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오래된 이 얇은 그림책은 시간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는 매력이 있다. 좋아하는 그림책이 아님에도 어느 때에 떠올라 생각의 변화를 밝혀주는. 최근에 한 면이 또 생겨 이제 삼각뿔이 되었다. 입체적이라고 했으니 이미지를 구체화시켜 본 것이다. 한 면씩 차례로 들여다보는 일은 그런 생각의 변화를 따라가는 일이다.
첫 번째 면은 평면이었을 때다.
어린아이들에게 읽어주기 알맞았던, 전통적인 색감이 어우러진 교훈적인 내용을 먼저 소개하면 이러하다.
태생부터 남달랐던 병아리는 힘센 수탉으로 거듭나며 주변을 평정하고 기세등등한 삶을 산다. 얼마나 대단했으면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일까. 그 세상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어, 이윽고 이 수탉을 대적할만한 새로운 상대가 나타났고 최고, 제일의 자리는 위태로워진다. 더한 것은 세월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이 분도 점점 늙어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아니라는 게 뻔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울음소리도 예전처럼 우렁차게 나오지 않았어. 고기를 씹어도 잘 씹히지 않았고, 술도 많이 마실 수가 없었지.
점점 우울해지는 수탉, 책에는 '절망'이라는 단어를 썼던데, 수탉이 절망에 빠졌을 때 평생을 함께한 아내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여보 힘내라고, 당신은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라고, 마당에 즐비한 당신 자손들을 보라고, 얼마나 다들 건강하고 힘이 세고 알을 잘 낳냐고, 이러하니 당신은 아직도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고 행복한 수탉이다,라고 말이다.
정말 행복한 수탉이 맞는 것 같다, 이렇게 듣고 싶은 말로 위로해 주는 아내가 있으니. 수탉은 흐뭇한 마음이 되어 성대한 환갑잔치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이들과 두 번째 유년을 보내고 있던 그때, 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뜻이 없었다. 동물로 의인화되었지만 우리네 가족의 모습, 이상적인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랄까. 한창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익숙한 소재 따뜻한 결말에 읽어주기에 부담 없었고, 아이들은 수탉의 위용과 화려한 모습에 열광했다. 거기다 번역된 그림책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이라 우리 작가의 우리 정서가 담긴 책은 분명 좋은 책이었다.
평면이 일어나 옆면이 세워진 건 ‘아이들과’가 아닌 나를 위한 읽기로 들어섰을 때다.
한마디로 불편한 그림책이었다. 다시 꺼내어 읽지도 않았는데, 현실에서 '여전함"을 과시하며 주변이라곤 없고 앞만 보고 있는 남자 노인들을 보면 딱 이 책이 떠올랐다.
개발시대에 아버지가 되었던 그들, 힘센 수탉은 가족을 위해 달리고 달린 우리 아버지들이었다. 당신(가족)들을 위해 달리고 있으니 순종과 복종을 강요하며 얼마나 아내, 자식들을 함부로 대했던가. 마치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니 너희들 세상은 내 그늘이라는 듯.
그늘, 감사한 환경이다. 그늘 때문에 자아가 자라지 못해도 어려웠던 시절에는 따뜻한 밥과 잠자리가 중요했으니까. 나는 다른 아버지들과 다르다, 내가 살아온 건 기적이다, 같은 말들을 들으며 불안과 안심을 키우고 드리운 그늘에 감사했다. 아버지는 아버지였다. 이렇게 아버지 신화는 집마다 있었고 화목한 가정은 그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한 면이 또 세워진 건 최근의 일이다.
군림하다가 힘 빠진 수탉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 아내와 자식들이 새롭게 들어왔다. 그늘 아래 가족 공동체라 의례적으로 나온 태도였을까. <가족의 두 얼굴>이라는 책이 있을 정도로 가족의 속내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힘센 수탉들이었던 분들이 늙고 병들어 생을 달리하기도 남은 분들은 거의 90이 넘었다. 양가에 살아계신 고령의 어르신 두 명을 관찰해 보면 치매가 아닐지라도 때때로 다른 세계를 넘나 든다. 눈빛과 표정은 아이에 가깝다. 때로는 해맑고 때로는 막무가내다. 언젠가부터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듣는 모드가 필요했다. 대화를 시도했다가는 본전도 못 찾고 목만 아프다. 감정에 휘말리지 말고 들으며 추임새 넣어주기. 한때 키웠던 어린아이들과의 대화를 상기해야 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늙은 아내가 아기가 된 남편을 안고 굽어보는 모습. 현실은 늙은 자식이 아기가 된 부모를 안고 있는 듯하다. 어느 지점부터 서로의 시간이 다르게 흘렀나 보다. 그렇다면 젊었을 때는 포악했고 지금은 괴팍스러운 노인네를 용서 못할 일 없다. 사느라 힘들어 그랬겠지, 다 사정이 있었겠지, 말귀 못 알아듣는 아기한테 무엇을 요구하겠나. 자주 우울해지는 당신에게 그만하면 잘 사셨다고, 우리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저 위로하는 수밖에.
수탉의 아내와 자식들도 한때 세상에서 제일 힘셌던 아버지 수탉을 안고 굽어보는 마음이었을까. 효자라고 소문난 사람을 찾아가 봤더니 아버지한테 업혀 다니는 아들이었다는 옛이야기가 말해 주듯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 그것이었을까. 수탉 가족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내가 부모가 된 나이가 되었지만 난 여전히 자식이기도 하다. 정확히 30년씩 차이나는 3대를 보고 있노라면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간에 공존하는 느낌이다.
이 한권의 그림책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각이 흐른다.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이호백 글, 이억배 그림/ 재미마주,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