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필요한 시간

'계영' 에서 '여름지이' 로

by 여름지이

프로필 변경에 즈음하여 지난 5년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2020년 3월부터 이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꽉 찬 5년이 지났다.

글쓰기 초보는 아니었으나 내보일만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님에도, 쓰고 싶은 마음으로 ‘브런치 ’라는 플랫폼에 입문했다. 흔한 블로그 글 한번 끄적거리지 않아 발행이라는 맛에 더 빠져들었는지 모른다. 덕분에 생활에 활력을 주는 도파민 분비가 적당히 된 듯, 지난 5년이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가장 ‘나’가 살아있었던 시간이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쓸 수도 있지만 살수록 이 단어 이면의 모습이 난감하여 쉽게 가져올 수가 없다. 글을 써서 행복했다면 그만큼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것이 생겨 불안과 경이, 외로움도 따라왔다. 쓴 만큼 보이고, 보이니 깨닫는 것이 조금 있어 지극히 평면적이었던 사고가 조금 부풀어 올랐다고나 할까.


글쓰기 속내가 이러하니 나는 여전히 쓰고 싶다. 아무 곳이 아닌 이 공간에.

숨고 싶거나 널브러지고 싶을 땐 뒤늦게 시작한 블로그에 집중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이곳에 돌아와 일상을 주절거리고, 정색하며 다가가고 싶은 곳을 향하여 짧은 사유와 어휘력으로 글을 짓는다. 점점 좁아지는 통로 앞에 생각들이 와글거리다 부딪치고 사라지고, 결국 나오는 건 별게 없다. 그러고는 성취감도 허무감도 아닌 무엇으로 허우적거리다 또 충전된 나비 로봇처럼 이곳으로 날아든다.

다섯 살이나 더 먹으며 달라진 신체 변화(뇌활동)와 쓸데없이 많아진 생각의 부조화가 만들어낸 브런치 노땅의 글쓰기 현실이다. 한때는 이곳에서 자유로웠으나 점점 버거워지고 갇히는 듯한 이 기분.


문득은 아니고, 언젠가부터 환경을 새로이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꾸준히 달리기 위해 신발을 고쳐 신는 마음이랄까.

할 수 있는 건 어쩌면 너무 쉬운 프로필 변경부터다. 처음 브런치 글쓰기를 시작할 때와 지금의 나는 분명 차이가 있어 이미지에 불과할지라도 바꿔본다면 새 기분이 될 것 같다. 특히 작가명을 바꾸는 일은 개명하는 이들의 마음에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그런데 카톡 프로필은 자주 바꾸면서 왜 그동안 여기 프로필은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까. 아마 ‘작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준 게 틀이었을 것이다. 그 작가가 아니라는 게 명백한데도 서로 불러주는 분위기에 얼마나 도취되었던지. 그때는 그런 분위기였고 우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블로거가 아니라 브런치 작가였다. 물론 많은 분들이 이곳을 통해 책을 내고 프로 작가가 되어가는 과정을 뿌듯하게 지켜보기도 했다. 내가 이룬 성과는 아니지만 꿈을 이루는 걸 지켜본다는 건 감동이고, 거기에 너와 나는 다르지 않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지만 진짜 작가는 나의 꿈이 아니고 될 수 없다는 걸 자각한 지난 5년이다. 대신 글쓰기를 사랑하고 특히 발행하는 글을 무척 즐기는 나 자신을 보았다. 하여 진짜 작가가 아니기에 마음껏 프로필 변경을 해도 어떤 애로사항이 발생하지 않을 건데, 주변 분위기에 묶여 그만 5년이란 세월을.. 어울리지 않게 한결같은 모습을 하고 말았다.


이곳은 글 쓰는 공간이니까 필명이라고 하자. 바꾸기로 결심하고 사실 좀 설렜다. 이젠 글 쓰는 사람 정체성으로 정하는 것이라(지금이 처음인 것 같아) 마음에 드는 필명을 갖고 싶은 욕망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고민을 많이 하기로 했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나타났다. 생각한 것이 아니라 보이는 물성에서 찾은 것이니 나타난 것이라 말할 수 있겠다.


최근에 전주 전북대 캠프스를 거닐 일이 있었다. 나무가 울창한 곳으로 자연스레 발길은 옮겨졌고 그곳은 농생명과학대학으로 농장이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캠프스 안에 펼쳐져 있었다. 무료로 식물원, 동물원을 알 지게 관람한 만족감에다 끝자락에 나타난 석상에서 글귀 하나를 발견한다.


여름지이는 하늘과 더불어 목숨을 가꾸어 온 큰 젖줄이었다.
어느 땅 위엔들 이 젖줄 없는 목숨의 삶이 있을 수 있으랴
오늘도 우리들 여름지이의 참뜻 배워 닦는 일에 보람 찾아 나아가자


언뜻 읽었을 때 농과대학이니 농사와 관련된 문구라는 걸 알 수 있었지만, ‘여름지이’라는 단어가.. 시처럼, 마당 빨랫줄에 걸어놓은 리넨셔츠의 하늘거림처럼 잔잔하게 마음을 사로잡았다. 검색해 보고 더 마음에 들었다. 농사의 비표준어였다. 여름지기라고도 하는데, 여름지이가 어감이 더 좋다. 힘들고 투박한 이미지의 ‘농사’라는 단어가 이렇게 푸르고 산뜻한 다른 말이 있었다니! 하늘과 더불어 목숨을 가꾸어 온 큰 젖줄, 원래 농사의 의미는 이런 것이었다. 거룩한 하늘과 함께 하는 일, 생명을 가꾸는 일, 먹는 생명, 먹히는 생명, 이것 없이 사람의 삶이 어떻게 영위되겠나. 급속한 경제개발로 농촌에서부터 오히려 농사는 해서는 안 되는 일로 각인된 지난날과 농사마저 산업화된 요즘이라 이 글귀가 빛바랜 과거처럼 더 아련하다.

암튼 여름지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을 알게 되었고 겨우 5평 텃밭을 하며 농사를 너무 감상적으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단어를 필명으로 쓰기로 했다.

동전을 있게 하는 양면처럼 정서를 가꾸는 글쓰기와 목숨을 가꾸는 농사는 사람을 있게 하는 한 가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댓글 창을 닫는 일도 고민했다.

그동안 글벚들과 댓글을 주고받으며 얼마나 많은 위로와 공감을 얻었던가. 어쩌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좋아요와 댓글의 힘과 맛이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맛도 영원할 수 없고, 아무리 좋은 글도, 아무리 대단한 작가의 글도 계속 읽는다는 건 식상한 일이고 쉽지 않다. 하물며 전혀 그렇지 않은 너와 나의 글을 계속 읽어야 된다는 건(여러 경우가 있겠지만) ,.. 이젠 응원과 격려를 내려놓으려 한다. 강산이 변하는 시간의 반을 왔다. 시작이 반이고, 진짜 반이나 왔으니, 호젓이 혼자 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고인 웅덩이가 되어 외롭지 않겠냐고? 들판의 웅덩이라면 어떨까. 들판의 웅덩이에게는 하늘이 내려와 주고, 바람이 춤춰 주고, 새가 노래 불러 주니, 역시 괜찮을 것이다. 가끔 나그네가 주변을 돌다가 얼굴을 비추면 우리의 마음은 겹쳐져 서로 안부가 전해질 것이다.









작가가 되지 않아도 오랫동안 글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유리병 속에 편지를 넣어 강물에 띄우는 마음으로 씁니다.

~ 여름지이 ~


매거진의 이전글편안한 시간은 언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