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향기, 별빛에 그을고

추억의 담배, 담배는 혼자 피우는 거야

by 정건우

솔향기, 별빛에 그을고 / 정건우

- 추억의 담배, 담배는 혼자 피우는 거야


“양구에선 네가 최초로 피울걸?”. K는 자부심 가득한 말투로 담뱃불을 붙여주는 것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다소 까칠한 뒷맛이 느껴지는 신제품 담배 <솔>의 향기가 폐를 헹궜다. 80년 고 3 때, 8월이었다. 고향 서천 강변의 뚝방에서 보이는 사명산 자락에 밤별이 내려앉고 있었다. “괜찮네”. 나는 음미하듯 <솔> 향기에 집중하였다. 애연가들을 들뜨게 만들었던 <솔>을 시판하기도 전에 미리 맛보는 호사라니. 아버지가 전매청 춘천지사 간부였던 K의 호의에 감격해하며 입술이 데일 때까지 나는 필터를 빨았다. 담배를 안 피우는 K는 그런 내 모습을 어떤 생각으로 바라보았을까?. 야간 비행을 끝낸 에르나인틴 정찰기 한 대가 앵앵거리며 안대리 비행장 쪽으로 내리 깔리고 있었다. 담뱃불과 항공 점멸등의 조화가 기막혔다.


담배를 처음 피운 건 고 2, 학기말 때였다. 기계과 학도들에겐 꿈의 자격증인 FIC(정밀가공기능사) 실기 시험에 떨어진 날이었다. 2학기 시작과 동시에 치러진 시험에 2학년 18명이 응시하여 3명이 합격했다. 600명 기계과 동기들의 부러움을 받은 천재들이다. 1학기 때 600명 모두 이론시험에 응시, 18명이 합격했었다. 나도 반에서 유일하게 그 시험에 합격하여 찬사를 받았었다. 3학년 때 치르는 것이 정상인 시험인데, 이론에 합격하였으니 자격증 반은 취득한 셈이다. 앞으로 이론은 면제되고 실습만 죽어라고 하면 되었다. 2,000시간 이상 실습해야 딴 다는 자격증이다. 절반도 안 되는 실습 시간에 손이 무뎠던 내게는 매우 어려운 도전이었다. 실패했다는 데서 오는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패배감에 죽고 싶었다.

자괴감으로 치를 떨던 나는 그날 저녁, 위로차 몰려드는 동료들의 시선을 피해 기숙사 옥상에 죽치고 있었다. “세상 다 살은 사람 자세가 지금 너 같을 거다”. 어떻게 알고 왔는지 같은 문예반 P 선배가 다가오면서 말했다. 일어나려 하자 그가 손짓으로 그만두라면서 느닷없이 담배 한 가치를 건네는 것이었다. “어차피 피울 건데, 이것도 피우는 타이밍이 중요해. 적어도 지금 상황을 합리화는 시켜 주거든” 하며 어느새 꼽아 문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피워, 괜찮아, 아무것도 지금 너를 위로할 수 없어”. 엉겁결에 담배를 물자 그가 라이터를 갖다 댔다. 각 거북선 담배라고 했던가?. 삼분지 일만 폐로 보내고 나머지는 재주껏 뿜으라는 그의 방식이 마흔일곱 살까지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담배 세 가치를 두고 내 어깨를 치며 내려갔다.

담배 체질이었던지 나는 금세 애연가가 되었다. 3학년 초, 휴일 기숙사 방에서 나는 친구들과 담대하게 담배를 즐기다 순찰 중이던 사감 선생께 적발된 적이 있었다. 같이 피우던 셋이 동시에 꽁초를 창 밖으로 던지고 자는 척하는 사이 간발의 차이로 나만 걸린 것이다. “계속 피워라 야야, 연기 보니 한 놈이 아니네, 브라운 운동 볼륨이 한 개 분량이 아니다”. 화학 선생인 그가 집요하게 공범을 추궁했지만 내가 덮어쓸 수밖에 없었다. 밀대자루로 스무 대를 맞고도 혼자 피웠다고 하니, 규정상 할 수 없다며 아버지께 통보한다는 것이었다. 입학 후 처음으로 아버지가 오셨다. 난 퇴사를 각오했으나 아무 일도 없는 것이 신기했다. “담배는 혼자 피우는 거야”. 그 말씀을 남기고 애연가 아버지는 올라가셨다. 사감 선생이 아버지 군대 후임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 독자님들,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너에게로 가는 길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