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을 내리며 전봇대 아래로 임하고 있는
두호시장에서 / 정건우
골목을 돌아 나오자
저 하늘 끝 높고 뾰족한 교회 탑 꼭대기에
누군가가 걸어 놓은 열쇠처럼
노을에 담긴 십자가
가슴 아래엔
전봇대에 등뼈를 펴는 할머니
원을 그린 듯 깔끔한 모서리로 전을 펼치고
미동도 표정도 없이
밥식혜, 감말랭이 등속을 살피고 있다
가지가지 발자국이 매대 아래에 쌓인다
분잡한 시장 안쪽, 천정 아래 형형한 삼파장 전구가
싸우듯 흥정하는 사람들을 내몰고
다시 불러들이고
창틀에 들러붙는 음식 냄새들
소음에 질려 사는 사람들이
분주한 발길과 손짓으로 이 바쁜 저녁에
여기저기서 또 소리를 튀긴다
바닥에서 질바닥거리는 냄새의 껍데기를 밟는다
할머니가 펼쳐 놓은 소쿠리 안쪽은
영하의 날씨도 숙성되는 곳
찌든 소리, 허튼 냄새를 저만치로 물린
저 단단한 적막
저 견고한 경계
저무는 시장통 난전에
노을을 내리며 전봇대 아래로 임하고 있는
예수같이 십자가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