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묘한 피의 이끌림

程 氏 이야기

by 정건우

묘한 피의 이끌림 / 정건우

- 程 氏 이야기

2015년 통계청 인구조사 결과 한국에는 鄭, 丁, 程, 桯, 政, 定, 正, 情 등 여덟 종류의 정 씨가 있다고 한다. 그중 89.38%가 鄭, 10.13%가 丁, 0.48%가 程 씨로 사실상 정 씨는 99% 이상이 鄭 혹은 丁 씨다. 내 姓은 程이다. 하남(河南)과 한산(韓山)으로 양분됐던 본관 체계를 2007년에 하남으로 통합한 국에서 온 성씨다. 서기 979년 중국 송(宋) 태종조 때 태자대사에 제수된 후 낙양에 상경, 이후 하남으로 이주한 휘(諱) 우(羽)가 시조이다. 그리고 고려 충정왕 원년, 원나라에 볼모로 있던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모시고 귀화한 후 충남 한산에 터 잡은 18대손 한산군(韓山君) 휘 사조(思祖)가 한국 시조다. 그러니까 나는 시조의 40대, 한산군으로부터는 22대에 해당하는 직계 후손인 셈이다. 우리나라 程 씨의 총인구수는 2,000년 기준 약 32,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0.06%란다.

시조의 5대손에 정호(程顥, 1032~1085), 정이(程頤, 1033~1107)라는 북송조의 대유학자 형제가 있다. 이정자(二程子) 또는 정자(程子)로 일컬어지는 신유학의 태두이다. 오늘날에는 그 순기능과 역기능으로 논쟁되기도 하지만, 조선의 건국 명분과 통치 이념으로 자리 잡은 성리학(性理學)의 체계를 정립한 대학자가 이정자다. 정이천(程伊川)으로 불리던 동생이 [성즉리(性卽理)] - 인간의 본성(本性)은 곧 천리(天理) - 를 처음 제창하고 주자(朱子)가 계승한 정주학이 주자학으로 완성되는 명제를 제공했다. 성(性)은 만유의 근원인 리(理)이며 인간에게 내재된 보편적 인간성이고, 혼탁한 기(氣)로 더럽혀지지 않은 본연이라고 설파함으로써 송대 신유학의 철학적 체계를 리와 기로 정립하였다. 한국 시조인 한산군은 정이천 선생의 13대 직계 후손이다.

중국 사상사에는 두 차례 위대한 시기가 있었단다. 주(周) 왕조 말기(B.C. 500~221)와 송(宋) 대(960~1279)가 그것이다. 전자는 계속되는 상호 파멸적인 전쟁의 혼란 속에서 구 봉건 질서가 와해된 시기이며, 붕괴된 사회를 복구하려는 노력이 풍부하고도 다양한 경쟁적 사유 방식들 - 유가의 현실적 도덕주의, 도가의 신비주의, 묵자의 겸애설, 양주의 개인주의, 공손룡의 논리 분석, 음양오행가의 우주론, 법가의 객관적 법에 기초한 국가 개념 –을 낳은 시기이다. 전국 시대의 철학적 활동은 한(漢) 대(B.C. 206-A.D. 220)에 정치적 안정이 회복되고 봉건 귀족 체제를 대신한 중앙 집권적 관료 체제가 공고해짐으로써 마감되었다. 유학은 새로운 지배 계급의 이론이 되었으며 도가를 제외한 다른 모든 경쟁자들은 곧 사라지게 되었다.

송대의 신유학은 이와는 매우 다른 조건들에 의해 발생했단다. 한대에 확립된 유가적 관료 체제는 금세기에 이르기까지 끝내 없어지지 않았지만, 유가는 기원후 첫 세기부터 만연한 불교에 위협을 느꼈고 그것이 기존 질서가 의존하고 있는 군주와 가족에 대한 충성[忠孝]을 부정한다고 비난했다. 불교는 인도로부터 중국에 여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선진적인 형이상학 체계를 도입했고, 그 영향은 곧 그 대항자들의 사유에까지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것은 마침내 유가가 그것과 대적할 만한 체계를 만들도록 자극했다. 즉 이 새로운 운동의 동기는 유학자들이 중시해 온 도덕적 가치들을 뒷받침하기 위한 지적 기반을 발견해야 할 필요성에서 발현했다. 이러한 배경이 정이천의 지적 갈망을 재촉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고 1 때부터 나는 뜬금없이 『주역(周易)』에 푹 빠져 있었다. 알다시피 『주역』은 64괘(卦)의 운용을 통해 점(占)을 치는 안내서로서, 심오하기가 하늘 끝 같아 고등학생이 읽어 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책이다. 그러나 나는 뭔지 모르게 그 글자들이 파생, 분열하며 끄집어내는 현상들이 그렇게 신비하고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는 내게 점 칠 일이 있냐며 엄청 나무라시고 책을 불살라버리셨지만 나의 호기심을 이기지는 못하였다. 당연히 나는 점 칠 목적이 결코 아닌, 글자로 말미암은 변화의 세계에 한 동안 정신을 팔았다. 내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본 책이 정이천 선생이 주석한 『이천역전(伊川易傳)』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내친김에 나는 동양학을 잡식으로 공부하며 청춘의 한 시절을 내식대로 녹여갔다.

내 선조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본 것은 1997년, 대동 족보를 아버지께 물려받은 이후다. 사실 그 이전에 나는 족보니 조상이니 하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다. 다만 내 피가 중국에서 발현됐다는 사실만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대동보를 깜냥 것 들여다보면서, 명도(明道), 이천(伊川) 선조의 행장을 상세하게 알게 된 후로 내 지적 호기심의 원천이 뚜렷해짐에 적잖이 놀랐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퀘퀘묵은 학설에 왜 공학도인 내가 마치 무엇에 끌린 듯이 천착해 갔는지, 대학 교양과목을 망설임 없이 중국학 관련으로 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DNA, 그 오묘한 이중 나선 구조가 설계한 동질의 생명 의식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는 피의 농담(濃淡) 같은 것일 테다. 중국 철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런던대 앵거스 찰스 그레이엄(A. C. Graham, 1919~1991) 교수는 그의 탁월한 논문 「Two Chinese Philosophers」에서 “만약, 광범위한 영향력과 독창적인 공헌을 가지고 철학자의 위대성을 측정한다면, 정이천이 지난 2000년간 가장 위대한 유학 사상가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나는 정이천 선생의 35대 직계 후손이다. 크흠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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