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계영 Dec 20. 2022

이웃 아줌마는 시를 쓴다

그림책, <에밀리>


눈썰매를 타던 꼬마는 길 건너편 노란 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20년 가까이 집을 떠난 적 없는, 동네에서 ‘신비의 여인’이라 불리는 어떤 아주머니 집을. 간혹 미쳤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꼬마에게는 그냥 ‘에밀리’ 일 뿐이다. 자기에게 시를 적어 준 하얀 옷의 아주머니…


꼬마가 그 동네에 이사온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현관문 우편 구멍으로 편지 하나가 들어왔었다. 말린 초롱꽃까지 들어있던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저는 마치 이 꽃과도 같답니다. 당신의 음악으로 저를 소생시켜 주세요. 그 음악이 저에게 봄을 가져다 줄 거예요.

꼬마의 엄마는 피아노 연주를 하는 사람이었고, 피아노 소리가 건너편 집까지 닿았는지 느닷없이 그런 편지를 받은 것이다. 그날 밤 계단참에 앉아있던 꼬마는 두런두런 엄마와 아빠가 의논하는 소리를 듣다가 자기 방 침대로 돌아온다. 고개만 들면 보이는, 길 건너편 아주머니 방 불빛이 환했다. 마침 굳나잇 인사를 하러 올라온 아빠에게 꼬마는 묻는다.

왜 그분은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까요?


다음 날 아침, 집안은 피아노 소리로 가득했다. 엄마가 초대에 응하려는 것일까. 온실에서 식물들에게 물을 주던 꼬마는 또 아빠에게 묻는다. 그 아주머니가 외로울 거라 생각하냐고.

때로는 그렇겠지. 우린 모두 다 이따금씩 외롭단다. 하지만 그분은 동무가 되어 줄 여동생이 있고, 또 우리처럼 꽃을 가꾸고 있지. 그리고 시를 쓴다더구나.

꼬마는 그때 ‘시’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시, 듣기만 해도 마음에 바람이 이는 것 같았다. 시가 뭐예요, 아빠.

엄마가 연주하는 걸 들어 보렴. 엄마는 한 작품을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데, 가끔은 요술 같은 일이 일어나서 음악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진단다. 그게 네 몸을 오싹하게 만들지. 그걸 설명할 수는 없어. 그건 정말, 신비로운 일이거든. 말이 그런 일을 할 때, 그걸 시라고 한단다.


다음날, 엄마는 맞은편 노란 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함께 가기로 허락을 받은 꼬마는 왠지 두려워졌다. 어쩌면 아주머니도 두려워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져갈 선물을 생각했다. 그래, 백합 알뿌리! 고향에서 가져온 백합 알뿌리를 가져가자. 마른 초롱꽃처럼 죽은 듯 보이지만 그것들은 생명을 지니고 있다고 아빠가 말했으니까. 걸을 때마다 사각사각 소리 나는 비단옷을 입은 엄마와 흰빛 원피스 주머니에 볼록 백합 알뿌리를 넣은 꼬마는 그렇게 맞은편 집으로 향했다.


그들을 맞은 건 역시나 신비의 여인 여동생이었고, 언니가 듣고 있을 것이라며 연주를 부탁한다. 주인 없는 거실에서 엄마의 연주는 시작되고… 관객은 꼬마뿐이었지만 연주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위층에서 내려온다. 좀 더 연주해 달라는 가녀린 목소리가 뒤따라오면서. 음악이 다시 시작되자 꼬마는 조용히 거실을 빠져나와 계단을 천천히 오르는데, 꼭대기층 입구에 새하얀 옷을 입은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다. 무릎 위 종이에 연필로 무언가를 끄적이던 그녀와 꼬마의 눈이 마주쳤다.


눈처럼 하얀 옷을 입은 두 사람.

여인의 무릎에 놓인 종이를 내려다본 꼬마는 묻는다.

그게 시예요?

아니, 시는 바로 너란다. 이건 시가 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일 뿐이야.

아주머니께 봄을 좀 가져왔어요.

꼬마는 호주머니에서 백합 알뿌리 두 개를 꺼냈다.

땅에 심으면 백합꽃으로 변할 거예요.

어머나, 예쁘라. 그럼 나도 너에게 뭔가를 줘야겠구나.

그녀의 연필은 꼬마의 엄마가 피아노 치듯 종이 위를 가로지르며 급히 움직였다.

자, 이걸 숨겨 두렴. 나도 네가 준 선물을 숨겨 둘 거야. 아마 머지않아 둘 다 꽃이 필 게다.


꼬마가 거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까지 음악은 연주되고 있었다. 새로웠다. 순간 살아 숨 쉰다는 건 이런 느낌일까, 꼬마는 생각하며 그날 온실에서의 아빠, 바닥 위 햇살, 호주머니 속 시를 떠올렸다. 봄에 아빠랑 백합 알뿌리를 심을 때는 에밀리 아주머니를 생각했다. 받은 선물을 정원에 숨겼을, 숨겨놓은 선물이 새하얀 꽃으로 나타난 정원에 있을 에밀리 아주머니를. 꼬마는 많고 많은 일들이 신비롭다.



에밀리 아줌마는 짐작대로 미국의 은둔 시인으로 알려진 에밀리 디킨슨(1830~ 1886)이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두려워했지만 이웃 아이들을 위해 바구니에 생강빵을 담아 2 창문에서 내려주곤 했다는 일화는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진  그림책의 모티브로 충분하다. 그녀의 삶과 시가 소재가  그림책은 이것 외에도 서너   있다. 그림책만 있으랴. , 영화, 최근엔 페미니즘이 가미된 드라마까지 육신이 사라지자 남겨진 정신의 산물에 점점  꽃이 피고 있다. 생애 마지막 25 동안 자기 집을 벗어나지 않은 은둔자의 , 사후 발견된 1800 편의 , 지인들에게 보낸 많은 편지들, 이야기를 만들고 퍼트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상상 보고다. 누군가는 생채기를 내기도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삶이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일은 스스로를 밝혀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 인간들만이   있는 일이기도 하.


밖으로 나오지 않는 그녀를 두고 정신병자, 외로운 사람  뭇사람들은 함부로 판단한다. 왜곡된 이미지로 덮어 씌워졌을 그녀의 인생에게 꼬마 아빠의 말이 위로가   같다. 때로는 그렇겠지, 그래, 때로 그렇지 언제나 그런  아니니까. 어둠은 밝음을  도드라지게 한다. 받아들이고 스며들  없는 세상부조리에 대한 분노와 절망이 자신을 끝없이 추락시켰다면, 자연관찰, 정원일, 손에 지니고 있는 모든  위에 울분과 환희를 쏟아내는 시를 쓰는 시간은 그녀에게 카타르시스, 치유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영화 <조용한 열정>에서 에밀리 디킨슨은 시란 단박에 읽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무척 은유적이고 함축적이라 여러 번 읽어도 그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난해함 썰렁함이 있더라.

그럼 이웃집 꼬마에게 써준 시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지상에서 천국을 찾지 못한 자는
하늘에서도 천국을 찾지못할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간에,
천사들이 우리 옆집을 빌리기 때문이다.


에밀리 디킨슨이 아니라 그림작가 바바라 쿠니 찐팬으로 발견한 그림책








* 민트색은 책을 그대로 옮김

* 에밀리/ 마이클 베다드 글, 바바라 쿠니 그림, 김명수 옮김/ 비룡소, 2009

* 영화 <조용한 열정>, 2017

매거진의 이전글 겨울 할머니가 이불을 털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