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의심부터다
‘진리’ ‘경지’ ‘도’ ‘신’ ‘이치’ ‘우주’ ‘영성’ ‘죽음’ ‘윤회’ 등 이런 단어가 보이면 일단 주의 깊게 보게 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진리인지 어떻게 압니까?” 석가모니는 이 질문을 받고 진리에 접근할 때 주의점을 말한다. 인상적이다.
첫째는 남한테 들었다고 옳다고 여기지 말라. 둘째는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왔다고 옳다고 여기지 말라. 셋째는 소문 들었다고 옳다고 여기지 말라. 넷째는 자신이 따르는 경전과 같다고 옳다고 여기지 말라. 부처님 자신의 말도 검증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다섯째는 추측으로 옳다고 여기지 말라. 여섯째는 체험 없는 추론을 옳다고 여기지 말라. 일곱째는 논리적이라고 옳다고 여기지 말라. 여덟째는 자신의 사유와 일치한다고 옳다고 여기지 말라. 아홉째는 권위자가 말했다고 옳다고 여기지 말라. 열 번째는 존경하는 수행자가 말했다고 옳다고 여기지 말라.
특히 아홉 번째 권위자에 깜빡 넘어가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권위자가 하는 말이라면 그냥 정답인 것처럼 여긴다. 예를 들면 컴퓨터 관련 권위자인데,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나 인간의 마음이 움직이는 원리 등 그와 별 관계없는 분야도 그가 말한 내용을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물론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권위자의 의견은 들어볼 여지는 있지만 당연히 검증해야 한다. 또 권위자가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내뱉은 의견도 진리를 찾기 위해서라면 의심해야한다. 세상은 권위자들의 말을 계속 뒤집으면서 발전했다.
소크라테스, 공자 등 현자들은 자신이 살던 그 시대의 고정관념에 속지 않았고 철저히 의심했다. 세상에 작은 영향이라도 끼친 사업가들도 모두 기존 권위와 관습에 의문을 던졌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때론 엄청난 권위들을 그냥 무시하기도 했다.
오늘도 우리는 자기계발을 위해 열심히 강의 듣고, 책 읽고, 공부하고, 명상하고, 운동한다. 이런 것들을 한 마디로 하면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진리를 발견해 나 자신과 주변에 적용하고 싶어서다. 진리는 의심부터다. 의심은 불쾌함이고 부적응자로 낙인 찍힐 위험을 높이는 행위다. 하지만 이런 것을 감수해야 새로운 것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