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을까?
캐나다에서 의사 한번 만나는 게 왜 이리 어려운지.
의사 만나려고 기다려, 검사받으려고 기다려, 결과 듣기까지 또 기다려... 기나긴 기다림의 연속은 기본, 이렇게 시간 끌다가 있던 병이 낫는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증상이 악화되거나 숨어 있는 병을 키우고 있어도 딱히 다른 방법은 없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내 이야기>
4월 초, 오른쪽 귀에서 '이명' 현상이 발생했다. 이비인후과 닥터를 만나기 위해선 일반의의 추천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문제는 이곳에선 일반의를 만나는 것부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 것.
캐나다 빅토리아에서 일반의를 만나는 과정
1. 병원 방문 전 전화 예약 필수, 단 당일 예약만 받음.
2. 신규 환자는 아예 안 받는 병원도 여러 곳.
3. 병원 오픈 시간에 맞춰 미친 듯이 전화, 물론 통화가 한 번에 될 리가 없음.
4. 수강 신청 혹은 콘서트 티켓 예약하듯이 계속 시도하다가 "오늘 예약은 꽉 찼습니다"하는 안내 메시지가 나오면 다음날 다시 시도.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가 어느 날 기적적으로 겨우 한자리를 잡았다.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일단 예약부터 하고 바로 매니저한테 얘기했다.
"있잖아, 나 오늘 오후에 워크인 클리닉 예약이 잡혀서 거기 가야 할 것 같아."
그랬더니 매니저의 첫마디-
Congratulations!
앜ㅋㅋㅋㅋ 축하한대 ㅋㅋ 아니 의사 만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면, 당일날 오후에 갑자기 병원 가겠다는 직원한테 대뜸 축하인사부터 건네는 이곳.
그렇게 어렵게 만난 의사와 짧디 짧은 상담 후 이비인후과 의사한테 추천서를 넣어달라 요청했다.
나: 여기 전체에 이비인후과 의사는 몇 명이나 있어요?
의사: 한번 세볼게요, 하나, 둘, 셋... 5명이네요.
나: 5명?? (아 진짜 미치겠다ㅋㅋㅋ 서울은 사거리 한 군데만 해도 이비인후과 5개는 있을 텐데...)
의사: 그런데 그중 2명은 대기시간이 18~24개월이고요. 그나마 대기시간이 짧은 닥터 2명한테 추천서 넣어드릴게요. 이 둘은 대기시간이 2~6개월이에요.
그리고 얼마 전, 그중 한 곳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ㅇㅇㅇ님, 9월 26일 예약되셨습니다."
하아.... 대기시간이 2~6개월이라더니 거짓말은 아니었네. 정말 정직하게 5개월 후로 예약을 잡아줬다.
이명 따위, 생사가 달린 문제가 아니니 응급실에 갈 일도 아니고, 이비인후과 의사를 보기 전까지 뭐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의사를 본다고 한들 뾰족한 수가 있는 병도 아니라고는 하지만, 진짜 미치겠네 여기.
"은퇴 후 살기 좋은 도시 1위"라는 명성이 무색하게, 이렇게 의사 한번 만나기조차 너무 어려운 이곳.
진료비, 약값, 심지어 건강보험료까지 다 공짜면 뭐 해, 그 혜택을 받을 수가 없는데.
누가 그랬지, 빅토리아는 병원 갈 일만 없으면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지만 사람이 사는데 병원 갈 일이 전혀 없을 수 있나. 아무리 젊고 건강한 사람이라도 이래저래 의사 만날 일이 한 번씩은 생기게 되는 법인데.
그래도 아직은 젊어 괜찮다,
그래도 아직은 건강하니 다행이다,
생각하며 살다가도...
이렇게 한 번씩 병원과의 전쟁을 치르고 나면 나중에 조금 더 나이 들어 의사의 도움이 더 절실해지는 때가 오면 어찌 살아야 할지 조금은 걱정이다.
사진 출처: unsplash.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