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하지 않는 우리를 창의적으로 바꿔주는 힘
창의성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내 안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눈을 감고 귀를 닫고 대신 끊임없이 외부로 자신의 생각을 발신합니다. 경험상 사람들은 자기 입에서 나온 말이나 생각은 자신의 소유라고 믿는 경향이 있더군요. 세상에서 그것을 자신이 처음으로 언급했는지 조차 알지 못하면서 말이지요. 아직 만화든 소설이든 영화든 드라마든 어떤 것으로도 구체화되지 않은 앙상한 뼈대의 시납시스 이야기를 떠들면서 ‘이건 내 아이디어니까 절대로 가져다 쓰지 말라’며 일종의 저작권을 주장합니다. 시쳇말로 ‘침 발라 놓는’ 것이지요. 대부분 '클리셰'이거나 쓸모없는 생각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폐적인 주장에 지나지 않지요.
어른이 되면 사람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타인이 아무리 이치에 닿는 말을 해도, 아무리 신상에 이익이 되는 말을 해도 여간해서는 듣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애써 귀를 막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옳다는 듯이 행동합니다.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다가 실패를 해도 운이 나빴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틀렸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이 50이 넘으면 제 자신을 포함해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을 꽤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더 이상 창의적일 수 없게 됩니다.
세상에는 이런 말이 마치 진리처럼 떠돕니다.
“사람 바꿔 쓰는 거 아니다.”
혹은
“사람 안 변한다. 기대하지 마라.”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조언이나 설득으로도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쉬 바꿀 수 없습니다. 경청하지 않으면 창의적일 수도 없고 자신을 변화시켜 성장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창의성이 외부에서 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타인의 말을 듣고 나서 생각보다 자신을 잘 바꿉니다. 그들은 책을 읽고 스스로의 껍질을 탈피합니다. 영화를 보다가 생각의 감옥을 탈출하기도 하고요. 여행을 통해 자아를 성장시킵니다. 그들은 중심이 단단하기에 생각이 바뀌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패배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않고요.
대학교 때 정말 너무 지루해서 강의 시간에 무엇을 배웠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고, 대신 교수님이 마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판서하듯 칠판 가득 필기를 하신 것만 또렷이 기억하는 전공 필수 과목이 있었습니다. 현대시 개론 정도의 강의명이었던 것 같은 데요. 그 교수님이 현대시에서 사용되는 은유를 정의하던 장면은 아주 분명하게 기억합니다.
‘서로 다른 것들의 폭력적 결합’
그것이 은유라고 가르치셨지요. 바로 그때 현대시의 심장이자 모든 창의성의 근원인 ‘은유’가 제 마음에 들어왔습니다.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나는 은유에 대한 가르침 하나 만으로 그 강의는 제게 베스트 강의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제 동기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요.)
그동안 너무 고정되어 있었던 우리 개개인의 생각이 외부의 충격으로 살짝 열리면서 서로 다른 것들이 뒤섞일 때, 새롭고 가치 있는 무엇인가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신’, ‘new’는 중요합니다. 신간을 읽고 신제품을 써보고 신작상영하는 영화를 보고 난생처음 가보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타인의 말을 잘 듣는 것이 단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수단 차원에서 중시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타인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경청이 없으면 창의적일 수 없습니다. 창의적인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으려면 바로 그와 같은 ‘신선한 충격’이 필요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스티브 잡스가 '해커 정신'을 강조한 이유도 저는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남의 것을 그대로 베끼라는 말이 아니지요. 남의 것을 가져다가 나의 생각과 충돌시켜 새롭고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라는 말이지요.
내 안에 있는 지루하고 고루한 것들에 폭력적으로 결합할 ‘새로운 것’을 우리는 경청을 통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여 경청은 능력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