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1주년 서랍 정리

옛다, 나오너라!

by 여름지이


식물을 키우다 보면 밋밋하던 줄기 어디쯤에 어제 못 봤던 무엇이 나타날 때가 있다. 새잎일 때도 있지만 꽃봉오리라면 살짝 설레기 시작한다. 그런데 꽃봉오리라고 다 꽃이 되는 건 아니다. 부풀어 오르다 수분이 부족하면 시들어버리기도, 활짝 피기 직전 외부의 조그만 자극에 꽃대가 똑 떨어지기도 한다. 활짝 핀 꽃이 된다는 건 은근 여러 생태, 환경적 조건들이 잘 맞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쓰는 글도 비슷하여 생각의 파편들이 얼기설기 엮어질 때 재빨리 붙들고 매달릴 수 있는 상황들이 안팎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생각은 흥분의 도가니였으나 막상 시작하고 보면 별 쓸 말이 없다거나, 다른 일이 생기고 몸 컨디션이 안 좋아 타이밍을 놓쳐 버리면 그만 사그라든다. 다시 들어가 보면 그때의 간절함은 이미 희미해져 쓸 가치를 크게 못 느낀다. 이런 이유로 작가의 서랍에 모인 글감들이 제법 있다. 혹시나 다시 불붙는 날이 있지 않을까 싶어 삭제도 못하고, 시들어버린 꽃봉오리 같아 조금 짠하다. 오늘은 브런치 1주년! 과감한 정리에 앞서 나오다 만 그것들을 단체로 발행이나 함 해주고 삭제해야겠다. 내 글에 내가 댓글을 달며 하하!




오래된 순으로 꺼내 본다.


통증에게 경고함

가끔 영혼이 내 몸을 벗어나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단지 다른 사람들은 몸에 얼마나 통증을 가지고 있나 궁금해서다. 어릴 때?부터 언제나 견딜만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외상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신경에 의한 것이라 겉보기는 멀쩡하다. 거기다 어딘가에 열중하고 있으면 이 통증이란 놈이 싹 자취를 감추기까지 하니 도무지 나의 이런 통증의 실체가 있기나 한 건지, 있다면 얼마만큼인지 정말 궁금하다. 다른 사람의 정도를 알아야 내 것을 평가할 수 있지 않겠나. 엄살인지 정말 심각한 건지 말이다.

한 단락 쓰고 말았다. 자주 이런 생각을 하는데 그날은 통증이 좀 심각했나 보다. 딴엔 괴롭히는 통증이란 실체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고통을 잊어보려 했는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아주 사적인 넋두리가 될 것 같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사실은 곧 없어졌거나 다음날은 아예 일어나지 않은 게 분명하다. 양은 냄비처럼 변덕스러운 이 몸이여!


◇ 제11회 젊은 작가 수상집

김초엽/ 인지공간

이브, 세번째달/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 우리의 기원을 찾아가는 존재, 확장된 세계

제나, 인지공간/ 보이는 세계, 획일화된 개성이 무시된 공동체, 제도권

여러 단편들 중 김초엽 작가의 <인지공간>이 계속 머리에 맴돌아 적어놓은 메모다.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SF였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며 넘나드는 의식의 세계가 만들어 내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라고 느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다른 시간들이 존재하지만 인간의 존재 방식은 언제나 두 가지 큰 흐름 속에 있는 것 같다.


◇ 가장 개인적인 것이 공감을 얻으려면

에세이 수필 김남희 엘리스먼로 봉준호

혼자만의 글이 아닌 발행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담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 흔한 블로그 한번 해보지 않은 내가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무지에서 온 용기였고 날이 갈수록 기쁨과 동시에 몰려오는 부담감은 어쩔 수 없다. 관심분야는 있지만 전문분야는 없어 결국 나와 주변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데, 누군가가 읽을만한 내용인가 늘 의문이다. 메모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고민에 해답을 얘기한 사람들로 적어놓고 생각해 본 결론은 뻔하지만 '쓰고 싶은 걸 쓰자'이다. 누구나 공감을 받을 때도 못 받을 때도 있다는 분명한 사실 앞에 더 이상 다른 대안이 있을까.


◇ 판타지 세계와 현실

글고치기, 떠난 글, 나의 스타, 남편, 연애, 판타지에서 돌아온 나 이 세상 모든 존재들을 사랑할 힘을 얻는다.

동화 공부할 때 무척 공감한, 좋은 판타지 동화는 현실로 돌아왔을 때 무력감이나 허무감이 아닌 살아갈 힘을 오히려 준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뭔가를 적어보려 했는데... 근데 남편은 저기 왜 들어있을까??? 각박한 현실? 판타지? 나, 참.


◇ 사노 요코/ 두 개의 여름

행복 세상 시간 우정 바람

관념적 단어 구체화시키기

사노 요코 책을 읽으면 시원하고도 낯선 바람 한줄기가 쏴아~ 머리를 관통하는 느낌이다. 실체가 없는 단어들을 짜잔~ 보여주는 그분의 세계가 황홀하다. 영향을 받은 이슬아 작가의 책 제목 <깨끗한 존경>도 그런 경우다.


◇ 진짜네...

머리를 식히다

목이 막히다

빚을 빛으로 쓰는 이유

벽에 똥칠하다

머리가 세다

나를 내가 바라본다

늘 들어오던 말이지만 어느 날 실재가 되어 내 손에 성큼 잡힌 문구들을 적어 보았다.


◇ 젊은이의 글 ◇ 아들의 동거

제목만 달랑 있다. 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시작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언젠가는 꼭 쓰고 싶다.


