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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r 01. 2024

Retired/Pensioner

오늘 부로 연금생활자가 되었다.


필리핀을 외국인이 입국할 때 작성하는 입국신고서가 있다. 전에는 비행기 안에서 종이 양식에 작성했는데 이제는 비행기 타기 전에 웹에서 작성하고 QR code를 받는다. 여권정보와 한국주소, 전화번호, 필리핀 내 체류지 주소 등을 기입해야 하고, 입국 목적과 직업을 기입해야 한다. 직업(Occupation)은 유형 중에 선택하게 되어 있는데, 어제까지는 Professional/Technical/Administrative였다. 오늘부터는 Retired/Pensioner를 선택해야 한다.


펜션이라 함은 경치 좋은 곳에 위치한 숙박시설을 의미하지만 연금, 생활보조금의 뜻도 있다. 즉 Pensioner란 연금생활자를 뜻한다. 처음 사용하는 단어라 사전을 찾아보았다.


A pensioner is a person who receives a pension, most commonly because of retirement from the workforce. This is a term typically used in the United Kingdom (along with OAP, initialism of old-age pensioner), Ireland and Australia where someone of pensionable age may also be referred to as an 'old age pensioner'. In the United States, the term retiree is more common, and in New Zealand, the term superannuitant is commonly used. In many countries, increasing life expectancy has led to an expansion of the numbers of pensioners, and they are a growing political force. (위키피디아)


은퇴는 자발적 은퇴와 비자발적 은퇴로 나눌 수 있다. 자발적 은퇴는 모든 직장인의 희망이다. 노동을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 노동은 보통 정해진 시간 동안 반복적이라 지루하고 힘들다. 지루한 일 누구나 하기 싫지만 호구를 위해, 자식을 키우기 위해 할 수 없이 한다고 보아야 한다. 


자발적 은퇴 기회가 도래해도 많은 사람들이 은퇴하지 않는다. 불안하기 때문이다.  얼마가 있어야 자신의 노후가 보장받을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엄청 오래 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평균수명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자신이 언제까지 살아남을지 모른다. 어쩌면 기네스북에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물론 아주아주 끔찍한 일이지만...


정년이 도래하여 비자발적 은퇴를 당했지만, 노동하지 않는 삶이 시작되었다.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무엇이 하고 싶으냐다.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다는 bucket list란 것도 해보면 별거 아니란 것을 알만큼 충분히 나이 들었다. 그렇지만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다. 꿈이 객사 아니던가?( https://brunch.co.kr/@jkyoon/551 )


노동하지 않지만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는 인생도 지루하다.


지루한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 매일이 신나고 재미있는 삶을 살고 싶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가 가장 신나는 순간은 비행기표를 검색할 때이다. 언제를 정하지 않고, 심지어 어디를 정하지 않고, 여행(아니 방랑)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검색하다 보면 가성비 좋은, 심지어 가심비도 좋은 비행기표를 찾을 수 있다. 그때부터 나의 방랑이 시작된다.


두 아이(5살 아들과 두 돌이 안된 딸)를 키우며 일도 하는 딸이 3월 초에 일주일 휴가란다. 어렵게 생긴 휴가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다며 어딘가를 가야겠단다(확실히 DNA 반을 공유한 내 딸 맞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동행하면 좋겠단다. 아직 아이들이 너무 어리니... 그래서 딸과 함께 여행지를 찾다 찾다 결정한 곳이 필리핀 세부다. 내 은퇴 기념여행이라는 거창한 의미(?)도 부여했다. 그래서 별로 마음 내키지 않아 하는 아들도 동행할 것을 은근히 강요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자'란 명언을 신봉하는 아들은 일주일 먼저 필리핀을 갔다. 스쿠버다이빙 하다가 세부 공항에서 조인하겠단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꼴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여행은 방랑이 아니다. 바닷가 리조트에서 4박 동안 어린 손주들을 돌봐야 한다. 아직 시작도 안 한 은퇴생활자의 일상은 벗어나지만, 항상 내가 추구하는 여유 있고 우아한 방랑은 절대 아니다.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하고 싶은 것에 손주 돌보는 것도 포함된다'라고 자기 암시(Auto-suggestion) 내지 자기 세뇌(Self-brainwashing)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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