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아이의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
유행은 시비조로 한 번 보고, 우습다고 한 번 보고 하는 사이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흉허물 없이 보이고 좋아 보이고 해서 결국은 시비하든 사람이나 흉보든 사람이나 다 같은 모양이 되어버리는 그런 것이다.
<<여성>>이라는 1930년대의 잡지에 실린 말입니다. 살아보니 이 말이 저는 유행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00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니 놀랍지 않나요?
저는 X세대에 속합니다. 제 기억으로 제가 20대였던 90년대에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보다 조금 빨랐을지도 모르겠네요. 여하튼 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노랑머리>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이들은 그리 좋은 모습으로 그려지지 않았지요. 나이 많은 어른들은 금빛이나 보랏빛으로 염색한 머리를 보면 ‘바리깡’으로 확 밀어버리고 싶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지요.
그런 사회 분위기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저 역시도 그때는 염색한 머리에 대한 반감이 있었는데요. 어느새 ‘시비조로 한 번 보고, 우습다고 한 번 보고 하는 사이에’ ‘호기심을 갖게 되고’ 점점 반감이 줄어들다가 슬며시 좋아 보여서 ‘나도 한 번 해볼까?’하는 단계에 오게 되더군요. 유행이 이렇게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저는 조금 제 눈에 낯설거나 기묘하거나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됐습니다. ‘왜 바지를 발목이 드러나도록 저렇게 깡충하게 입지?’ 그러다가 저 역시도 그런 바지를 입게 됐고 ‘왜 남자가 파마를 하는 거야?’하던 제가 ‘파마’를 하고 있으니까요.
사람들은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동료들에게는 종종 친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취미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해 ‘지적질’을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초면에도 하고요. 조금만 튀는 옷을 입거나 장신구를 하면 ‘안 어울린다’, ‘네가 10대냐’ 등의 지청구를 하기도 하지요.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아직 철이 덜든 탓에 저는 그런 ‘지적질’과 지청구를 꽤 많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 저는 빙긋, 웃습니다. 그분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욕하던 제 취미나 라이프 스타일을 따라 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제가 그랬고, 또 그런 모습들을 많이 봤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시비조로 한 번 보고, 우습다고 한 번 보고 하는 사이에’ 우리도 닮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별것 아닌 듯 하지만 생각보다 우리에게 큰 이득을 줍니다. 다른 이의 삶을 더욱 품 크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거든요.
지적질하는 꼰대 훈장처럼 사는 것보다는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모두를 위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