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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드림 hd books Jul 28. 2019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 일본 불매운동 들불 될 것

일본 불매운동은 아베를 향한 ‘홀로 아리랑’

술을 한 잔 마신 탓인지, 일본을 향한 분노가 취기처럼 올랐다. 유튜브에서 ‘홀로 아리랑’을 두어 시간 동안 반복해서 들었다. 백 번을 들어도 노래가 주는 우리 민족 정서는 사그라질 줄 몰랐다. 

유튜브에는 서로 다른 이들이 부른 이 노래와 연주 동영상이 3~40개는 올라와 있는 듯하였다. 하나씩 하나씩 클릭하며 거의 다 들었다. 듣는 노래마다 끝내 하나의 정서로 귀속되지만, 각기 흐르는 결은 달랐다.

송소희가 부른 ‘홀로 아리랑’을 비롯하여, 북경의 평양식당에서 미모의 북한 가수가 부른 ‘홀로 아리랑’, 이승철 지휘로 탈북청년 합창단이 부른 ‘홀로 아리랑’, 조용필, 소향, 김진선과 노상신 등등의 홀로 아리랑이 하나 같이 눈물샘을 자극하였다.

노래의 애절함도 그러려니와, 노래 가사 문장 하나하나는 지금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일본이 일으킨 경제사변을 대처해야 하는지 절절히 외치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바로 독도였다. 독도는 고독하게 일본과 맞서는 누군가를 떠올리게도 하였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독도를 바라보면 부끄러울 사람이 우리 가운데는 있을 수도 있다. 

멀리 동해 끝자락에서 조국을 바라보며 눈물지을 독도를 생각하니 와락 안아주고 싶었다. 35년 동안이나 조국을 능멸할 일본이,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삼키기 위해 뱀의 혀처럼 날름거릴 때마다 독도는 얼마나 소름이 돋을까. 

‘홀로 아리랑’은 ‘한돌’이 작사 작곡한 노래로 안다. 일찍이 서유석의 ‘홀로 아리랑’ 버전이 유명하였다. 전통 아리랑 선율과 비슷해선지 부르는 사람마다 색다른 맛을 낸다.    

 

저 멀리 동해 바다 외로운 섬 / 오늘도 거센 바람 불어오겠지

조그만 얼굴로 바람 맞으니 /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금강산 맑은 물은 동해로 흐르고 / 설악산 맑은 물도 동해가는데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백두산 두만강에서 배 타고 떠나라 / 한라산 제주에서 배 타고 간다 

가다가 홀로 섬에 닻을 내리고 / 떠오르는 아침 해를 맞이해 보자

아리랑 아리랑 홀로 아리랑 / 아리랑 고개를 넘어가 보자 

가다가 힘들면 쉬어 가더라도 /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살을 깎아내리는 거친 비바람과 파도를 견디며 독도는 조국을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다.

우리네 마음들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독도는 본래 외로운 섬이 아니라 독도 강치 천국인 행복한 섬이었다. 난류와 한류가 뒤섞여 먹이가 풍부한 독도는, 바다사자(독도 강치)들의 주요 번식지이자 서식지였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바다사자를 '가제' 또는 '가지'로 불렀다. 독도를 중심으로 동해에만 수만 마리가 서식하였는데, 주로 독도 가제바위에서 머물렀다. 

러일 전쟁 전후로 일본은 가죽을 얻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강치 집단학살극을 벌렸다. 동해는 붉은 피로 물들었다. 얼마나 많은 강치를 학살하였는지 육지까지 그 피비린내가 흘러들어왔다.

독도강치는 바다사자 무리 중에서 가장 영리하여 돌고래보다 훨씬 지능이 높으며, 덩치도 컷다. 덩치 큰 숫 강치는 일본 어부들이 위험을 느껴 총을 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용맹하고 위엄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 어부들은 수년 동안 대량으로 이들을 잡아, 1940년대 초반 끝내 강치를 멸종 시키고 말았다. 일제의 혹독한 사냥질을 당하며 독도 강치들은 고통스럽게 죽어간 것이다. 독도도 공포에 휩싸여 잠 못 이루었음은 물론이다. 남아 있던 강치도 모두 어디론가 떠나고 말았다. 강치가 사라진 이후 지금껏 외로운 섬으로 떠 있었는데, 음흉한 일본이 계속 혀를 날름거리는 것이다.     

