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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pr 01. 2023

속초에서의 겨울

젊은 혼혈인 여성작가 '엘리자 수아 뒤사팽'의 데뷔작이라 구해서 읽었다. 내 주변에도 외국인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 있다. 그 아이들이 평생 갖고 살아갈 그 무엇, 트라우마가 될지도 모르겠다. 혼혈로 태어났다는 것, 자신이 선택하지도 않았다. 주변 사람들과 다른 외모를 갖고 평생 산다는 것이 어떨지 궁금하다.


서문에서...

나는 프랑스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두 문화의 품에서 자랐다. 그렇기에 나는 오랫동안 내가 두 문화를 품고 있는 것 자체가 프랑스적인 '반쪽'과 한국적인 '반쪽'을 결합하려고 시도하는 걸 의미하는 줄 알았다. - 중략 - 여전히 나는 유럽에서는 아시아인이고, 아시아에서는 서양인이다. 어디에 있든, 아버지나 어머니의 나라에서 나의 일부는 낯선 이방인으로 남아 있다. 결국 글쓰기는 내가 현실에서 찾아내지 못한 거처를 창조해 내는 방법이었던 것 같다. 모든 경계 너머에서 모든 공간이 동일할 수 있고 모든 상상이 가능한 그런 거처 말이다.


'속초에서의 겨울'은 속초의 한 펜션에서 일하는 혼혈여성과 영감을 찾아 그곳을 찾아든 프랑스 중년남자의 이상한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물론 그렇게 읽을 수도 있겠다), 글쓰기라는 예술적 작업을 통해 모든 경계 너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 한 경계인의 치열한 기록이다.

- 옮긴이의 글 마지막 문단 -


아버지가 프랑스인이란 것은 알지만 본 적은 없다.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아마도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결핍을 보상하기 위한 것인지 모른다.) 우연히 일터(펜션)에 온 프랑스의 만화가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며 묘한 감정을 느낀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에게 헤어짐을 통보한다.


혼혈이란? 피가 섞이다. 사실 모든 호모 사피엔스는 피가 섞인 존재다. 엄마와 아빠에게서 DNA의 반씩을 받아 온전한 인간이 되니까... 초등학교인지 중학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ABO 혈액형에 대한 조합은 전 국민의 상식이다. AA도 있고 AO도 있다는 것이... 상식적인 인간들은 누구나 피가 섞인 존재란 것에 쉽게 동의할 것이다. 같은 호모 사피엔스인데도 백인, 흑인, 황인이 있고, 피부와 눈의 색깔이 다르다. 머리털을 비롯한 체모의 색과 곱슬거림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 이 차이들이 혼혈인의 외모를 표 나게 한다.


어디서나 눈에 띄는 외모는 문제의 시작이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다르다는 것을 잘못된 것인 양 취급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다른 외모를 가진 사람을 잘못된 존재로 치부하고 있는지 모른다. 특히 작고 외진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의 민족이라는 착각에 살고 있다. 중국인, 일본인과는 외모의 구별이 거의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배우, 가수, 운동선수와는 달리 혼혈인은 눈에 띄고 싶지 않다. 전혀 표 나지 않는 세상에 살고 싶다. 군중 속에 묻혀 전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익명의 편안함을 느끼고 싶다.(순전히 내 생각이다.)


겨울의 속초는 을씨년스럽다. 찬 바람이 몰아치는 쓸쓸한 해수욕장, 눈 덮인 설악산, 가끔 엄청난 눈이 쏟아져 교통이 마비된다. 겨울의 속초는 사람이 없다.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여름과 달리 어딜 가나 사람이 없다. 내가 기억하는 겨울의 속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 바다를 보기 위해 셀 수 없이 방문했다.


소설의 도입부는 그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한다. 분위기를 파악하고 나면 독자는 줄거리에 매달린다. 내가 그렇다. 그런데 도입부의 온갖 묘사 중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주방에서 요리를 하다 보면 맑은 날에는 중년부인의 젖가슴마냥 하늘을 향해 봉긋이 솟아오른 울산바위까지 선명하게 내다보였다.'


주방창이 서향이구나. 울산바위는 거대한 바위덩어리다. 아주 먼 옛날 금강산에서 바위 경연 대회가 있었다. 울산바위가 울산에서부터 걸어 올라오다가 설악산에서 잠시 쉬어 가게 되었다. 그런데 바위 경연 대회가 열리는 날까지도 설악산에서 금강산으로 가지 못하였고, 이렇게 해서 울산바위는 오도 가도 못하고 설악산에 눌러앉게 되었다.(위키백과)


속초에서 울산바위를 바라보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고 해야 하는데(위 사진 참조) 중년부인의 젖가슴이라니? 그것도 봉긋이 솟아오른 중년 부인의 젖가슴이라니? 구글링을 하여 울산바위의 이미지 검색을 시도해 봐도 봉긋이 솟아오른 사진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병풍처럼 위세 당당한 울산바위를 90도 옆에서 바라보면 혹시 봉긋하단 표현을 쓸 수 있을까? 그렇다면 그런 각도는 속초에서는 결코 나올 수가 없다.


소설은 허구고 이야기일 뿐인데, 장소가 익숙하니 쓸데없이 작가의 시선을 검증하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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