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사 애니 <루카>
옛날 이탈리아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바다 괴물의 존재를 믿었나 보다. 오롯이 기대어 살아야 하는 바다는 다정함과 두려움이 함께 있는 환경이다. 이런 바다는 상상을 자극하고, 두려움은 때때로 실제가 된다. 고기잡이 배가 보이지 않는 손에 공격을 당하고 무시무시한 물그림자를 그들은 목격한다. 오래전부터 바다괴물은 창에 무참히 찔리는 모습으로 궁극의 악이 되어 광장 곳곳에 이미지화되어있지 않았던가.
육지 주민들의 상상을 바다는 배반한다. 괴물이 아니라 바닷속 주민들이 있을 뿐이다. 물에 살아야 하니 조금 다른 모습으로. 인간과 물고기의 중간 모습, 기발하고 기이하고 사랑스럽다. 원래 인간이 물고기에서 진화하지 않았나. 이 기이한 생명체는 억겁의 시간을 단박에 보여주는 특별함이 있다. 물에서 뭍으로 나와 물을 털면(마르면) 비늘과 꼬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육지 인간으로 변하는, 역으로 물이 닿으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위험한.. 아는 사람은 알고 있는 비밀 같은 것.
루카,라는 소심하나 인간 세계를 동경하는 바다 아이가 꺼이꺼이 육지로 올라왔고 직립보행 인간이 되어 저만치 보이는 마을의 불빛에 매료된다.
호기심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사람들 물건을 보고 부풀었다. 루카 부모는 바다 괴물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처럼 아들의 변화가 몹시 두려워 심해에 있는 큰아버지한테 보내버리려 한다. 특단의 조치는 오히려 루카를 더욱 미지의 육지로 나아가게 했고, 바다와 육지, 사람과 괴물?, 단절되었던 세계는 그렇게 연결되고 만다. 중심에는 영역에 줄 긋기 하는 어른들과 편견 없이 돕고 협동하며 질투마저도 우정으로 승화하는 루카와 친구들이 있다. 결핍과 외로움, 승부욕, 끝없이 펼쳐질 자유에 대한 갈망은 아이들의 원동력이었다.
어쩌면 특별할 거 없는 성장 이야기가 다가온 건, 가보지 못한 이국의 정서와 레트로 감성을 물씬 느낄 수 있어서다. 픽사의 다른 영화 <<코코>> 가 멕시코의 전통 속으로 데려다준 것처럼 이번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속으로 들어간다. 지금도 여전할지 모르는 옛 광장과 베스파 스쿠터, 다양한 파스타의 향연은 고향의 품처럼 따뜻하다.
영화의 설정이 50년대 이탈리아 북서쪽 리비에라 해안 '포르토로소'라는 가상의 마을인데, 실제 모델은 '친퀘 테레'라는, 유명한 여행지 '포지타노'를 닮은 마을로 추정된다. 감독 '엔리코 카사로사'는 그 지역 출신이고 부모로부터 전해 들은 옛날 이탈리아 해안 마을의 이미지를 스크린에 가득 담았다.
광장은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는 매일매일이다. 물고기 사람 루카가 두 발로 서서 처음 본 하늘과 신록의 푸르름, 광장의 모습에 유독 그의 시선이 실려 감정이입이 되었다. 가보지 않은 이탈리아 마을로 vr을 쓰고 쑥 들어간 기분이랄까.
여름 한낮 분수대의 무심함,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젤라또의 달콤함, 공차는 아이들 잔망스런 소리, 흘러나오는 선술집 중년들의 희로애락 조각들, 영원 같은 노인들 카드놀이 한 장면, 낭실낭실 마르고 있는 하늘 아래 빨래까지 말을 거는 듯하다. 여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생선을 손질하는 어부의 부엌에 파스타 삶는 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손은 거칠고 인상도 별로지만 딸이 불쑥 데리고 온 낯선 친구들에게 한 그릇 내놓는 그것은, 트레네테 파스타. 고명처럼 연한 바질잎을 얹었으니 바질페스토로 버무렸고 면에 감자와 그린빈이 섞인, 지역에서 즐겨 먹는 전통적인 파스타였다. 이것뿐이랴. 카넬로니, 펜네, 푸실리, 트로피에.. 알고 있는 라자냐도, 이탈리아에 파스타가 또 이것뿐이겠는가. 더불어 루카와 친구들의 좌충우돌 모험에 버무려진 언덕배기 동네와 자전거, 꿈의 물질로 등장하는 베스파 스쿠터까지 보는 이의 눈은 즐겁다.
오해는 서로 알지 못하여 생긴 두려움과 편견이 낳은 것이었다. 두려움이 때로는 모든 걸 삼켜버리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노인은 오히려 투명하여 선입견이 없다. 알고 보니 루카의 외할머니는 이미 사람 세계를 드나들고 있었고, 광장에서 늘 젤라또를 들고 상주하던 두 할머니(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의 드러난 비밀은, 비를 맞는 순간 바다괴물로 변하는 모습이라니! 늘 두려움이나 혐오의 대상은 가까이 있으나 사실은 내 모습과 다를 바 없는 우리들이라는 진실을 유쾌한 영화는 품고 있다.
소문만 들었던 픽사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이런 것인가 보다. 캐릭터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섬세함. 쿠키 영상이란 걸 알게 되었는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 중간, 또는 가장 마지막에 추가된 영상을 말하더라. 이 영화의 쿠키 영상은 매우 긴 크레딧이 끝난 후(생각 없이 끄지 않았을 뿐), 뜻밖의 인물.. 사람들이 말하는 바다괴물 한분이 등장한다. 루카의 유배지가 될 뻔했던 심해에 산다는 큰아버지, 딱 한 장면 나온 그분이 아쉬웠는지 나타나 몇 마디 주절거리고 사라진다. 다음이 더 가관이다. 보너스 영상이라고 하기엔 제목까지 붙은 짧은 영화 한 편이 더 있다. 루카를 돋보이게 한 짠한 캐릭터의 뒷이야기! 와우, 이런 기특함이. 궁금하면 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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