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선, 마지막 근무
의아 물체 포착 / 정건우
84년 3월 말, 당시 해병대 방위병이었던 나는 드디어 마지막 근무를 서게 되었다. 내일 아침에 사단에 가서 소집해제 신고를 하면 내 병역 의무는 완수되는 것이다. 현역병이었다면 제대 말년에 대우를 받으며 편하게 시간이나 죽이고 있을지 몰랐지만, 하필 그때 특별 경계강화 근무 지시가 내려와서 전경들과 합동으로 해안선을 지키고 있던 시기였다. 백사장 한복판에 모래주머니로 우묵하게 진지를 만들어 방위병과 전경이 1명씩 들어가 밤 9시부터 일출 전까지 해안을 경계했다. 그러길 한 열흘쯤 지났을 것이다. 쌀쌀한 밤공기를 방한복으로 막으며 나는 제천 출신 유 상경과 망원경으로 바다를 감시하며 소집해제 전야를 보내고 있었다. 유 상경은 그런 나를 부러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목소리로 위로해 주었다. “제대 전날 밤샘 근무라니. 도대체 이게 뭐냐?”.
새벽 한 시경이었다. 해안선 300미터 해상에서 내 망원경에 의아 물체가 포착되었다. 안전과 경계 목적으로 설치한 부표 사이를 동력이 있는 듯한 물체가 좌우로 기동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농구공 만한 부표 사이를 야구공 크기로 도드라진 무언가가 일정한 속도로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좌우로 기동하는 것으로 보아 해류에 표류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판단이 서자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고 있어?” “유 상경, 망원경 들고 5, 6번 부표 사이를 봐, 지금 당장” 단호한 내 말에 놀란 유 상경이 후다닥 망원경을 집어 들고는 한동안 잠잠했다. “뭐가 움직이고 있지?” “그러네” “지금 위치는 어디야?” “8번 쪽이야” 나도 같은 위치를 보고 있으니 초소에 상황을 알리라고 했다. 유 상경이 급하게 무전기를 들었다.
초소의 지시대로 둘은 실탄 장전 상태를 점검했다. 어마어마한 긴장감과 일말의 불안감이 거친 파도처럼 온몸을 덮쳤다. 이판사판이라는 생각과 정확하게 쏴야 한다는 강박감이 뒤섞여 나는 몹시 흥분하였다. 유 상경도 호흡이 거칠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쫄지 말자 유 상경, 죽기밖에 더 하겠나?. 새끼들 침투하면 난 왼쪽 한놈을 정조준해서 쏠 테니 유 상경은 오른쪽을 맡아. 나머지는 그대로 갈기고 역사에 남자 시바” “시바, 그러자” 둘이 물체의 위치를 서로 확인하며 소총 개머리 판에 손을 올려놓고 긴장하고 있을 때, 초소의 전 병력이 달려와 진지 주위에 포진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개 중대 규모의 해병대 병력과 전경 타격대가 들이닥치며 백사장에 엎드려 쏴 자세로 위치하는 것이었다. 해병대 대위와 경찰 경감인 듯한 간부가 좁은 진지를 비집고 들어 왔다. “최초 발견자가 누구야?” 경찰이 낮은 소리로 묻자 유 상경이 “정 해병”이라고 대답하였다. 난 계속 망원경을 보고 있었다. 소곤거리는 것도 어지간히 방해가 될 만큼 내 긴장은 극에 달했다.
“7번에서 6번 쪽으로 움직이고 있네. 맞나?” “예, 그렇습니다. 방금 방향 전환했습니다” 소근 대던 대위는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물체의 위치를 나와 같이 확인하였다. “금속 같은 느낌이 안 드나? 어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구름이 잔뜩 끼었는데도 빛이 나는 느낌이야. 저거 혹시 잠수함 아냐?” 나에게 묻는지 독백인지 모르게 대위가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4번 부표 뒤쪽으로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던 물체가 좌측 45도 방향으로 달아나는 것이었다. 내가 상황을 말하자 대위와 경감이 거의 동시에 흥분된 목소리로 동의하였다. 둘이 진지를 박차고 나간 지 얼마 후 경비정인 듯한 고속정 두 척이 요란한 굉음을 내며 물체가 멀어진 쪽으로 내달리는 게 보였다. 곧이어 먼바다에 조명탄이 몇 발 터졌다. 백사장의 병력들이 급히 위치 이동 할 즈음 사단에서 왔다는 장교 한 명이 나를 불렀다.
내 이름과 출신지, 가족 관계, 학력 관계, 취미와 특기 등등 소소하고 자질구레한 것들을 캐묻는데 웃음이 났다. 이거 지금 뭐 하는 거지?. “히야, 마지막 근무를 빡세고 완벽하게 마무리하는구먼. 잘 되면 큰 상을 받을 거 같은데 그러길 빌자”며 장교는 그동안 수고했다고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날이 밝아 초소에서 후임과 전경들의 인사를 받고 나는 소집해제 신고를 하러 사단본부로 갔다. 14개월 만에 동기생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었지만 알아볼 만한 얼굴들은 몇 없었다. 신고 후, 간 밤의 장교가 커피 한 잔 하자며 찾아왔다. 소형 잠수정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잡으려 울진 앞바다까지 뒤졌지만 끝내 못 찾은 게 아쉽다며 새벽 상황을 얘기해 주었다. 카퍼레이드, 일계급 특진, 전국적 뉴스로 영웅이 될 뻔했던 기회를 놓쳐 정말 아쉽다는 그의 위로는 들리지 않았다. 다만 커피 들고 나를 찾아온 그의 미소 가득했던 인상만 오래 기억되었을 뿐이었다. 나의 군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