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넘어 물길따라 산책을 나갔다.
산책을 나간 게 오랜만도 아닌데, 어쩐지 낯설고 가슴이 텅 비어 있는 기분.
혼자이나 채워진 고독과 다른.. 허한 느낌이다.
부산함의 정점을 찍고 한가함으로 들어서는 순간은 언제나 이랬던 것 같다.
그리고 비로소 나로 돌아온 것이다.
언제나 내가 아닌 건 아니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시간은 오롯이 혼자 있을 때다.
명절의 긴장감과 몸살, 어제 막 떠난 외국인 손님까지, 거의 보름 넘게 사람들을 만나고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니었다.
늘 이런 경우, 길지 않은 날들이었는데, 꼭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갈수록 더 확연해진다.
가을같은 나이가 되고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글을 쓰면서 더 그렇게 된것 같기도 하다.
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선명해질수록 남과 함께 있는 시간도 선명해진다.
순간순간을 느끼면 더 시간이 길게 다가오는 건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분단위가 되는 전철 출발시간 5분 전과 그냥 흘려보내는 5분은 얼마나 다르던가.
사람을 만나는 일이 불편해서인지, 시시각각 느껴져서인지 어쨌든 일상을 벗어나면 숙제같은 날을 사는 것 같다. 끝나는 시간을 바라보며.
만난 사람들이 반갑고 심지어 즐겁기까지 한데 말이다.
이렇게 산책을 하고 돌아와 밋밋한 일상을 글로 남기고, 때론 그 글이 부풀어 한 명의 독자라도 만날 때, 혼자여도 외롭지 않고 가슴은 몽글거린다.
사소한 기억과 먼지만한 감각의 자락을 탈탈 털어 그럴싸한 글을 짓는 것이다.
한때는 ‘글짓기‘라는 말을 터부시했었다.
없는걸 지어내고 꾸민다는 의미가 담겨있는것 같아 글 쓰는 사람의 옳자못한 자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것 있지 않는가.
집을 짓는데 설계도 대로만 지어지지 않는 거.
짓다 보면 자꾸 아이디어가 떠올라 처음 계획대로가 아닌 전혀 다른 방향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글도 마찬가지더라.
생각은 꼬리를 물어 뜻밖의 문장을 마주할때면, 살살 모래를 헤치듯 숨겨진 마음 한자락을 꺼내는 기분이다.
마냥 드러난 것만 쓰는 것이 아닌 찾아내어… 사실은 원하고 있었던 방향으로 가고 있기도, 뜻하진 않았지만 그래, 이런거! 같은 발견도.
글은 지금 모습이기도 하지만 숨겨진 혹은 되고 싶은 모습이기도 하니까. 현재 속에 과거와 미래가 모두 담겨있는 것처럼 글도 그랬다.
요즘은 이렇게 혼자서 생각하고 꼼지락꼼지락 해보는 시간이 제일 편안한 시간이다.
행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편안한 시간은 알겠다.(어디서 본 글귀인데 내것처럼 불쑥 나오네..)
산책이 끝나갈 무렵 다시 마음은 조금 차오르고 있었다.
맑고 푸른 가을 하늘이 한몫했을 것이다.
오후 햇살은 키다리아줌마로 변신시키는 마법을 가졌다.
양근천 작은 물고기들까지 오후 햇살 덕분에 투명하게 보였다.
검은 하늘 불빛 같았던 반짝임은 물고기들의 살짝눕기 묘기였다.
산책하기 좋은 삽상한 계절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