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어느 날의 일기 한토막
어젯밤, 또 온몸이 가려워 밤새 뒤척이다 결국 이불을 걷어내고 거실로 나왔다.
몇 년째 늘 예고 없이 찾아오는 그분이 오셨구나.
새벽 2시, 화장실 불을 켜고 거울 앞에 서서 온몸을 살펴보니 역시나 팔, 다리, 배, 등 어느 한 곳 멀쩡한 데가 없다. 핑크색으로 돋아난 두드러기에 난도질하듯 긁어댄 내 손톱자국까지 합쳐지니 호러무비가 따로 없다.
알레르기 약 한 알을 삼키고 약효가 날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아 소파에 앉아 눈을 감았다.
조명 하나 밝히지 않은 깜깜한 거실에 멍하니 있다 보니 새벽 감성이 돋은 건지 문득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이것도 병이라면 병인데,
이런 병이라면 언제든 환영 아니겠냐고.
괴롭고 힘든데 약도 없는 고약한 병이 태반인 이 세상, 그저 조금 가렵고 조금 불편한 이 병은 그 고약함의 범위에는 감히 끼지도 못할 일인 데다가, 심지어 애기 손톱보다도 작은 한 알의 약과 약간의 시간이면 해결되는 그야말로 '아무 일도 아닌 것' 아닌가.
늘 '불청객'이라고 생각했던 이 두드러기가 처음으로 '반가운 손님'처럼 느껴진 이상한 새벽이었다.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얼마 전 책을 읽다 눈이 번뜩 뜨여 잽싸게 메모해 뒀던 구절이었다.
"어려운 장애를 만났을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쓴 불교의 <보왕삼매론>에 나오는 수행법 중 일부라 했다.
'무병장수' 대신 '유병행수'
병 없이 오래 살기를 바라지는 않되, 자잘한 병이 있어도 그 병이 일상의 소소한 행복까지는 해치지 않는, 혹은 그걸 견뎌낼 만한 힘이 있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사진 출처: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