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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웅재 Feb 25. 2017

타이타닉

제임스 카메론의 시대를 꿰뚫는 인권신장과 빙하가 만들어낸 상실의 아픔.

들어가며.

건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배였던 타이타닉은 길이 269m, 높이는 20층으로 증기기관 하나가 3층 가옥 크기였다. 당대의 혁신적인 기술이 접목된 타이타닉호는 이중바닥, 16개의 방수격실, 특정 수위가 되면 자동으로 닫히는 문 등으로 절대 가라앉지 않는 배, 일명 ‘불침선’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빙산에 대한 경고를 수용하지 않은 채 항해를 하던 타이타닉은 빙산에 배의 측면을 부딪히면서 방수격실이 무용지물 됨에 따라 2시간 만에 침몰되고 말았다. (출처: 네이버 캐스트)


영화 <타이타닉>은 1998년 2월 20일에 첫 개봉을 했다. 내가 8살이 되던 해였다. 그때 당시 우리 집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영화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셨으며, 비디오는 더더욱 거들 떠 보질 않으셨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시고 퇴근하신 아버지는 한 손에 비디오를 들고 오셨다. 주말 저녁을 함께 가족과 함께 먹으면서 보려고 빌려오신 비디오였다. 바로 타이타닉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세상에 이렇게 멋지고,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던 중 케이트 윈슬렛의 '로즈'가 옷을 벗는 장면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와 여동생의 눈을 급히 가렸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었다. 이때 즈음 내가 '性'에 눈을 뜨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닐까 싶다.

출처: 영화 <타이타닉>

1. 

주인공인 '로즈'의 회상으로부터 시작하는 타이타닉은 최초로 철 구조로 만든, 항해가 가능한, 거대한 '배'로서 당대의 혁신적인 기술의 집합이었다. 그렇기에 난다 긴다 하는 상위층들이 모이고, 유명세에 휩쓸린 여행자들도 몰렸다. 이 가운데 주인공인 '로즈'는 기울어진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약혼을 통해 만나는 상위층의 '칼 헉슬리'와 함께 타이타닉에 동승하게 된다. 이처럼 상위계층에 자리하고 있는 '로즈'와 달리 길바닥을 전전하던 화가 '잭 도슨'은 술집의 도박판에서 승리를 거둠에 따라 타이타닉의 3등석 티켓을 친구들과 함께 구하게 되면서 타이타닉에 탑승한다.


사실 첫 시작부터 극과 극의 신분적 차이가 자리하는 시작이 타이타닉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당시의 부익부 빈익빈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며, 산업혁명에 따른 발전 양상에 입각한 자본주의의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양상을 위트 있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즉, 시민혁명과 산업발전에 따라 신분 사회가 철폐되고 모든 이들이 평등권을 가지는 사회가 되었으나, '부'의 양상에 따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별적 관계가 그 당시에 꾸준히 존재함을 타이타닉의 첫 도입부부터 살펴볼 수 있다. 이처럼 '로즈'와 '잭'의 도입부를 살펴보면 보이지 않는 계급의 영상화를 통해서 자본주의가 가지는 부의 힘에 대해 고찰하게 되며, 사람이 신분적 자유를 누릴 수는 있으나, 자유권이 만들어내는 '예속성'과 '분별성'은 인간의 본질에 의해 지속적으로 '구분'되고 '변별'되고 '차별'이 있음을 느낀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을 시대의 투영을 통해 사랑이라는 키워드 하에 영화가 끝날 때까지 비추어내고 있다. 영화 중반부에 로즈와 잭의 도주에 따른 연출에서 부르주아지가 위층에서 놀고 있는 동안 배를 작동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비치는 것은. 얼핏 보면 로즈와 잭이 칼의 집사로부터 도망을 치는 부분으로 보이지만, 타이타닉이라는 거대한 자본을 움직이는 것은 부르주아들이 아닌 노동자들이었음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단순히 배에서 펼쳐지는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그 당시 시대의 역사를 '사랑'이라는 관점으로 모든 것을 비추고 있는 영화가 된다. 상당히 철학적이고 역사적인 셈이다.

출처 : 영화 <타이타닉>

2.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의 상호공존의 장인 타이타닉에서 로즈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지속적인 상위층의 문화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로즈는, 자신의 삶을 찾으려 끊임없이 내면에서 힘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힘겹다. 가문을 위해 자신의 삶을 져버려야 하는 희생적인 삶을 로즈는 바라지 않았다. 더군다나 칼 헉슬리는 자본가라고 하지만 너무 허세에 찌들어 있다. 칼은 로즈를 자신의 부가가치의 단면적인 예쁘고 예의 격식이 갖춰진 아내라는 껍데기적 요소로 여길 뿐. 한 사람으로서 또는 여인으로서, 연인으로서 사랑을 줄 대상은 아니었다. 그렇게 가문의 부흥이라는 거대한 의제에 갇혀있는 로즈는 자신의 삶을 되찾기에는 희망이 없다고 여기고 타이타닉의 한 귀퉁이에서 자살을 시도한다. 그때였다. 바람을 쐬러 나온 잭은 뛰어내리는 로즈를 보고 신발과 외투를 벗은 채 달려가 로즈의 손을 잡는다. 잭과 로즈의 강렬한 감정의 충돌은 이때부터였다.


