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말투 하나로 호감이 쌓이는 대화법

by JLee


어느 날 지인들이 여럿 모인 자리였다.


어떠한 대화가 오가던 중 60대 중반의 한 남자 어른이 '남녀의 역할'에 대한 의견을 한 마디 건네셨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건 여자만의 역할이 아니죠옷!"


평소에도 똑 부러지던 한 여자 후배가 숨도 쉬지 않고 맞받아쳤다.


짧은 시간이지만 분위기가 싸해졌고 그 어르신도 머쓱한 듯 별다른 대답이 없으셨다. 그리고 그 후배의 당돌한 모습에서 나는 10년 전 내 모습을 봤다.




내가 옳다고 믿는 걸 말하는 게 용기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고정관념에 치우쳐 라떼 얘기를 하는 어른들을 불편해했고, 세상은 변하는데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딱히 존중하지 않았다. 특히 그게 남녀의 고정된 성 역할에 관련된 얘기라면 더더욱 목소리를 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나를 "깨어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고 믿던 시절, 내 얘기에 분위기가 싸해지든, 상대방이 무안해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옳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kenny-eliason-WwrQnL0Gi1c-unsplash.jpg 출처: unsplash.com


하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으며, 가끔은 하고 싶은 얘기도 참을 줄 아는 것, 상대방의 생각을 단순히 고리타분한 고정관념이라고 치부하지 않는 것이, 어쩌면 내 잘난 생각을 피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때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융통성이란 게 하염없이 부족한 나로서는, 서로의 기분은 상하지 않으면서 내 의견은 전달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어느 날, <핑계고>란 유튜브를 보던 날이었다.


그날의 게스트는 '별'과 '케이윌'


별이 등장하자 유재석과 케이윌은 각각 '제수씨', '형수님'이라며 별을 불렀다. 그녀가 하하의 와이프라는 것을 중심에 둔 호칭이었으리라.


하지만 별이 하하와 결혼하기 전부터 별과 유재석은 아는 사이였고, 원래 둘은 서로 이름을 부르며 '오빠동생'하던 사이라고 했다. 케이윌과도 마찬가지.


그런데 결혼과 동시에 별은 이름을 잃었고, '하하의 아내'로서의 새 정체성을 얻은 셈이었다.



별은 '제수씨', '형수님' 이런 호칭이 싫다며 유재석을 향해 말했다.


오빠, 저 섭섭해요.
우리 원래 알던 사이잖아요.


전통이니 뭐니 들먹일 필요도 없고, 생각이 너무 고리타분하다고 핀잔줄 필요도 없이, 적당한 선에서 내 의견은 피력하되 그 말을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한 모습이었다. 대화의 초점을 '상대방의 잘못'이 아닌 '나의 서운함'에 둔 채로.


이날 유독 헤메코까지 찰떡인 별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는지.


그리고 이후 유재석은 내내 별을 그녀의 이름으로 불렀다.



알아들을 사람이면 무안을 주며 직언을 하지 않고도 알아들을 것이고, 못 알아들을 사람이면 어차피 대놓고 얘기해도 못 알아들을 것이다.


상황에 대한 고려가 없이 날카롭게 얘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소신 발언은 안 하느니만 못한 경우도 많으며, 내가 옳다는 믿음으로 할 말을 가리지 않고 하는 게 반드시 그 사람을 깨어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지도 않음을 또 배웠다.


14.PNG 출처: www.juliefischercoaching.com


이런 것들은 나이 들면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인 줄 알았는데, 여전히 이렇게 끊임없이 깨닫고 반성하며 살아간다. 아직도 배울 게 너무 많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