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부르면 운명적 모험이 시작된다.
모아나가 개봉하기 전, 디즈니의 신작에 기대가 되던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보러 가야지 라는 말을 생각과 입을 통해 항시 되새김질을 했다. 보러 가려는 마음을 굴뚝같이 또는 태산같이 격렬하고 거칠게 쌓아 올렸으나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말이 무색하게 모아나를 향한 나의 순수한 마음을 '귀찮음'이라는 거대한 타이탄에 가로막혀 모아나를 영접하기 위해 극장을 가질 않았다. 모아나라는, 생기발랄하고 역동적인, 또는 가슴 따듯한 메시지를 진수성찬처럼 차려놓고 날 기다리던 'CGV'와 '롯데시네마'는 크나큰 실망을 했으리라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후, 귀찮음이란 거대한 타이탄의 유혹에 넘어가 나태함과 권태에 잠겨있을 때. 얼마나 지났을까. 내 기억 속에는 디즈니의 감성을 느끼고자 했던 순수한 마음이 잊혀진 것을 문득 깨달았다. 그때였다. 이튿날이 되던 밤. IPTV에 한 소녀가 노를 들고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그 소녀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나는 이마를 짚었다. '아뿔싸! 나는 저 소녀를 왜 기다리게 했던가.' 하는 생각과 동시에 내 속에 잠들어 있던 순수한 디즈니의 동심을 다시 꺼내 들었다. 보고자 했던 마음과 열망에 비하면 한 참 늦었지만, 나의 감성과 동심을 모아나와 같이 바다로 떠나볼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자 했다. 그렇다. '나'는 이제서야 모아나의 손을 잡고 푸른 바다를 향해 모험을 떠났다.
모투누이의 모아나와 함께 떠나는 여행의 과정은 디즈니의 느낌과 환상 그 자체였다. 바다를 향해 바라보며, 바다를 향해 나아가려는 모아나의 모습에서 잃어버렸던 나의 꿈과 소망을 다시금 되찾을 수 있었다. 그렇다. 모아나는 어릴 적부터 바다를 향해, 자신의 잃어버린 꿈과 소망을 품고 있었다. 자신이 처한 현실의 위치의 중요성은 모아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꿈과 소망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모아나의 일대기는 마냥 희망적이진 않았다. 모아나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설득과 방향성의 제시에서 모아나는 현실에 안주해야 한다는 생각과 더불어 현실에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에 대해 집중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모아나에게 주어진 현실은 그랬다.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자신이 맡은 바를 충실히 행해야 하는, 자신이 위치한 현실의 공간을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 섬에 거주하는 이들의 삶이 진정한 가치였다. 이런 모습은 '현실'이라는 거대한 의제에 모아나 자신의 꿈과 소망을 짓눌러야 하는 안타까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모아나는 현실이라는 의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움직인다. 그러나 부족장인 아버지의 힘에 변변히 막히게 되고 이 과정은 모아나의 정체성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치는 과정이 그려진다. 부모의 과잉보호가 자식들의 재능과 자질을 억누르고, 발전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이쯤 되면 <주토피아>의 하마 아기가 말하는 모습처럼 '부모의 행동이 아이들에게 영향을 크게 미치는 것' 같다.
모아나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한다. 도중에 잠깐 자신의 꿈과 소망을 잊고 지냈지만, 모아나의 모험가 자질과 꿈과 소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모아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있다. 바로 모아나의 할머니 탈라다. 탈라는 그동안 묻혀 있던 오랜 전설을 깨기 위한 이가 자신의 손녀며, 바다의 선택 역시 손녀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남들이 알 수 없는 행동으로 끊임없이 모아나의 모험정신과 꿈을 자극했고, 끝내 모아나의 모험을 이끄는 매개체이자, 촉진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모험의 장은 바다가 만들지만 모험으로 모아나를 이끌어내는 것은 '믿음', '사랑', '헌신'의 메시지를 담은 할머니의 모습 그 자체였다. 이런 장면들은 응원과 격려가 오히려 자녀를 힘내게 함을 말해주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할머니의 메시지와 그동안 마을 사람들이 잊고 있던 민족적 가치를 깨달은 모아나는 바다를 향해 나아간다. 이때 울리는 'how far i'll go'는 모아나의 모험정신, 꿈과 소망, 그리고 가족을 위해, 전설을 위해 나아가는 함축적인 의미가 울려 퍼지면서 다시 한번 디즈니의 가치가 물씬 솟아오른다. 이제 본격적으로 어두운 기운에 타들어가는 섬과 섬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모아나의 여정이 시작된다.
모아나는 바다를 향해 나아가 할머니가 말했듯 '마우이'를 찾아 이 세계를 다시 아름답게 되돌리고자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마우이를 만난 모아나는, 영웅이 되고 싶었던 마우이를 다시금 영웅을 만들 수 있는 여러 차례의 과정을 겪었으며. 이 과정 속에서 단순한 소녀였던 모아나는 어느새 인내와 끈기와 근성을 가진 멋진 여성으로서 성장해 간다.
멋진 여성으로 성장하는 모아나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성장'이라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자리함을 디즈니는 거대한 바다와 모아나의 모험으로 보여주고 있다. 반신반인의 마우이를 만나고, 악의 테카에서 창조의 여신인 테피티로 이어지는 만남의 연대와 유대는 모아나가 가지는 자신이 누군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모습을 나타낸다.
영화 후반부의 테카와의 만남에서 'Know who you are'라는 곡에서 나타나듯 너는 또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테피티의 심장이 있어야 했던 곳으로 돌아가면서 악의 테카는 창조의 여신인 테피티로 돌아간다. 이러한 그림은 결국, 자기 자신의 돌아봄과 더불어 믿음, 사랑, 헌신 등의 속성과 타인과의 연대와 유대의 결속은 모든 것을 희망적이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디즈니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오늘에 이르러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메시지, 가족과 또는 타인과의 유대를 그려가는 그림이 많이 나타난다. 기존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연인 간의 따듯하고 뭉클한 사랑이야기였다면 이제는 많은 부분에서 개인과 개인을 연결하는 또는 개인과 개인을 알아보는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또는 나에게서 너에게, 너에게서 나에게로 오는 많은 감정과 속성과 가치의 재구현을 일궈 내면서 단순한 애니메이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메시지로 거대하게 몰아친다.
'모아나'의 모험적인 정신에서 우리의 삶에서 갖출 수 있는 용기를 엿볼 수 있다. 아울러 할머니 '탈라'의 모습에서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과 응원을, 반신반인의 '마우이'에게서 때로는 우리의 인생에서 슬럼프가 찾아온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그 슬럼프는 자신의 믿음으로부터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테피티'와 '테카'의 모습에서는 우리 자신의 마음속에 담긴 분노와 기쁨과 여러 감정의 결과는 자신으로부터 나타나게 되며, 자신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은 자신을 잘 아는 것에서 시작됨을 말한다.
단순한 모험적 애니메이션에서 그칠 수 있는 하나의 영화지만,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이처럼 메시지들을 아름답게 또는 흥미롭게 전달하는 것은 참으로 디즈니 답다는 말을 하고 싶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내 나이가 어린이가 아닌, 방년 27 임에도 마음을 울리게 만든다. 참으로 재밌다. 훗날 조카나 또는 내 아들, 딸과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본다면 기분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