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대왕 1 터널

마음의 자유를 태우고 가버리는 바람처럼

by 정건우


문무대왕 1 터널 / 정건우

이렇게 앞만 보고 가라는 게 그대 뜻이면

삼백예순 날인들 나는 못 갈까?

품어야 할 것들이

고작 왼쪽이나 오른쪽 후방에서

애오라지 나만 따라오고 있는 저 시선뿐

이들을 모두 데리고 태평양을 건너가라고 하면

나는 또 수백 번쯤 그리 못할까?

칠천오백사십삼 미터나 뻗어 있는 터널을

오 분지 일쯤 지났을 때,

빛과 어둠을 깔끔하게 갈라버린 내 눈동자 속으로

오롯이 빨려드는 저 궁금한 눈길들

달릴수록 어둠은 스스로 경계를 허물며 밝아지고

망막에 또렷한 그림자로 졸아들며

역광으로 빛나는 피사체들

마음의 자유를 태우고 가버리는 바람처럼

명왕성 까진 들 가지 못할까?.


문무대왕 1 터널은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장항리와 용동리를 잇는 동해고속도로에 위치한 7.5km 길이의 터널로 토함산 밑을 지난다. 업무차 이 터널을 가끔 지나가는데, 참으로 긴 터널이다. 인제 양양 터널, 재악산 터널 다음으로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긴 터널이라니 그 길이가 실감 난다.

워낙 긴 터널이라 운전할 때 많이 긴장해야 한다. 어둠이 짙기 때문이다. 한 오 분여를 깜깜한 암흑 속으로 달리는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어떤 지인은 이 터널을 지나가다 육박하는 어둠과 이질감의 공포로 국도로 돌아간 적도 있었다고 한다. 나 역시 긴장을 풀지 않고 온 신경을 백미러에 두고 운전에 집중한다. 터널을 빠져나와서야 비로소 안도하지만, 다시 돌아올 걱정으로 받는 스트레스도 제법 있는 편이다.

그러나 달리다 보면 어둠은 익숙해진다. 온 신경은 사이드와 백미러, 그리고 전방에 몰려 있다. 후방 차량의 속도와 이상 움직임, 앞 차와의 거리와 속도를 감안하여 방어 운전에 만전을 기하면 딱히 힘든 운전도 아니다. 터널 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마련한 주행 조건은 어찌 보면 단순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시선과 신경은 여기저기로 분산할 필요가 없도록 주로 측면과 후방에 밀집되어 있다.

살아가는 현실을 터널에 빗대어 보았다. 우리가 끝없이 드나드는 현실의 삶이 터널 안과 같다면, 달리는 그 수고는 훨씬 덜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내가 삶 속에서 대응해야 할 대상들이 측면과 후방에서 나를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라지만, 그 위험은 내 의지와 지혜로 능히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것 말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온갖 견제와 규제, 간섭, 불합리, 갈등과 반목 등등이 최소화되어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도 별문제가 없는 삶이라면, 아마 나는 이 나이에도 달나라에 갈 꿈을 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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