이후 로즈는 잭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단순히 잭이 잘생긴 것만이 아니라 자신을 대해줄 때 하나의 인격체로서, 한 명의 여자로서 또는 평등한 권리의 사람으로서 자기 자신을 대해주는 남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칼의 일방적인 남성적 불통성과는 다르게 잭은 자신의 위치에서 타인의 위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타인의 위치에 맞추는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취하기 때문이었다. 부르주아지들의 고정된 규율과 규제에서 벗어나 자유와 그 속의 약속된 상호적인 질서를 바탕으로 인권 존중이 포함된 잭의 행동은. 그동안 부르주아지들의 구속에서 갇혀있던 로즈의 자아를 해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아울러 로즈를 대하는 잭의 행동에서는 여자는 여자다워야 한다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똑같은 사람과 사람의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개인이 지니는 관점을 끝까지 존중하고 있다. 


이쯤 되면 잭의 행동과 로즈의 반응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불균형적인 '상하 커뮤니케이션'이 정상적인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재정립이 됨에 따라, 여성인권의 신장에 대해 뚜렷한 이미지가 그려지게 된다. 사람이 사람을 향하고, 사람을 바라보며, 어떤 직업의 여하를 막론하고(화가의 생활을 설명할 때 드러난다.) '수평적인 관계'로 다가오는 잭은 부르주아지의 규율과 규제에 갇힌 로즈의 입장에서 가장 매력적인 사람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자유와 자아를 되찾아 주는 고마운 존재기도 하다.

출처: 영화 <타이타닉>

3.

로즈는 잭과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되찾는다. 잭과의 만남을 통해. 어릴 때부터 받아와야 했던 신부수업에서 자신의 자아를 억눌러야 했으며, 가문의 부흥과 어머니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합리적이지 못한 현실에서 벗어났다. 부르주아지에 가까운 자신이, 세상이 하층민이라고 천대하는 이에게서 오히려 구원을 받게 된다. 로즈는 그렇기에 배가 침몰하는 가운데에서도 잭을 구하러 침몰하는 배의 중턱까지 구하러 달려간다. 이 과정에서 칼이 로즈를 막아서지만, 로즈는 칼을 뿌리친다. 부르주아지의 불통성이자 당시 자리했던 남성의 권위성에 약자의, 여성의 인권이 수평적으로 맞춰지는 셈이다. 


로즈는 자신이 하지 못하리라, 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도끼를 들고 잭을 구해낸다. 영화에서 '남성'이 '여성'을 구하는 장면이 보편적이었다는 시대의 모습을 감안하면 참으로 획기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남성 역시, 여성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는 것과, 구출받을 수 있는 모습이 드러나면서 성별을 떠나 누구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후 잭과 로즈는 빠르게 침몰하는 배에서 살아남기 위해 달리기 시작한다. 배는 빠른 속도로 침몰하기 시작하고, 잭과 로즈는 배의 귀퉁이까지 오르게 되며 침몰에 준비하게 된다. 


음악가들의 마지막 연주가 울려 퍼지면서 영화의 시간은 끝을 향해 달려간다. 로즈의 회상이 끝을 맞이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쩌면 음악가들의 마지막 연주는 로즈의 회상에서 가장 마음 떨리는 순간으로 진입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이윽고 배는 완전 침몰하게 되고 잭과 로즈는 추운 북대서양의 바다에서 빠져 저체온으로 목숨을 잃기 직전이었다. 잭과 로즈는 수면 위에서 나무 판상에 오르려 했으나 한 사람밖에 오르질 못했다. 잭은 로즈를 올리고, 자신은 물가에서 로즈의 손을 잡으며 로즈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잭은 로즈에게 로즈의 자아를 찾아준 후 차가운 바다에서 잠이 들었다.

출처: 영화 <타이타닉>
출처: 영화 <타이타닉>

맺으며.

타이타닉은 로즈의 회상으로 그려지는 영화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잭과 로즈의 사랑이야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로즈의 개인적인 회상을 통해 당시의 시대를 투영하고 있다. 잭과 로즈의 뜨거운 사랑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지만 타이타닉이라는 거대한 공간이 아니라면 잭과 로즈의 사랑이야기 역시 그려내지 못할 것이다. 타이타닉의 제작 당시 제임스 카메론은 타이타닉의 묘사에 철두철미한 '완벽'을 가했다. 영화 제작 전반에 걸쳐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신경 쓸 정도로 '광기'를 보였고 그 덕분인지 영상미와 더불어 배경 요소까지 극찬을 받았다. 오스카(아카데미)에서 이루어진 14개의 노미네이트는 괜히 된 셈이 아님을 느낀다. 이쯤 되면 잭과 로즈의 사랑이야기가 아닌 타이타닉은 거대한 함선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2,200명이 넘는 인원이 탑승하고 침몰하는 과정에서 1,513명이 사망하고, 생존자는 불과 711명에 불과한 타이타닉은 어쩌면 인류의 해상사고에서 가장 마음 아프고 상실감이 가득한 사건일지도 모른다. 제임스 카메론은 이를 잊지 않고 스토리텔링의 힘을 불어넣어 잭과 로즈를 타이타닉에서 사랑하게 하였고, 로즈와 잭을 통해 시대의 인권신장에 대해 논했다. 상하의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로, 차별과 불평등이 없는 사람과 사람을 향하는 이야기를 말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영화다. 언제 봐도 새롭고 다시 보아도 다채로우며 마음 한 켠을 울린다. 로즈의 추억에서 시대의 역사를, 시대의 아픔을, 시대의 철학을 바라볼 수 있는 영화 타이타닉은 언제 봐도 좋은 영화가 틀림이 없다. 1998년 영화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출처: 영화 <타이타닉>
출처: 영화 <타이타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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