◇ 미스터리하고 싶었던 하루

- 우리 인생은 죽는 순간 떠올리는 회상에 불과해. 좀 허무하지만... 그래서 과거, 현재, 미래는 공존하지. 간절하면 서로를 불러 낼 수도 있어. 지금 이렇게 말이야. 오늘은 순전히 과거의 영 네가 날 부른 거야. 그래, 뭐가 그리 간절하지?

- 우선, 미래의 영 님은 지금 행복하세요?

- 글쎄, 행복의 기준을 넌 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많은 걸 체념한 난...

- 됐어요! 지금도 많이 가지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아시잖아요,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인지...

한때 부엌 옆에 있는 좁은 방에서 밤이면 아이들과 꼼짝을 못 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루에는 늘 시부모님이 밤늦게까지 있어 안 나가는 게 상책이었다. 한창 나부대던 아이들과 감금된 것 같은 그 시간이 서글프기도 무료하기도 해 가끔 녹음 모드로 워크맨을 틀어 놨었다. 내 불행으로 아이들 어린 시절마저 대충 흘려보내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었을 게다. 진짜 서랍 정리를 하다가 그때 녹음된 테이프를 발견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장이 의심되는 플레이어에 넣어 보았더니 딸깍! 하는 소리를 내고 한참 돌아가다 갑자기 아이들 유아 때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 시절 불 꺼진 부엌방으로 소환된 순간이다. 소리가 더 많은 기억을 불러온다더니 정말 그랬다. 둘째의 소란스러운 목소리 옆에 기운 없는 내 목소리... 사무치게 애틋해 드라마에서 본 듯한 저 상황이 떠올랐지만, 너무 격하게 다가와도 쓰지 못한다.


◇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취향이 도드라진 사람의 불편함, 주택가 막다른 골목집, 계절을 느끼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그해 여름은 오래 남아'를 재밌게 읽었기에 사둔 책이다. 손에 넣어서 그런지 오히려 잡고 읽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진작 읽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역시 좋았다. 작가의 취향이 착착 감겨 아껴먹는 과자 같았지만 오만데 이리 취향이 묻어나서 함께 있는 누군가는 불편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분명 내 주변에도 불편한 사람이 있겠다는 생각에.


◇ 집에 온 손님

조카가 우리 집에 와 일주일을 함께 보낸 적이 있다. 남자아이들만 보다가 청소년기 여자를 보니 많은 생각이 들어 제목을 적어 놨지만 조카가 있을 때는 혼자 있는 시간이 없어서 가고 나서는 녹초가 되어 생각이 날아가 버렸다. 아이 손님이 더 힘들더라...


◇ 더블린 사람들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으면 인간이 아닌, 사람은 좀 나아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이 들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건 나를 비롯한 주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실망이 가득할 때 더블린 사람들을 만났다. 여기라고 별 수 없었다. 소심하고, 지질하고, 허풍스럽고, 술을 마셔대고, 극성스럽고, 물욕적이고...

작가가 살았던 1900년대 초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참, 어릴 때부터 위인전을 너무 많이 읽고 자라면 안 된다더니, 분명 사람한테 더 실망할 수도 있다.

그 위인도 알고 보면 모순 덩어리일지도.


◇ 떠나온 곳에 대하여

떠나온 곳을 생각해 본다. 처음은 엄마 뱃속이었을 것이고 다음은 학교를 위해 고향을 떠났고 지금은 고향보다 더 오래 산 부산이란 도시를 떠나온 상태다. 이사를 아주 온 게 아니라 잠시 떠나온 상태라고 말하는 건 당연히 돌아가야 할 곳이라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나 자신을 위해서 또 누군가를 위해서 가야 할 곳이었다.


한 해 두 해 지나니 그 생각이 조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기가 특별히 좋아졌다기보다 멀리서 본 그곳이 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지구에 딱 붙어살고 있는 동안은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못 느끼지만 우주에서는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결정적으로 오늘 어느 젊은 브런치 작가님 글을 읽다가 일어난 부산에 대한 나의 감정이 당황스럽다 못해 우울감까지 들어 추스러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철떡 같이 믿고 있었던 내 감정이나 생각에 배반을 당할수 있었다. 변한 건지 원래 그런 걸 인지 못한 건지 혼란스럽지만...... 기억도 감정도 믿을 수 없는 요즘이다.




브런치 글을 쓸 때 난 손을 얌전히 모으고 조용히 얘기하는 사람이 된다.

야~~~ 너, 그거 아니야! 소리치던 사람이 갑자기 오우, 글쎄... 하는 것처럼. 아이러니하게도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선택하고 고치고 가다듬을 수밖에 없다. 어릴 때, 넌 어째 기분이 좋은거 아니면 나쁜거 뿐이냐, 라고 했던 큰오빠 말이 언제나 따라다녔다. 책 읽기와 글쓰기는 그 중간을 찾아가는 힘들어도 황홀한 과정이었다. 나를 위한 글쓰기가 공유된지 오늘 딱 1년, 작년 3월 11일 첫 글을 발행했으니 브런치 돌날이다. 세상의 모든 기념일, 생일마저도 유효기간이 지난 상품같아 쓰레기통에 구겨 넣고 싶은 요즘인데 구태여 챙기기까지! 그만큼 지난 1년은 낯선 동네에서 스따가 되어 오로지 브런치라는 공간에서만 사부작거리며 때론 흥감하게 놀았기에 새로운 기념일로 정하고 말았다.

독자님들, 친구 해주시는 작가님들 감사의 마음 듬뿍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