었다. 그리고 남편을 칼로 찌르게 된다.

출처 : 영화 <어떤 여인의 고백>

4.

선각자의 고해에 따른 돌은 절정에 다다르면 깨지게 된다고 이모가 여인에게 말해준다. 이 이야기는 결국 쓰러진 남편이 인내의 돌 그 자체임을 말한다. 선각자는 여인이 되는 것이고, 남편은 인내의 돌이 되는 셈이다. 여기서 곱씹어보아야 할 것은 왜 남편이 인내의 돌로 자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남편을 인내의 돌로 설정한 것은 그동안 자리하는 이슬람의 여성인권의 억압과 부조리로 점철된 사회의 풍토는 남성의 가부장적 중심에서 비롯됨을 밝히고 있다. 즉, 가부장적인 남성성의 권위적인 모습을 쓰러진 남편을 토대로 비춰내는 것이 아니라, 쓰러진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말하는 여인의 모습으로 비쳐내고 있다. 불편하게도 쓰러져 있는 남편은 오늘날의 여성들로서 얼마나 많은 고난과 시련 속에 묵묵히 버텨내는가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극 중의 코란을 찾는 모습이 두어 장면을 빌려 나타나는데, 그 끝에서는 코란을 찾지 않는 여인의 모습에서 종교에 따른 규율과 규제가 오히려 여성성을 억압하는 굴레 중 하나의 요소로 자리함을 무의식적으로 내던진다. 종교와 남성성의 가부장이 오늘날 이슬람 여성성을 억압한다는 모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덧붙여 코란을 찾고 독실한 이슬람 신자라고 말하며 남편을 살린 후 나가는 군인들의 모습과, 창녀라는 존재는 이슬람의 종교에서 신성화 되질 못한다는 말을 함과 동시에 여인에게 욕을 하던 군인의 모습은 종교와 남성성의 권위에 반하는 행위에 대해 비난적인 불통성을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영화 <어떤 여인의 고백>

영화의 전체적인 맥락은 끊임없이 '대화'를 통해 이어지고 펼쳐진다. 마치 못다 한 말을 이제야 한다는 것처럼 고해성사의 그 이미지를 빌려 무조건적인, 일방적인 수다가 펼쳐진다. 그럼에도 소통을 중시하는 부분이 부분적으로 강조되는데, 이는 말을 더듬는 젊은 군인과 여인의 관계에서 그려진다. 이슬람 사회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가 결국은 소통을 할 수 있는 침묵을 가지는 점에서 영화 내에서 등장하는 남성성과는 차별화된 이미지를 가진다. 귀 담아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귀담아 줄 수 있는 사회여야 말로 진정한 인권 신장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감추고 감춰왔던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어 들었을 때 침묵하던 인내의 돌을 깰 수 있음을 보면 지나간 부조리에 대한 악습과 폐단을 올바로이 잡기 위해서는 그 부조리를 깨야 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덧붙여 이는 종교적인 부분에서 깨달음이라는 것은 긴 시간과 인내와 끈기 끝에 깨달음을 얻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쩌면 이슬람의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부분을 빗대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출처 : 영화 <어떤 여인의 고백>

맺으며.

어떤 여인의 고백 끝에 다다르게 되면 이 영화를 보는 이들은 이슬람의 여성성, 여성인권에 대해 심각하게 고찰하게 될 것으로 여겨진다. 아울러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에는 반드시 '대화'라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필요하며 '대화'는 사람과의 관계를 보다 긴밀하고 정밀하며 사랑이라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고 여긴다. 오늘날 무엇보다 인권에 대한 부분이 강조되고, 인권에 대한 의미가 보다 긴밀하게 확장되는 때에 이러한 영화는 많은 부분에서 사람의 본질적인 부분에 질문을 던지게 된다.


'말'을 시작으로 '대화'를 바라며 '대화'속에서 '인정'과 '존중', '사랑'을 간절히 바랬던 한 여인의 고백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낀다. 우리가 '사랑'이라는 하나의 존재가치를 느끼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소통'에 대한 관점에 보다 폭넓은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여겨본다.


여인의 고백이 참으로 안타까우면서도 묵직하고 강하게 보는 이의 감정을 향해 주먹을 날린다. 안타까운 이슬람의 모습을 담담하고 간결하게 말하는 것을 보며 그곳의 여성들은 참으로 강함을 느끼게 된다. 보다 많은 부분에서 많은 것들이 개선되는 '소통'과 '사랑'이 함께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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