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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Nov 19. 2024

호엔촐레른 다리

멀쩡한 자물쇠를 버린 사람들.


쾰른 대성당 앞에서 라인강을 건너는 다리가 있다. 호엔촐레른 다리라고 한다. 성당 반대편 쾰른 트라이앵글이란 전망대에서 일몰 시간에 쾰른을 조망하고 내려와 성당을 보면서 다리를 걸었다. 다리는 철교 역할을 하는데 쾰른 중앙역으로 가는 중요한 다리다. 철길 쪽 다리 난간에 어마 무시한 자물쇠들이 걸려있다. 긴 다리 전체를 걸다 걸다 넘쳐나, 자물쇠에 걸린 자물쇠가 난간을 뻗어 나와 기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수만 개가 아니고 수십만 개 내지 수백만 개의 자물쇠가 여기 버려져(?) 있다.


수백만의 커플들이 우리 사랑 변치 말자며 이 다리 난간에 자물쇠를 채웠다.


사랑이 변할까 걱정된 것이다. 그래서 첨탑으로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다가간 대성당 옆에 우리 사랑 변하지 않게 지켜달라고 자물쇠를 채운 것이다. 자물쇠 채운 대부분의 커플들은 사랑이 식어 원수가 되거나 남남이 된 많은 커플을 보아왔다. 그래서 혹시 여기 자물쇠를 채우면 우리 사랑은 하나님이 보우하사, 변하지 않고 영원하길 기원한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은 결국 식는다.


3일 만에 식는 커플도 있고, 3달 만에 남남되는 커플도 있고, 3년 만에 원수가 되는 커플도 있다.

30년을 사랑이 식지 않았다면, 둘이 서로 가스라이팅하고 있는 것 아닐까? 내가 너무 냉소적인가?




사랑도 조건이 맞아야 싹트는 것 아닐까?


백마 타고 오는 왕자는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 우선 신분이 왕자다. 신분은 세습되는 것이다.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나 왕자가 되었으니 잘 생겼을 수밖에 없다. 잘 생겼다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개인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왕자라는 것만으로 잘 생겼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고 나를 의심해야 한다. 왕자는 노동할 이유나 필요가 없으니 백마 타고 돌아다니며 인생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이보다 더 좋은 조건 갖춘 남자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런 왕자를 내가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워낙 귀하기 때문이다.


숲 속에서 난쟁이들과 함께 사는 백설공주는 마음이 착해 피부가 백옥 같다. 흑심이 전혀 없어 마녀가 주는 독 묻은 사과를 의심하지 않았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마음이 너무 착해 물레를 돌리는 마녀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공주들은 원래 천성이 착하다. 고귀한 가문에서 아쉬울 것 없이 자랐으니 마음이 고운 것은 당연하다. 착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니 이런 조건 갖춘 여자 어디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런 공주를 내가 만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워낙 귀하기 때문이다.


한평생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상대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끊임없이 연애를 해야 수십 명 아닐까? 인생의 목적이 사랑할 상대를 만나는 것이라며 죽어라고 달려봐야 수백 명 아닐까? 그중에 공주나 왕자가 있을 확률은 제로다. 결국은 공주도 아니고 왕자도 아닌 상대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사는 것 아니겠는가?


마음속에는 왕자와 공주를 만나지 못한 운명을 원망하면서...


왕자도 아니고 공주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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