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플렉스 때문에 몸이 고생한다.
7시반 아침을 먹으며 아침의 일상을 충분히 즐기고 나서 선크림까지 바르고 호텔로비를 나서면 9시에서 9시반 사이이다. 심호흡 한번 한다. 관광안내소 아가씨가 써준 목적지를 들고 가슴이 설레인다. 오늘은 어떤 터키아줌마 아저씨들이 나를 도와 오늘의 내 관광일정을 완수하게 해줄까?
트라브존의 서쪽지역을 돌아볼 생각이다. 세라호수를 첫 목적지로 정하고 두쯔코이 부근의 찰코이 마가라시란 동굴을 보고 올 생각이다. 돌무쉬를 갈아타고 세라호수까지는 너무 순조로왔다. 일종의 저수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륙으로 조금 들어온 세라호수에서 두쯔코이로 바로 가는 돌무쉬가 없다. 갈아타야 하는데 돌무쉬 운전수가 두쯔코이 가는 입구에 내려줬다. 아무리 기다려도 두쯔코이 가는 돌무쉬가 안보인다. 안되겠다 싶어 지나가는 젊다못해 어려 보이는 아가씨에게 두쯔코이 가는 돌무쉬 여기서 기다리면 되는거냐고 물었다. 잠깐 하더니 스마트폰의 구글번역기를 꺼내보인다. 그것까지는 필요없고 두쯔코이와 돌무쉬만 외쳤더니 따라오라며 자기가 오던 방향을 되돌아 간다. 무지하게 친절한 아가씨라고 생각하고 따라가는데 음료수나 빵 같은 것 사야하지 않냐고 묻는다. 필요 없다고 나 물 있다고 호텔에서 들고 나온 식수를 보여줬다. 조금 더 가더니 노천카페에서 차 한잔하고 안가겠냐고 제안한다. 이것은 뭐지? 나 지금 터키아가씨 한테 낚이고 있는 것인가? 날은 더워 죽겠는데...
노천카페에 한무리의 여인네들이 앉아 있다가 이 아가씨한테 아는체를 한다. 한 여자와 나누는 말이 이 아저씨 두쯔코이 가는 돌무쉬 태워주러 다시 돌아 온거야. 가르쳐주고 다시 올께 하는 것 같다. 워낙 귀한 동양관광객이라 자기 일행한테 소개해주고 싶었나보다. 순전히 내 해석이다.
드디어 두쯔코이가는 돌무쉬 시작점에 왔다. 유리창에 행선지가 쓰여있다. 운전기사 뷸한이 기다리란다. 손님이 차야 가지하며... 무려 25분을 기다렸다. 이름이 모냐? 트라브존스포르(축구팀)에서 뛰던 용이 아냐? (나중에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니 이을용선수가 트라브존에서 공 찼다.) 두쯔코이에서 찰코이 마가라시는 택시타고 가야한다. 걱정마라 내가 택시 태워주께... 등등. 영어 하나도 못하는 터키 돌무쉬 운전기사와 터키어 하나도 모르는 내가 25분 동안 주고받은 대화다.
두쯔코이에 도착할 무렵 맞은편에서 오던 택시가 돌무쉬와 머리를 맞대고 섰다. 이제 저 택시 타란다. 오면서 뷸한이 전화한 것이다. 택시를 타고 한 참을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여기저기 산사태의 흔적과 보수공사를 하고 있는 현장을 지나 드디어 마가라시 우리말로 동굴 입구에 도착했다. 원래 동굴관광에 취미 없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느라 덥고 힘들어서 동굴 속은 시원하겠지 하며 관광할 마음을 먹었다. 미니버스에서 한무리의 검은 여인네들이 내린다. 두 눈만 보이게 내놓고 검은천으로 온몸을 가렸다. 부르카는 눈조차 망사로 가리는 것이고 두 눈만 내놓은 것은 니캅이라고 한다. 니캅은 주로 사우디와 예멘에서 사용된다. 아마 사우디에서 관광온 여자들이다 생각했다. 난 사실 이렇게 온몸을 검은천으로 두른 여인네들을 이렇게 가까이서 많이 본 적이 없다. 자세히 눈만 봤다. 보이는 것이 그것 밖에 없으니... 두 눈은 크고 속눈섭 또한 붙였는지 길고 까맣다. 신발까지 다 가려지는 니캅을 쓰고 있으면 저 검은천 속에 누가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아가씨인지 아줌마인지... 결국 허리가 날씬하면 아가씨일 것이라고 상상하고 허리가 굵으면 아줌마라고 상상한다. 해발고도 1050 미터에 있는 칼코이 마가라시는 갈라진 화산암 사이로 석회성분이 흘러들어 종유석이 생기기 시작하는 동굴이었다. 폭 1미터 정도되는 나무보행로를 따라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워낙 유명한 석회동굴과 만장굴 같은 큰 용암동굴을 많이 보아왔기에 사실 굴로서는 시시했다. 어제 관광안내소 아가씨들이 호들갑을 떨어서 그렇지...
니캅을 쓴 키 작은 아줌마가 내 앞을 간다. 보행로 중간에 오르는 계단이 가끔 있다. 긴 검은베일이 발에 밟힐까봐 계단을 오를 때 손으로 베일을 걷어 올린다. 그 순간 검은 베일 밑으로 신발이 보인다. 완전 은색으로 화려하게 치장된 20센티는 될 것 같은 통굽의 구두가... 아니 눈만 내놓고 다니면서 검은 니캅속에 화려한 통굽이라니... 저 신발로 어떻게 동굴관광을 한다는 것일까? 눈만 내놓고 다녀 아무도 자신을 알아볼 수 없는데 왜 키높이를 하는 것일까?
심한 컴플렉스 때문에 몸이 고생하는구나 했다.
오는 길에 해안도로를 돌무쉬가 달린다. 갈 때도 보았던 Medical Park 라고 쓰인 큰 건물이 바다쪽 언덕에 좋은 자리를 잡고 있다. Emergency 라고 쓰인 것으로 보아 병원이다. 병원에 Park 라니...
일반병원이 아니고 요양병원이라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한다. 흑해를 북쪽으로 마주하고 매일 오른쪽에서 일출을 볼 수 있고 왼쪽에서는 일몰을 볼 수 있다.
우석아.
아빠는 길에서 이 세상을 하직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거동도 못하고 정신도 오락가락하여 요양병원에 보내야 한다면 너랑 배타고 낚시하는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부탁한다. 산이 보이는 곳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