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 말에 대한 반론
거짓된 친절과 어리석은 우정은 두고두고 조심해야 한다.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라"라는 말이 처세술의 절반이라면,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아무것도 믿지 말라"가 나머지 절반이다.
분노나 미움을 말이나 표정으로 드러내는 것은 쓸모없고, 어리석고, 우스운 일이다. 따라서 이런 감정은 드러내지 않는 게 좋다. 분노나 미움을 완벽하게 드러내지 않을수록 잘못된 행위는 더 자명하게 보인다.
현명함은 말이 아닌 침묵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침묵하는 자에게는 현명함이, 어리석은 자에게는 허영심이 가득하다.
- 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이 말에는 불교, 그중에서도 소승불교의 영향이 짙게 배어 있다. 소승불교의 수행자들은 세계를 덧없고 무의미한 것으로 보고, 세속과의 관계를 최소화한 채 산속으로 들어가 침묵과 관조 속에서 해탈을 추구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사랑하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라’,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아무것도 믿지 말라’, 그리고 침묵 속에서 현명함을 드러내라는 태도 역시 결국 세계에 대한 개입을 거부하는 삶의 자세다. 이는 분명 개인에게는 편안함과 고요를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언제나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세상에는 사랑해야만 지켜낼 수 있는 가치가 있고, 침묵으로는 도저히 넘길 수 없는 불의가 존재한다. 때로는 미움을 감수하면서라도 잘못을 드러내야 하고, 침묵이 아닌 외침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을 가능성은 높아진다. 하지만 바로 그 상처야말로 개인을 성숙하게 만들고, 사회가 무너지는 것을 막는 마지막 저항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쇼펜하우어의 통찰은 삶의 한 국면에서는 유효하지만, 전부를 설명하지는 못한다. 그의 말은 세계로부터 물러날 때 빛을 발하지만, 세계를 책임져야 할 순간에는 오히려 한계를 드러낸다. 침묵이 지혜가 되는 때가 있는 만큼, 말과 행동이 양심이 되는 때 또한 존재한다. 그 지점을 가려낼 수 있는 판단력,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쇼펜하우어의 침묵보다 한 단계 더 어려운 지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