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공과금이자 성장의 수업료
눈이 소복이 쌓인 강가. 강물은 얼어붙은 듯 느릿하게 흐르고, 얼음 틈 사이로 맑은 물소리가 은근히 들린다. 바람은 매섭지만 공기는 오히려 투명하다. J와 ‘빛’은 두툼한 외투 깃을 여미고 강둑을 걸었다. 숨결은 허공에 흰 연기를 그리며 흩어졌다.
J가 갑자기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왜 삶은 이렇게 무겁게만 느껴질까. 매번 무언가 짊어지고 태어난 기분이야.”
빛은 살짝 미소 지으며.
“우리는 모두 보따리를 안고 태어나지. 전생에서 끝내지 못한 과제, 갚지 못한 빚 같은 것들 말이야. ‘인과’라고 하지. 원인이 있으면 결과는 반드시 존재하게 되는 것. 그게 카르마야.”
J는 억울한 표정이다.
“근데 카르마라는 건 저주 같아.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계속 따라오잖아.”
빛은 강가에 쌓인 눈을 바라본다.
“아니야. 카르마는 저주가 아니라 지난번에 못 끝낸 일을 다시 마무리할 기회야. 고마운 거지. 자신이 행한 행동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니?”
J는 의아한 듯 말한다.
“합리적? 난 죽으면 모든 것이 없어지면 좋겠는데. 그냥 아무것도 없는 잠을 자는 상태. 음, 꿈도 꾸지 않는 상태면 더 좋겠어.”
빛은 생각에 잠긴 듯하다 말을 꺼냈다.
“예를 들어, 어떤 범죄자가 길을 가던 너의 가족을 이유 없이 죽이고, 그 범죄자가 바로 자살했다면 어떻겠니? 넌 누구에게도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 없겠지.”
J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다.
“그렇겠지. 만약 범죄자에게 가족이 있다면 그들을 비방할 수는 있겠지만, 가족은 당사자가 아니기에 마냥 억울하기만 하겠지.”
빛이 말한다.
“그래서 인과가 있는 거야. 자살한 범죄자가 다음 생에서라도 벌을 받게 된다는 생각이 있어야 조금이라도 덜 억울하겠지.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함부로 죄짓고 자살하지 않았지.”
빛이 말을 이었다.
“새털처럼 가벼운 죽음이 있고, 무거운 죽음이 있어. 이번 생에 나쁜 짓을 하며 살다가 죽은 사람과 테레사 수녀처럼 평생 남을 위해 봉사하며 살다 간 죽음의 무게가 같은 게 합리적일까? 죽음이 모든 것을 없애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돌변시킨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던지 상관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죽어버리면 그만이잖아? 그게 합리적일까? 아니면 인과법이 작용해 자신이 뿌린 원인에 대해 결과를 받는 게 합리적일까?”
빛은 다시 말을 이었다.
“이번 생에 열심히 음악 관련 공부를 한 사람이 다음 생에서 음악 실력이 높아야 하지 않겠어?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더 높은 실력을 유지하는 게 합당하겠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사람이 태어났는데 음악적 재능이 있다면 그건 너무나 불공평하지 않겠어?”
J가 말한다.
“그렇지. 내가 한 만큼 보상받는 것과 비슷하네. 그게 합당한 것 같아.”
J가 말을 이었다.
“그럼 인과 즉, 카르마를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할까?”
빛이 말한다.
“너에게 현생에 힘든 고통이 오면 직면하는 거야. 피하지 말고. 고름을 방치하면 고생이 커지듯, 미루던 과제를 일찍 시작할수록 가볍게 풀려.”
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눈 위에 작은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J는 두 손을 호호 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카르마는 내가 뿌린 결과를 내가 받는 것이라는 거지? 결국 나의 책임이라는 말이지?”
빛이 말한다.
“공과금 고지서가 날아오면 피해자라고 원망할 게 아니라, 내 이름으로 날아온 고지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해. 빚을 갚듯 성실히 마주하면 돼.”
J가 바로 물었다.
“근데 왜 사람들은 도망치고 싶어 할까?”
빛이 확신한 말투로 말한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는 착각 때문이야. 변명하고 고집부릴수록 카르마는 돌덩이처럼 굳어버리지. 그럼 자연은 더 큰 힘을 써서라도 깨부수려고 해. 그때 고통은 배가 되고, 사람들은 ‘왜 나만 저주하냐!’고 원망하게 되는 거야.”
눈송이가 두 사람의 어깨에 살짝 내려앉았다. 차가웠지만, 대화는 점점 따뜻해졌다. J는 어깨의 눈송이를 가볍게 터치하듯 턴다.
“결국 중요한 건 회피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바로잡는 거구나.”
빛이 뭔가를 빠뜨린 것처럼 급하게 말한다.
“새로운 빚을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해. 작은 실수를 끊어내는 순간, 삶은 훨씬 가벼워져. 영혼의 짐은 무겁게만 쌓이지 않아.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면 그냥 타인을 위해 사랑과 자비를 실천해 버리면 돼.”
J는 ‘영혼의 짐은 무겁게만 쌓이지 않아’라는 말에 희망의 미소가 번졌다.
“그러니까 카르마도 내 영혼을 성장시켜 나가는 길의 일부라는 거네.”
빛이 답한다.
“카르마는 영혼의 공과금이자 동시에 성장의 수업료야. 우리가 빚을 청산할 때마다 의식은 더 맑아지고, 자유로워져.”
강 위로 달빛이 은빛 띠처럼 흘렀다. 한겨울의 매서움 속에서 오히려 세계가 더 정직하게 보였다. 빛은 강 위에 떠 있는 달빛을 보며.
“인생은 살만한 곳이야. 법칙대로만 산다면, 고통조차 길잡이가 되거든.”
J는 알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결국, 나의 약점을 정복하고 강점을 키우는 게 내 몫이겠지.”
빛은 미소 지으며.
“그래. 중요한 건 포기하지 않는 거야. 약점을 매일 조금씩 넘어설 때, 인과, 즉 카르마는 언젠가 다 녹아내릴 거야. 눈이 봄 햇살 아래서 스스로 녹듯이.”
두 사람은 잠시 말을 멈추고, 고요한 강가를 바라보았다. 차가운 겨울 속에서도 언젠가 올 따뜻한 봄을 믿듯, 삶의 무게 또한 결국은 해소될 것을 알기에, 마음은 서서히 가벼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