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할 때 이혼할 때를 가정해봐라!

마지막은 언제나 곁에 있다.

by 정강민

“결혼을 할 때는 이혼할 때를 가정해봐야 한다.”

유대인 명언이란다.

창업을 할 때도 마지막을 고려하면 좀 더 장기적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살아갈 때도 마뜩찮겠지만 ‘죽음’을 생각하는 게 그리 나쁠 게 없다. 그 생각이 자살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면, 자기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메멘토 모리(죽음을 생각하라)’라는 의식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있었다.


‘오늘은 수영장에서 무엇을 연습해볼까?’

‘물속에 떠 있는 입영을 해보자!’

6월 13일 이후 한 번도 수영을 빠진 적이 없다. 목표 없이 생활하는 나 자신에게 유일하게 규칙적 생활을 강요했던 것이 수영이다. 수영 후 샤워할 때 그 기분이 너무 좋아 단 하루도 빠지지 않았다. 코로나 전에 수영을 배운 것이 도움이 되었다. 코로나로 2년을 쉬었지만 수영의 4대 영법은 물속에 들어가니 대충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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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였다.

약 50일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지만, 그날은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수영장과 거리가 좀 먼 도서관에 있었다. ‘오늘은 빠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럴 마음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수영장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수영하기에 늘 약간의 불안함은 있었다. 수영을 하다보면 입에 물이 들어오기도 해 스타트라인에서는 늘 사람들이 침을 뱉는다.

그날은 물속에 들어가기 직전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수영하면 코로나 걸릴 것 같은데.....’


수영 후 집에 오니 감기기운이 있었다.

‘푹 자고나면 괜찮겠지!’하며 한 번도 수영을 빠지지 않아 몸이 피곤함을 느낀 것 같다며 스스로 진단했다. 다음 날 확실히 몸살기운이 돌았다. 점심에 뜨끈한 순대국을 먹었다. 국물의 뜨거움이 몸살 기운을 빠져나가게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날부터 몸은 더욱 가라앉았다. 그 다음날에는 목이 너무 아팠다. 밥도, 물도, 침을 넘길 때마다 바늘로 목구멍을 찌르는 것 같았다. 무엇을 넘길 때마다 매번 결심하고 행동을 옮겨야 할 정도였다.

거의 3년간 병원에 간적은 없었지만, 몸이 너무 아프니 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다. 의사선생님은 콧속으로 검사 막대기를 쑥 집어넣었다. 순간이지만 참기가 어려웠다. ‘잘 참으시네요!’ 라는 의사선생님의 한 마디가 위안이 되었다. 잠시 후 간호사는 “정강민님 코로나 양성입니다. 처방할 테니 약 먹으며 7일 동안 격리해주세요. 약이 더 필요하면 전화주세요. 방문하지 않아도 됩니다.”


코로나 확진 통보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죽음이 나에게도 충분히 가까이에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금은 10명 중 4~5명이 이미 확진을 받고 치료를 받아 코로나 걸린 게 뭐 엄청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개개인별로는 코로나에 확진되었을 때는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철 지난 코로나 격리 생활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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