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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Jan 28. 2021

옛이야기의 나라, 아일랜드

산사나무 아래에서 / 마리타 콘론 맥케너


아일랜드 관련 책을 찾다가 일부러 동화를 찾은 건 아닌데 제목이 쏙 들어와 읽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지나온 아일랜드의 역사와 그들만의 정서를 흠뻑 느낄 수 있는 훌륭한 동화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았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마냥 즐겁고 행복한 날만 있는 건 아니다. 결국 어른들의 삶과 밀착되어 있기에 고난의 시절엔 함께 그 시기를 통과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진다. 아일랜드 역사에서 제일 굵직한 고난이라면 잉글랜드에게 7백 년 넘게 지배를 받은 것과 그 와중에 쓰나미처럼 민초들의 삶을 뒤흔든 '감자 대기근'일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생명줄 같았던 감자에 '감자 마름병'이라는 역병이 아일랜드 전역에 퍼져 엄청난 재앙이 되고 만다.

그 시기에 아이들의 삶은 어떠했을지, 또 그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은 어떤 모습인지가 아일랜드의 자연과 함께 슬프고 아름답게 펼쳐진다.

일거리를 찾아 떠난 아버지를 또 찾으러 떠난 엄마마저 돌아오지 않자 빈민 수용소에 붙들려 가야 하는 상황에 처한 삼 남매, 엄마가 밤마다 들려주던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모 나노와 레나, 그러니까 아이들에겐 이모할머니인 그녀들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 여정이 어찌나 혹독하던지 지구 종말 유일한 생존자 이야기 <더 로더>가 생각날 정도였다. 아이들은 배고픔과 열병으로 삶의 끝자락에 내몰린 사람들, 잉글랜드에 빌붙어 식량을 반출하는 관리 등 처절하고 비참한 현실의 중심을 절박함과 용기로 통과하고 있었다.


 엄마의 이야기 속에 캐슬태거트라는 곳에서 과자점을 하고 있다는 두 할머니는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고 그녀들이 있는 곳은 모든 것이 해결될 것 같은 유토피아 같은 곳이다. 아이들은 그런 희망을 갖고 그곳에 도착하기 위해 몸부림쳤고 마침내 도착한다. 만약 동화가 아니라면 유토피아 같은 곳은 없는 게 아닐까. 아이들한테 너무 가혹하면 안 되니까... 비록 할머니들은 이젠 과자가게도 하지 않고 육신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노쇠한 모습이었지만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이젠 아이들은 그곳에서 적은 양식이라도 나누어 먹으며 안전하게 부모님을 기다리면 되었다.

이 이야기가 전개되는 가운데 등장하는 산사나무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집 뒤뜰에 있는 산사나무는 열병으로 아기 때 죽은 막내 동생이 묻힌 곳이고 먼길을 떠나며 마음을 다지는 곳도 그 나무 아래고, 절망에서 희망으로 전환되는 시점에도 주변 산사나무의 바람결을 느낀다.  마치 우리 옛사람들이 신성시하던 당산나무 같은 역할을 산사나무가 하고 있었다. 왜 하필 산사나무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법같이 정보가 들어왔다.

전 세계의 옛이야기를 연구하는 김환희 브런치 작가님의 글이 마침 들어왔는데 놀랍게도 아일랜드 옛이야기 편이다. 아일랜드 구전설화에서 산사나무 덤불은 행운과 희망의 상징인 보물이 숨겨진 장소로 등장하고 또 인간들의 삶에 관여하는 요정들이 회합을 여는 장소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아일랜드 대표 요정 나무가 산사나무였던 것이다. 요즘도 아일랜드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산사나무 덤불과 요정에 관한 신앙은 산사나무를 함부로 대하지 않아 고속도로 노선도 그 나무가 있다면 바꾸어  정도였.


그러고 보니 이 동화도 신화나 옛이야기 형식을 닮아있다. 주인공들은 여정이 정해져 있고 조력자, 구원자가 나타나고 결말은 희망적으로 끝난다. 특정 구전설화 유형 통계수치를 보면 1위 아일랜드 309편, 2위 체코 9편으로 아일랜드가 얼마나 이야기의 나라인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건 아일랜드 구전설화가 아니라 영국 전래동화라니 그들의 역사만큼 짠한 일이다. 예이츠, 제임스 조이스, 오스카 와일드, 버나드 쇼 등 훌륭한 문학작가들이 많은 이유가 자연환경과 더불어 어린 시절에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일까. '이야기'는 진부한 표현이지만 여전히 꿈과 희망이다. 지독히 참담한 현실에 처했던 삼남매도 엄마 이야기에서 희망을 보았고 용기를 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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