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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Feb 28. 2021

반 고흐 카페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집 근처에서 커피 콩을 볶을 때면,

나는 서둘러 창문을 열어 그 향기를 받아들인다."

         - 장 쟈크 루소(1712~ 1778)


무엇이든 늦되는 나는 원두커피 맛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더불어 카페의 매력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애정하는 카페가 두 군데 생겼는데, 한 곳은 10분 거리에 있으며 한강 노을을 고즈넉이 감상하기 좋고, 한 곳은 냇가를 건너고 산을 가로질러 큰 도로에서 벗어난 마을에 고즈넉히 숨어 있다. 자리만 허락하면 마스크를 쓰고 집에 온 지인과 함께 가기도, 기분이 뻗칠 땐 혼자 타박타박 걸어 고소한 라떼를 한잔 마시고 오기도 한다. 카페로 향할 때의 마음과 걷는 길, 그리고 가만히 앉아 커피맛을 음미해 보는 그 시간이 좋다. 책을 들고 가긴 하지만 글쎄...  집에서 읽는 게 더 낫다. 또 태블릿을 들고 가 구석진 자리에서 진짜 작가들처럼 다다닥~ 손을 바쁘게 놀리며 긴 시간 글을 쓰는 상상을 가끔 해보기도 하지만, 현실은 허리도 아프고 뒷목도 뻐근하여 오래 있기가 힘들게 뻔하다. 무엇보다 그렇게 손이 바쁠 만큼 생각이 줄지어 일어나지 않는다. 알고 보니 유명 작가도 술술 풀리는 날보다 머리칼을 쥐어뜯는 날이 더 많다더라.


아무튼  근사한 대형 프랜차이즈보다 자연과 어우러진 수수한 카페를 좋아하다 보니 문득 오래된 큰 나무를 벗 삼을 수 있는 곳에서 카페를 직접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전히 주인장 시간으로 돌아가는 카페 말이다. 손님을 고려하지 않는 카페에 누가 올까만 혹시 모르지 않나, 비슷한 취향으로 쉬고 싶을 때 조용히 기다려주는 손님이 있을지... 이런 상상도 아닌 공상을 할 정도로 카페가 내 생활에 슬며시 들어온 요즘, 좋아하는 작가 '신시아 라일런트'를 검색하다 이 제목을 발견하고는 몹시 궁금해졌다. 반 고흐도 벅찬데 반 고흐 카페라니! 어디에 이런 이름을 가진 카페가 있단 말인가. 만약 현실에서  만난다면 안 들어가고는 못 배길 것 같다

반 고흐 카페는 캔자스 플라워스의 중심가에 있다. (p7)

그렇군... 좀 멀군... 위치상으로 <바그다드 카페>랑은 조금 다른 분위기일 것이고... 그런데 여기도 역시 마법 같은 게 일어난단다. 중심가 옛 건물, 한때 극장이었던  옛 건물에 들어서 있어서 일까. 근데 이 마법이란 게 참 희한해서 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거라 어쩌면 마크(카페지기)의 열 살 먹은 딸 '클라라'에게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아이는 세상이 무슨 일이든 다 일어날 수 있는 곳이라고 믿으니까.  


일 분 전에는 없던 주머니쥐 하나가 클라라 눈에 보였다. 카페 창 밖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걸 발견한 이후 매일 8시만 되면 나무에 나타난다. 시내 중심가인데? 아무도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카페를 찾는 사람들, 나름의 복작거림으로 삐딱했던 사람들이 주머니쥐를 보자 마음이 순해지고 나누어준 음식들이 쌓이면서 인근 배고픈 동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머니쥐는 배고프지 않았으니까. 결정적으로 아내를 잃고 무기력하던 어떤 남자는 지나가다 이 광경을 발견하고 당장 차를 돌려 자신의 농장을 떠돌이 동물을 돌보는 집으로 바꾸고 찾아온 동물들과 삶의 의미를 다시 찾기 시작한다. 그 일이 있은 후 주머니쥐는 사라졌지만 카페 손님들과 떠돌이 동물들과의 나눔은 계속되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마법들이 이어진다. 번개가 카페에 내리친 후 음식이 저절로 조리되어 주인장 마크는 손님들 미래를 예언하는 시를 쓸 수 있었고, 손님으로부터 받은 머핀은 눈사태로 몸이 얼어붙은 꼬마들에게 온기를 불어넣기도, 옛 스타는 카페가 극장이었을 때 함께 공연한 사랑하는 친구(오래전에 죽었다!)를 기다리며 창가 자리에서 죽음을 기꺼이 맞기도 한다. 고양이의 lover가 되었다는 이유로 행운의 깃털을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던 지붕 위 갈매기, 떼들이 캘리포니아로 향하는 이삿짐센터 트럭을 얻어 타면서 모든 어수선함이 정리가 되는 정말 믿지 못할 일도 일어나고.


