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계영 Dec 14. 2023

특별한 요리책

북유럽 책이란 걸 표시라도 하듯 표지에 있는 계피롤빵이 먹음직스럽다.


열쇠를 잃어버려 집에 들어가지 못한 엘리엇은 계단에서 위층 스텔라 할머니를 만난다. 따라 들어간 이 할머니집에서 엘리엇은 요리의 세계를 접하게 되는데, 만들어준 감자 팬케이크(우리 감자전에 가깝다)의 재료인 감자 몇 알은 대단했다. 감자파이, 매시트 포테이토, 감자 샌드위치, 감자 샐러드, 감자 크림, 감자튀김, 감자 수프, 감자 구이…헐! 이렇게나 다양한 요리를 가르쳐준 스텔라 할머니. 그것뿐이랴! 감자는 같은 시간에 다 익게 하기 위해서는 같은 크기를 골라야 한다는 것, 감자는 95도 정도에서 서서히 익혀야 된다는 것, 익을 때의 화학적 변화, 심지어 감자의 역사까지, 깨알 같은 감자에 대한 정보들이 할머니와 엘리엇의 대화에 빼곡히 나온다. 껍질째 삶은 감자를 ‘야전 상의를 입은 땅 사과’라는 재미난 이름으로 부르고 이것이 몇백 년 전 프랑스 왕궁에서 만들었던 요리라는 것 까지.


서양요리에서 중요한 식재료인 만큼 감자이야기는 다채롭다. 이 책의 작가처럼 꼬리를 물어 옆길로 새어보자면 동화 <왕도둑 호첸플로츠>를 불러오고 싶다. 위대하고 사악한 마법사 '페트로질리우스 츠바켈만'에게 마법이 통하지 않는 유일한 분야가 감자껍질 벗기기라는 사실, 감자에게만은 진심이어야 한다? 머슴이 된 포로가 벗겨준 감자로 양껏 요리해 먹은 날 위대한 마법사의 기분은 거나하게 기쁨으로 넘친다. 감자가 처음 유럽에 전해진 것은 약 500년 전 신대륙에 갔던 에스파냐 뱃사람들이 가져오면서부터라는데, 그들의 감자사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감자의 친척이 고구마가 아니라 토마토라는 걸 아시는지?

지난봄 텃밭에 씨감자가 아닌 집에 굴러다니던 감자 싹을 잘라 심어봤더니 감자꽃이 떨어진 자리에 방울토마토 비슷한 게 열렸다. 덩이줄기로 땅속에서 자라야 할 감자가 설마 이렇게 시작되는 거대 아니겠지 눈을 의심하며 혹시 토마토 순이 이쪽으로 넘어왔나 이파리들을 더듬어보았지만 분명 감자 구덩이였다. 알고 보니 씨감자로 처리되지 않은 순진한 감자에 간혹 열매가 열리는 경우가 있더라.


엘리엇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는 스텔라 할머니는 한때 선박의 요리사였고 남편은 선원이었다. 배 사고로 할아버를 일찍 여윈 할머니지만 참 씩씩하다. 같은 일터에서 쌓은 남편과의 사랑과 우정, 여전한 일상의 요리들은 지금의 할머니를 도운다.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주말 농장을 하면 편식을 고친다는 예가 있듯, 이제야 식탁 채소들을 가꾸어본 사람은 부쩍 요리에 먹거리에 관심이 생겼다. 요리라기보다는 끼니에 가깝지만 익숙란 식재료들의 생애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그것들이 몸으로 들어와 나를 도운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하드커버 표지 안쪽에까지 끝까지 열성을 다한 그림을 보면 글과 그림을 완성한 두 여성작가의 마음이 전해져 온다. 뒷면 표지 그림은 또 어떻고, 맥시멀 한 책 본문과 달리 매우 미니멀하다. 밀과 보름달 이라니, 밀은 알겠는데, 보름달의 의미는 무엇일까? 전 일류가 보름달처럼 넉넉한 식생활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일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에서 빵 터졌다가 미소 짓게 되는 대목은 이렇다. 젊은 엄마시절 늘 아이들에게 해주며 밥 먹기를 종용했던 말들을 닮았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정말 싫습니다. 그러나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야지 하고 결심한 순간 이런 생각을 한답니다. 나는 아침 식사에 초대받았다고요! 지금까지 나를 초대했던 사람은 나밖에 없었지만 뭐, 상관없어요… (…) 나는 날마다 하루를 좋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아침 식사가 중요한 이유는 아침을 먹으면 그날 내내 무엇을 하든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대 영양소에 관한 이야기, 녹두 질금 키우는 법, 요리사 앞치마 만드는 방법까지 요리와 관련된 참 다양한 정보들이 세밀하고 따뜻한 그림과 함께 펼쳐진다. 지루하다가도 그림에 낚여 다시 읽게 되는 독특한 책이다. 표지 그림을 보고 쉽게 손에 잡았다가 글밥에 다가 떨어졌다가 다시 삽화 그림 때문에 읽게 되는 책. 인내심을 발휘해 읽다 보면 정보와 재미를 다 잡을 수 있는, 제목이 말하는 특별한 요리책이 될 수 있겠다.

음식 중독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먹는 것이 정서를 반영하는 시대다. 먹거리가 넘쳐나기에 오히려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건강한 식생활이 무엇일지 20년전 책은 오래된 미래를 담고 있었다.






*엘리엇의 특별한 요리책/ 크리스티나 비외르크 글, 레나 안데르손 그림/ 미래사,2003

매거진의 이전글 이웃 아줌마는 시를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