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최후를 맞고 싶은 사람이 있겠냐마는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은 성업 중이다.
새로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여기저기 생겨나는 것을 보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 중에 '나는 스무 살쯤에 요절할 천재일 줄 알았어...'란 구절이 있다. 천재는 요절해야 천재임을 인정받는다. 아무리 젊어서 천재였어도 오래 살아 노화가 진행되면 천재성을 잃어버린다. 뇌도 심각하게 노화되기 때문이다. 천재도 치매, 알츠하이머, 파킨슨 등에 걸리면 이미 천재가 아니다. 과거에 천재였던 것이 아무 의미가 없어진다. 과거는 과거일 뿐... 정신이 온전치 않은 노인일 뿐이다.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일 뿐이다.
요절하지 못하고 어르신이 되었다.
어르신에게 어떤 죽음이 가장 바람직할까?
결국은 나이 들어 죽는다. 피할 수 없다. 비틀비틀하다가 비실비실하다가 결국은 눕는다. 그러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행이다. 바다가 보이는 요양원( https://brunch.co.kr/@jkyoon/83 )을 미리 답사해 놓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전에 죽고 싶지 않을까?
돌연사가 어르신에게 가장 바람직하다. 심혈관질환이나 뇌질환을 갖고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지만 발병이 예측 불가능하기에 돌연사라 부른다. 결국 돌연사는 희망일 뿐이다. 잠자다가 고통 없이 돌연사하는 것은 꿈이다.
그렇다면 차선으로 객사가 바람직하지 않을까?
객사란 객지에서 죽은 것을 의미하며, 객은 손님이나 나그네를 뜻한다. 객사는 집이나 병원, 양로원처럼 죽음을 염두에 둔 장소가 아닌, 길거리 같은 외지나 감옥, 군부대 등 외부 장소에 나가있다가 병이나 사고 등으로 갑작스럽게 급사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심혈관계 질환처럼 건강 상태와 악화 상태의 격차가 심한 병증으로 죽는 경우가 많다. 과거 농경사회에선 역마살이란 말마따나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불행히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거기에 죽기까지 한다는 거니 객사는 죽음 가운데서도 자살과 더불어 매우 불행한 죽음으로 간주되었다. 객사할 팔자란 말도 있듯 단어 자체가 약간 불운, 저주의 의미도 있다.
- 나무위키 '객사' -
객사의 사례는 무지하게 많다. 유명한 당나라 시인 이백과 두보는 모두 방랑생활 하던 중에 객사했다. 톨스토이 역시 기차역에서 죽었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진시황도 원정 중에 객사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집 밖에서 객사했다. 객사는 결코 불행한 죽음이 아니다!
방랑생활이란 단어가 맘에 든다. 객사를 완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면 객사할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방랑생활을 현대의 단어로 바꾸면 여행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떠나고 싶어 하는 여행말이다. 가이드가 있는 패키지여행 말고 개인단독배낭여행이다. 내가 항상 꿈꾸던 여행이다.
객사는 그렇게 완성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