마크와 클라라의 반 고흐 카페는 일상이 마법이 될 수 있는 곳이었다. 카페 유리창에 촉촉이 물방울이 밸 정도로 뜨겁고 맛이 강한 커피로 손님들을 만족시키는 마크. 예스가 적힌 셔츠를 입고 전축으로 음악을 틀며 카페 곳곳을 정성스레 어루만지고 다듬는다. 클라라, 어린아이여서 일까. 아무런 편견이나 사심 없는 마음의 눈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지나치게 놀라거나 흥분하지 않는다. 바라보고 기다리며 마법 같은 일들을 언제든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마치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믿음까지 가지고서 말이다.


그럼 진정한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현실에서는 매우 안 풀려 가난한, 그래서 글쓰기를 포기하려는 사람이 이 카페에 들른다면? 불쌍하게도 전화번호부 책을 배달하고 겨우 교통비를 마련해  태평양으로 회색 고래를 보러 가는 길이었다. 흑흑! 얼마나 들런게 다행인지...  모름지기 진정한 작가는 마법을 알아볼 수 있는 존재라 반 고흐 카페의 긍정적 기운을 단박에 알아볼 수밖에 없다.

반 고흐 카페에서 작가는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자기가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이 무엇인가를 되새겼다. 갑자기 자신이 진정한 작가라는 것을, 전화번호부 책을 배달하거나 다이어트 책을 발표하기로 예정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이 한껏 부풀었다. 작가는 이 카페와 같은 이름의 화가가 일평생 판매한 그림이 한 점뿐이라는 사실도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속에 책이 한 권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p70)


그 책 제목은 바로 '반 ** 카페'라고.




작가가 카페를 찾아온 건 요즘처럼 이른 봄이다. 이른 봄은 완연한 봄을 가까이 두고도 몸과 마음이 힘든 계절이더라. 혹독했던 추위가 지나갔는데도 춥고 조금 쓸쓸하다. 온기를 불어넣어 줄 곧 다가 올 마법을 나도 생각해 본다. 한강변 카페 입구에 무지 높다란 은행나무가 있는데, 땅과 경계에 있는 둥치 주변에 보라색 제비꽃이 빼곡히 동그랗게 피어 난 걸 작년에 분명 보았다. 지난가을엔 회색빛 줄기만 앙상한 라벤더 밭을 하나 발견하기도 했고. 진정한 마법은 지구가 언제나 돌아 이렇게 무언가를 기다리는 마음에 화답하는 자연일 것이다.


* 이 글을 쓴 후 산책길 카페 은행나무의 마법을 관찰했습니다.

2021, 4월 2일과 6일
4월14일, 짜잔 피었죠!
7월 30일, 폭염날
11월9일, 노란은행잎 이불을 덮었다
2022년 2월 3일





* 2022년 4월, 이 카페가 있는 동네를 떠나 이사를 갔습니다. 멀지않은 곳이라 가끔 이 동네를 지날땐 카페를 들리네요.

2022, 9, 1
제비꽃만 있던곳에 다른 생명들도 많이 이사를 왔네요. 지난 겨울 눈에 덮여있던 맥문동이 몸집을 많이 불렸군요..담쟁이 덩쿨도 보이니 앞으로 은행나무가 초록옷 나날이 입을 듯.



일년이 지난 후)

제비꽃은 여전하고 맥문동이 제법 퍼졌다.

2023, 10, 24


이듬해 5월)

2024, 5, 17

맥문동이 무성해졌고, 제비꽃도 여전하다.

때맞춰 꽃을 보기는 어렵군.

2024, 5, 17

제비꽃 외에 다른 생명들이 많이 불었다.

올해는 뽕나무까지 올라왔는데, 아마 여기서 오디가 온 듯..

카페 입구에 단정한 신사같은 이 나무가 무엇인지 항상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알았다. 흔한 뽕나무였다! 익기 시작하는 오디를 발견한 것이다.

야생의 뽕나무들은 이루말할 수 없이 평범한데… 정말 가꾸기 나름이구나… 새로운 발견이고, 이것 또한 마법같다.


더욱 담쟁이로 뒤덮여 가는 카페, 2024, 5, 17


이번에는 친구랑 함께여서 커피를 한잔 마셨다.

아, 모든 건 연결되어.. 카페라는 물성을 이렇게 진심으로 가꾸는 장소의 커피맛이.. 어찌 향기롭지 않으리!

아이스라떼를 시켰는데, 오감이 번쩍!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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