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톱 잠바

염색한 미군 방한 점퍼

by 정건우

전톱 잠바 / 정건우


내 자랑 같아 글 쓰는 눈두덩이 깔끄럽긴 하지만, 중학생 때 나는 공부를 잘했다. 월말고사가 끝나면 교무실 복도에 전교 20등까지의 이름이 내걸렸는데 나는 항상 꼭대기에 있었다.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정상을 내준 적이 없었다. 결국 나는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렇다고 애면글면, 죽어라고 공부만 한 것은 아니었다. 봐야 할 책은 다 봤고, 씨름부에 가입해서 강원도 대회에도 나가보고, 군내 외 백일장엔 단골로 출전했다. 누구 말마따나 공부는 덤이었다. 기선을 제압한 뒤에 놓지 않았던 긴장과 경계, 반드시 이행했던 싸움의 복기처럼 늘 생각하며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내 생활의 루틴이었던 게 공부였다. 아버지는 그런 나의 재능에 무감각해 보였다. 인근에 사는 사촌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공부 잘하는 게 일가들에겐 특별한 관심거리가 못되었다.


그러나 나의 외곽은 달랐다. 집 앞의 자전거포 큰 형님은 항상 나를 “수재”라고 불렀다. “이보시게, 수재. 이리 와서 이 떡이나 하나 자시고 가시게”라며 만날 때마다 미소로 흐뭇해하셨다. 동네의 자랑이라는 것이다. 옆집의 보급부대 권상사 부인께서는 틈틈이 내가 봐준 덕에 딸내미 성적이 엄청나게 올랐다며 용돈을 책임져 주셨다. PX 물품 중 내가 쓸만한 것들이 수시로 공급되었다. 즐겨 들르던 두 군데의 문구점과 서점의 주인아줌마들도 진정으로 나의 방문을 환영해 주셨다. 천자 펜촉이나 원고지 한 권을 사도 덤으로 오는 필기구가 더 쏠쏠했다. 어쩌다 중앙시장 안을 돌아다니면, 여기저기서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이것 좀 먹고 가라며 소매를 잡아끌기 일쑤였다. 다소 곤혹스럽고 때로 귀찮기도 하고 은근히 걱정도 되는 복잡한 심정이 교차하곤 했다.


조석으로 부는 칼바람이 목을 움츠리게 하던 어느 늦가을, 선도부 학생주임 선생께서 부원 전원을 소집하셨다. 일방적이고 강압적이며 전근대적인 선도 활동을 이제 과감히 버리고, 공부하는 분위기로 전환하는 데 선도부가 앞장서라고 설파하시는 것이었다. 선도부장이 전교 일등이니 기가 막히게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7명의 부원이 따로 모여 대책을 논의하였다. 선생들도 못 만드는 공부 분위기를 무슨 얼어 죽을 하며 불만이 많았지만 흉내는 내야 했다. 갑론을박 난상토론 끝에 교대로 야간 순찰을 강화하는 데 합의를 보았다. 학생들의 쓸데없는 배회를 차단하되 부득이 나설 때는 반드시 책을 들고 다니도록 유도하기로 하였다. 특히 시장 안쪽을 특별하게 단속하기로 했다. 부모님 장사를 돕는답시고 거기서 노는 애들이 득시글거렸기 때문이었다.


강원도 양구는 최전방지역이라 10월 말은 조석으로 제법 쌀쌀하여 자칫 감기 걸리기에 딱 좋은 때였다. 공부는 잘했지만 가난했던 내가 야밤에 빈약한 입성으로 덜덜거리며 시내를 돌아다니는 꼴이 안돼 보였던지, 어느 날 아버지가 두툼한 점퍼를 한 개 구해서 주시는 것이었다. 까맣게 염색한 미군 방한 점퍼였는데, 소매가 내 손 끝에서 십 센티는 더 삐져나갔고, 허벅지까지 덮이는 크기가 걸쳐보니 한심했다. 포대자루 같은 모자까지 덮어쓰면 영락없는 군밤장수 한 가지였다. 나는 내심 툴툴대며 가난을 곱씹었지만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소매를 두어 번 걷고 허리의 끈을 졸라 매니 그럭저럭 입을 수는 있었다. 바람 불 때 뒤집어쓴 모자는 제법 아늑하였다. 와중에 까맣게 물든 점퍼의 복판을 가르는 황금빛 지퍼는 색상대비로 더욱 빛나는 것이 그나마 맘에 들었다.


입을수록 편안함과 아늑함이 더해가는 희한한 질감을 은근히 사랑하게 된 나는 그 장삼 같은 점퍼를 주야장천 걸치고 다녔다. 어쩌다가 길거리에서 헌병에게 걸려도 염색으로 탈바꿈한 옷을 어쩌지는 못하였다. 참으로 기가 막힌 옷이었다. 아무 데나 기대도 때가 안 타는 데다가, 학생 신분에 격식을 따로 갖출 필요가 없으니 그보다 실용적인 옷이 없었다. 흔하게 걸치고 다닐 만큼 대중적이지도 않고, 군사 지역인 양구에서도 쉽게 구하기 어려운 희소성도 있어 나만의 특별한 이미지를 구가하는 맛도 덤으로 있었다. 겨울을 나기에 나에겐 더할 나위 없이 딱 들어맞는 옷이었다. 내가 점퍼를 애지중지하는 모습이 안돼 보였는지 흡족하셨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는 보다 작은 사이즈의 점퍼를 한 벌 더 구해오셨다. 내 청춘의 겨울 한복판을 덥힌 그 점퍼를 나는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중앙시장을 돌아다니다가 나 같은 복장의 선도부원을 만나게 된 것이다. 왠지 묘하게도 잘 어울리는 게 멋있어서 군인 삼촌에게 구해달라고 매달렸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빵집 구석에 기대앉은 동급생도 까맣게 물들인 군방한복 외투를 걸친 채 반갑다고 손을 드는 것이었다. 명동 제과점 앞에서는 거의 나와 같은 유사 군복을 걸친 여학생이 생각 깊은 표정으로 걷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나는 의아해하였는데, 겨울방학에 접어들 무렵엔 고등학생들도 일부가 그 차림으로 명동 거리를 쏘다니기 시작하였다. 단골 서점에 들렀더니 주인아줌마가 백만 불짜리 미소로 식빵을 떼어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패션이 그런 거거든. 너, 그 잠바 이름이 뭔 줄 알아?. 애들이 '전톱 잠바'란다. 전교 Top이 입는 잠바란 얘기야. 니 얘기란 말이지”. 이런 넝마 같은 것이 패션?. 얼어 죽을, 나는 어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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