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리 잔혹할 수가 있을까. 비좁은 차 안의 두 살 아들과 친엄마를 앉혀두고 12살 어린 생명을 목 졸라 죽이다니.
친엄마라는 사람은 자신이 열 달 배 아파 낳은 딸이 바로 뒷좌석에서 목이 졸려 숨이 넘어가는데도 그대로 앉아 있었단 말인가. 사람이 얼마나 잔인하면 이럴 수 있을까.
갈수록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해 간다. 낙태죄를 반대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동물보호법이 갈수록 강화되는 이유도 바로 생명을 존중하기 위함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잔혹한 범죄는 더 자주 발생할지 모른다. 사람들의 정서가 더욱 삭막해지면 사회는 점점 불안의 늪으로 빠질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정서 순화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지극히 인정주의였고, 예의와 효와 겸손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았던 우리 사회였다(이런 예전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진정한 보수주의자이다).
‘경제’만 강조하는 사회적, 정치적 분위기도 사회를 삭막하게 하는 요인이다. 정치권에서는 ‘경제’가 상대 세력을 공격하는 무기로 전락한 지 오래다. 어려워진 경제로 힘들어 하는 국민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오로지 자신들 세력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다. 그것이 먹히는 까닭은 사람들이 그만큼 돈을 삶의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의 고단함을, 사업의 어려움을 반사적으로 국가 경제 탓으로 돌린다.
가난해도 행복하였던, 가난해도 인정과 낭만이 충만하였던 우리 사회가 변해도 너무 변해간다.
남녀, 나이, 지위를 불문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잔혹한 범죄들. 배고픈 시절에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범죄들, 피눈물을 흘린 사람들을 이해하고 감싸주기 보다는 정치적 이념의 잣대로 잔인하게 비난하고 매도하는 현상들.
문인을 비롯한 우리나라 문화예술인들은 여전히 배고프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책도 지독히 안 팔린다. 문화예술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정서적 욕구가 그만큼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사람들의 정서는 삭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매일 쏟아지는 책이 공해라고. 하지만 그 공해보다 무서운 것은 책 자체를 안 읽는 것이다. 그나마 책(특히 문학류)을 출간하는 저자들은 글이라도 쓰면서 자신의 정서를 충만케 하기라도 한다.
의붓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30대 남성에 이어 조력자 역할을 한 친엄마, 두 살배기 젖먹이 아들 앞에서 딸을 목 졸라 살해한 부부의 잔혹한 행각이 경찰 수사를 통해 드러났다.
부부는 사건 당일 목포터미널 인근 도심에서 공중전화로 딸을 불러내 차에 태우고 살해 장소로 이동하였다. 청테이프와 노끈 등 범행도구를 미리 준비하였다.
의붓아버지가 차를 운전했는데 조수석에는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두 살 아들이, 뒷좌석에는 친엄마와 딸이 앉았다.
범행 장소에 도착해 부부는 자리를 바꿔 앉아, 의붓아버지가 뒷좌석에서 딸을 목 졸라 살해하였다. 젖먹이 아들은 앞좌석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숨진 딸은 2016년부터 작년까지 광주에 사는 의붓아버지 집과 목포의 친아버지 집을 오가며 지냈다. 딸은 최근 친아버지에게 의붓아버지와 생활하는 동안 성추행을 당했다고 호소했고, 친아버지는 지난 9일 목포경찰서에 관련 혐의를 조사해달라고 진정서를 냈다. 딸은 20일 후 살해당하였다. 경찰의 대처가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