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근육 풀기
글쓰기 근육도 몸을 닮았다. 쓰는 간격이 늘어지면 그만 뻣뻣해져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 뚫렸던 길이 막힌 것처럼 입구를 찾지 못해 주변을 서성거리고만 있으니 다른 생활마저 집중이 안된다. 2년 동안 글쓰기를 중심으로 길들여진 생활이 선명히 보였지만 하릴없이 또 딴짓만 계속하고 있다. 일상을 일으키기 위해서라도 글을 써야 했다.
글쓰기가 뜸해지면 알림에 깨알 같은 민트색 표시도 귀해지고 어쩌다 한번 나타나 반가워 열어 보면,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라는 메시지나 들어와 있고, 풋!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태블릿 브런치를 열고 폰에 지웠던 앱도 다시 깔고 올라온 글도 읽고 좋아요도 누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기 시작한다. 습관적으로 이곳저곳을 눌러보는데, 당연히 그동안 수평이 되었고 되어야 할 조회수 그래프가 연휴 마지막 날부터 기울기가 급경사로 변했다. 기대치 않은 이런 현상에 기여하는 인기글 1위는 늘 <시어머니의 원피스> 다. 이 글을 발행한 지난가을 이후 언제나 그랬다. 더군다나 설 연휴를 통과했으니, 감이 오지 않는가.
대중에게 전혀 어필되지 않는 글들 사이에서 이 글은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동안 발행한 글들 중 최고의 조회수(무려 전체 조회수의 3분의 2), 라이킷, 일반 독자의 댓글이 달렸고 덤으로 구독자수가 나의 브런치 사상 처음으로 한꺼번에 조금 늘었으니까. 시간이 갈수록 어렴풋이 인기 있는 글이 어떤 내용인지 감은 왔으나 의도할 재주도 없고 거기다 크게 공을 들이지 않은 글인데, ‘시’ 자 하나 들어갔다고 이렇게 폭발? 까지… 예상치 못했다. 같은 라임인 친정어머니 글도 적어 봤지만 비할 바가 아니다.
어느 집안 며느리가 된 지 오래되어 사실 이런 이야기는 진부해질 만큼 나이를 먹는 사이, 시어머니는 이젠 내 인생에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선언하는 또 다른 며느리들이 넘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며느라기’라는 드라마는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고 보잘것없는 글 한편도 롱런하여 명절날만 되면 왠지 불려 나올 것 만 같다. 여전히 우리들, 결혼한 여성들에게 ‘시’ 자가 갖는 위력은 유지되고 있었다. 문득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해졌다. 도대체 무엇이길래 결혼만 하면 이 글자에 갇히는 것일까. 중화권에는 글자를 풀어서 해석하는 ‘파자점’이라는 게 있던데 한자를 해부하면 이런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되려나.
시댁, 시어머니 할 때 ‘시’는 한자로 시집 媤(시) 자였다. 시댁이나 시집이나… 그 말이 그 말인데, 그니까 그 시자가 무슨 시자냐고요. 설명이 실망스러웠지만 가만히 글자를 보면 여자 女에 생각 思가 붙어있다. 여자가 생각하는 것? 思를 또 풀어보면 밭 田에 마음 心이 결합되었다. 그러면 媤는 여자가 일을 할 때도 마음으로도 늘 생각하는 것, 자나 깨나, 늘,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 된다. 헐, 그러면 媤어머니, 媤아버지, 媤누이, 媤동생... 며느리는 늘 이 사람들을 생각하는 자리? 이러니 처음부터 며느리는 불공평한 자리였다!
영어권에서 결혼으로 맺어진 사람들을 ** in law로 지칭하는 것과 무척 대비된다. 법적으로 맺어진 관계로 마음이 오고 가는 건 경우, 선택의 문제다. 서로 이름을 부르며 동등한 인격체로 만나지 한쪽이 일방적으로 마음을 바쳐야 된다는 뉘앙스는 없다. 언어는 곧 문화이기에 옳고 그르고의 문제는 아니지만 누군가의 희생으로 가족 공동체가 유지되어야 한다면 옳지 못하다.
이번 설에는 시댁에 가지 않았다. 그동안 코로나 중에도 조심하며 명절에 다녀왔지만 갈수록 고령의 시어머니 보조만 되는 제사를 준비하는 건 몸보다 마음이 힘든 일이었다. 설날 아침 화상으로 뵌 표정 없는 제사장 백발의 시아버지, 혼자 제사 준비하느라 고단함이 역력한 여전히 며느리인 시어머니, 두 분을 대하는 내 마음은 언제나 애와 증이 공존한다.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여 모든 것을 잡고 언제나 집안의 중심으로 있고자 하는 어른들의 생활습관은 자식들을 지치게 했다. 우리는 언제나 그분들 앞에서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마음은 당신들이 어린 아이라 다독이고 받아주어야 하니 관계를 겉으로 별 탈 없이 유지하기 위해서는 위선자가 되어야 했다. 마음을 감추고 화이트 거짓말을 줄줄 늘어놓고 온 날은 야릇하게 기분이 계속 나빠 회복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유일하게 내 모습을 감추는 시간이 흐르는 곳, 媤댁.
어쩌면 자식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부모의 자식, 다른 말로 여전히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자식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거기다 갈수록 물질과 마음 어느 곳도 독립의 경계가 정확히 어디인지 사실 잘 모르겠다.
글쓰기 근육을 이완시키고자 시작한 글이 정답이 없어 때만 되면 올라오는 이야기가 나와버렸다. 언제까지 반복될진 모르겠지만 지금은 지나갔고, 입춘이 달래주듯 선물처럼 이어 왔다. 기분 좋은 반복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글쓰기,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