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비 사이
근처 개울 쪽으로 나가 보았다.
물길은 물이 흘러 넘칠때 아름다운 법.
그렇게 넘치면 곤란하지만..
물길 따라 걷다가 군청 쪽으로 꺾어
지역에서 생산한 밀을 제분하여 쓴다는 동네 빵집에서 빵을 사고
강 쪽을 보며 걷다가 오른쪽으로 돌아
이번에는 강을 끼고 걷다가
기웃거려 본 적 있으나
들어가 보긴 처음인 카페에서 원두를 샀다.
큰 개가 물색없이 불쑥 나와 꺼렸던 곳.
개랑 눈을 맞추고 보니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산한 오전에 강이 살짝 보이는 개가 동그마니 지키고 있는 카페에 앉아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골목으로 들어서 남이 가꾼 화단과 텃밭을 구경하며
초등학교 근처
바이올린학원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스즈키 바이올린이라,
베를린 바이올린을 다니던 어떤 개구쟁이 꼬마 녀석을 알고 있지. 아무것에도 집중 못하는 아이가 그곳은 부지런히 다녔는데, 이제 벌써 결혼을 한다나. 청첩장 사진에 바이올린 연주하는 모습을 담았더라고.
이거였나? 하하.
다시 개울 건너 집,
산책에서 따라온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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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에서 태어나 -시, - 광역시, 하나뿐인 특별시까지 두루 살아봤지만, 읍내에 살아보니 맞춘 옷을 입은 것처럼 편하다. 소박하고 편리하고 뭐가 쉽고 외롭지 않고, 무엇보다 여러 밀도가 낮아 작은 사람의 존재도 묻히지 않을 것만 같은.
문득 *읍에서 왔다던 여고 때 친구들이 생각난다. 연합고사라는 걸 통해 도시 학교에 인근 여러 곳의 아이들이 모였었지. 읍내의 큰 슈퍼와 화장품 대리점집 딸이었던 그 친구들은 나 같은 시골뜨기도 도시아이도 아닌 그들만의 분위기가 있었다. 도시는 아니지만 어딘지 풍요로운 곳에서 온 듯한, 환한 옷을 입고 잘 웃고 잘 놀았다.
친구들은 한참 전에 떠난 읍에 어쩌다 나이들어 살며 이곳을 지키고 있는 토박이 주민들 이야기를 듣는 날이 있다(주로 미용실에서). 이들은 대도시에 대한 동경을 여전히 갖고 있어 불편함과 갑갑함을 느끼며 기회만 되면 이곳을 떠날 듯 했다. 굴러온 돌인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어정쩡한 표정이 된다. 젊었을 때 나 역시 도시를 꿈꾸었고, 불과 얼마 전까지는 깊은 산골 야생에 잠긴 작은 집을 꿈꾸었는데, 젖어드는 읍생활에 점점 회색분자가 되어가고 있다. 굳이 이웃을 사귀지 않아도 그저 함께 걷고 있는 산책길 사람들에게서 온기 같은 게 건너왔을 때, 산으로 들어가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어쩌면 지키기 어려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어느 때나 안전하게 걸을 길이 필요하고, 생필품을 사러 간다는 핑계로 기분을 환기시키려 할때 금방 닿을수 있는 작은 가게가 필요하다. 지금을 나를 느끼지 못했기에 중요하지 않았던 것들. 들었을때 설마 그럴 리가? 가 떠오른 나이 든 사람들의 명언은 아닌 말들이 현실로 나타나는 요즘이다. 사람들의 삶은 모래알만큼 다양하면서도 모여드는 물줄기 같은 게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