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샌님 이야기
이제 그만 일어나셔야죠 / 정건우
- 어느 샌님 이야기
장가가기 1 년 전으로 기억한다. 4월 초, 일요일 오후였을 것이다. 포항 시내 육거리에서 동료와 차를 마시고 젊은이들로 복닥대는 우체국 앞을 지날 때였다. 전봇대 귀퉁이에 보기에 멀쩡한 신사 타입의 남자가 엉성하게 엎드려 구걸하고 있는 게 보였다. 분유통에 절하고 있는 모양이었는데, 바로 옆에 세 살쯤 돼 보이는 계집아이가 전봇대에 등을 기댄 채 사내를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았다. 가끔씩 발랄한 젊은이들이 분유통에 동전을 던지고 갔지만 상황은 어려워 보였다. 비록 바닥에 무릎을 꿇었으나 사내의 풍모는 구걸에 어림없어 보였다. 더욱이 딸로 보이는 아이의 인형 같은 외모와 천진난만함은 나를 남자 옆에 쪼그려 앉게 만들었다.
“이제 그만 일어나셔야죠” 남자에게 나지막이 말을 걸었다. 내가 쪼그려 앉을 때 잠깐 움찔하던 그가 빠르게 고개를 들더니 “도와주시려면 적선하시고 아니시면 그냥 가시지요”라며 수그린 채 낮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깔끔한 인상이 사십 대의 샌님으로 보였다. 나는 분유통에 2만 원을 넣고는 “죽도시장 헌 옷가게에서 작업복과 안전화를 사시고, 화요일 아침 8시까지 00중공업 경비실로 아이를 데리고 오세요”라고 말하고 일어서는 데 아이가 빤히 바라보는 것이다. 아이고, 그야말로 눈동자가 새끼 사슴 같았다. 울컥하는 기운이 감기처럼 콧등에 올라탔다. 집으로 오는 내내 머리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방금 내가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포항 말대로 오졸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가 지나갔지만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그날 저녁 식사 때 우체국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버지는 쯧쯧 혀를 차셨다. “그가 오겠냐? 온다면 방이 비었으니 먹고 자는 건 문제없겠지만, 애는 어째?”라고 하시며 경솔했다고 나무라시는 것이다. “에미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고 말이야” 그러면서 계모를 힐끔 쳐다보셨다. 가뜩이나 요즘 서먹한 계모였으므로 순간 나는 괜한 일을 벌였다고 후회하였다. 그런데 “아기야 내가 봐주면 되지요” 뜻밖의 대답을 내놓는 그녀에게 나는 정색을 하며 “그래 주실라우?” 하며 오랜만에 계모의 두 손을 다잡아주었다. 관계 개선의 기미가 생각하지 않은 일로 발생한 상황에서 아버지는 오랜만에 활짝 웃으셨다. “그런데 오기는 올까?” 하시며 한 달 전에 비워진 내 방 옆의 셋 방을 둘러보신다고 나가시는 것이다. 따라가서 확인해 보니 아무 문제가 없었다.
경비실에 가보니 남자가 딸과 함께 와있었다. 작업복과 안전화를 제법 야무지게 챙겨 입은 모습이 생경하였다. 나는 무척 반갑게 그와 악수했다. “안녕하세요?”하며 딸이 인사를 하는 데 그냥 귀여워 죽을 지경이었다. 남자를 미리 말해둔 사내 A 외주업체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일손이 부족해서 쩔쩔매던 상황이라 업체 대표는 반가워하였다. 또 미리 일러둔 대로 여직원은 아이를 챙겼다. 남자는 간단한 교육을 받은 후 바로 현장에 투입되었다. 당시 나는 00중공업 외주관리과 대리로 일하고 있었다. 남자에게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기거하라고 했더니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떡끄떡 하였다. 통근차로 퇴근하는 데 시내 여인숙에 있는 짐을 챙겨야 한다길래 나는 딸을 안고 그와 같이 여인숙으로 갔다. 고생한 흔적이 꼬질꼬질하게 번져 있는 여인숙이었다.
창고에 있던 간이 식탁, 간단한 조리기구와 식기, 내가 덮던 여분의 이불 등등 아버지는 당장 필요한 생필품 마련에 바쁘셨다. 거치식 옷걸이까지 챙겨주시고는 “한 달 방세는 내가 낼 것이니 열심히 일해서 나머지는 그대가 내시오”라며 잘 지내라고 격려를 해주셨다. 남자는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연거푸 수그려 인사만 하는 것이었다. 내친김에 수돗가 셋방 식구들에게 그를 데려가 인사를 시켰다. 초등학교 5학년 딸내미가 아이는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길길이 뛰며 좋아했다. 남자가 필요한 물품을 조금 더 준비한다며 마트를 소개해달라기에 같이 나갔다. 내 진심이 통했던지 그의 경계심이 한층 누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형님, 원래 말이 없으셨어요?” 내가 불쑥 그렇게 말하자 처음으로 그가 웃는 얼굴을 보였다. “아, 예” 그러면서 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상당기간 무엇인가에 억눌려 있었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는 참으로 열심히 일했다. 휴일과 야간 근무를 마다하지 않았다. 일에 잡념을 묻겠다는 듯 온 신경을 거기에 쏟았다. 그가 집에 온 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그의 저간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부산 초량에 있는 00 은행 부지점장이었단다. 불법 대출 누명을 뒤집어쓰고 쫓겨나 유랑하고 있다고 했다. 아내는 여섯 살 아들을 데리고 처가 쪽을 전전 중이고, 집은 가압류되고 채권자 등쌀에 도저히 부산에 있을 수 없어 떠돈 지 다섯 달 째라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 온 지 만 7개월째인 10월 중순, 드디어 혐의가 풀려 복직을 통보받은 그는 떠나기 전날 밤에 뜨거운 눈물로 이 사실을 알렸다. 몰라보게 큰 딸이 정이 든 수돗가 언니를 부둥켜안고 우는 바람에 온 식구가 따라 울었다. 내게 해 줄 것이 없다며 늘 미안해하던 그는 제법 두툼한 봉투를 내 책상에 놓고 떠났다. 아버지는 그가 쓰던 가재도구를 한동안 정리하지 않으셨다. 가끔씩 그의 방문을 열면 쾌남 스킨로션 향기가 그곳에 여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