이춘해 동화 [독도에서 개굴개굴]의 출간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독도 신화를 꾸며본 적 있다. 박혁거세 신화 일부로 창작한 것이다.     


훗날 신라의 중심이 된 진한(辰韓) 땅의 여섯 마을 우두머리들이 모여, 자신들을 통합하여 다스릴 군왕을 뽑기 위해 한창 논의를 하는 중이었다. 마침 그때 양산 기슭의 나정이라는 우물가에서 번개와 같은 이상한 광채가 보여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흰말이 한 곳을 향해 엎드려 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도 이상하여 우두머리들이 찾아가 살펴보니, 자줏빛 알이 있었는데 흰말은 사람들을 보자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우두머리들이 깨뜨린 알에서는 경이롭게도 사내아이가 나왔다. 목욕을 시키는 아이 온몸에서는 빛살이 뿜어 나왔다. 우두머리들은 알의 껍데기조차 신령스러워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그들은 껍데기를 조심스럽게 운반하여 강물 위로 띄워 보냈다. 그러자 한 무리의 강치 떼가 나타나 커다란 껍데기를 밀며 바다로 나갔다. 동해 끝자락 즈음 이르렀을 때, 하늘에서 다시 흰말이 우렁차게 울며 바다를 흔들었다, 그 순간 껍데기가 바위섬으로 변하였다. 강치들은 그때부터 섬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아갔다.      


일본은 대한민국을 강점하면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 재산 강탈은 기본이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잔혹한 방법으로 우리 국민의 생명을 앗아갔다. 사무라이, 마루타, 가미가재, 고래사냥 등으로 대변하는 잔혹성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바다. 이런 잔혹한 이들에게 우리 선조들이 35년 동안이나 당하였으니 한 세상 작히나 불행한 삶이었으랴. 선조는 다름 아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로서 결코 오래 전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대로 된 반성이 없었다. 오히려 신사참배를 강행하며 주변국의 상처를 건드려왔다.      


일본군 성노예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임진왜란 7년과 일제강점 35년 합쳐 42년 동안 그들은 우리나라 부녀를 얼마나 농락하였을까. 부끄럽지만 그 씨앗들이 세대를 이어가며 우리 사이에서 존재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조국의 힘없는 여성들이 성노예로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했던 남자들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에게 무참히 지배당한 국가라는 수치심이 우리에겐 있고, 일본인들에겐 자신들이 종놈 부리듯 지배한 국가라는 우월감이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일본인 같은 부류의 우월감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집에서 머슴 살았던 사람이나 그 자손이 잘되어 있으면, 과거를 끄집어내어 은근히 비하하였던 사람들이다.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집요하고, 치밀하고, 교활하게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 갈등을 일으켰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거의 50년이 넘도록 독도를 향한 그들의 집요한 집착을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이번 경제 침략도 지칠 줄 모르는 그들의 근성에서 비롯된 듯도 하다. 일본 사태를 겪고 나서야 지난 50동안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예속되어 있었는지 보게 되었다.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도 종속되어 간 것이다. 첨단 분야 이외도 여행, 먹을거리, 입을거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빨대를 꽂은 일본은, 해방 이후에도 대한민국을 쪽쪽 빨아먹고 있었다. 국제수지 적자는 천문학적이었다.   

언젠가 한 방 터트리기 위해 일본은 치밀하게 대한민국을 관리해 온 셈이다. 앞에서는 굽실거리도록 친절하면서도 돌아서면 칼 꼽는 게 일본인의 근성으로 알았는데, 이번 경제 침략에서 그런 작태가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일본 불매운동을 감정적 대응 정도로 치부한다. 자국 국민의 일본 불매운동을 퇴행적이며 저급한 반일 감정으로 폄훼하는 것이다. 참으로 씁쓸할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만한 저항의 표시도 없이 그저 외교적 해결을 기대하기 바라며 아무 일 없는 듯 우리는 열심히 일제를 애용해야 하는 것일까. 

자신에게 조금만 피해를 가해도 난리법석을 떠는 세상에서 자비롭기도 한 생각이다. 일제 불매운동은 단순한 감성팔이가 아니다. 조국이 세 번 째 치욕을 당하는데, 어찌 민족의 감정을 탓할 수 있을까. 일본이 우리 감정 항아리를 깨트렸으니, 반일감정이 흥건하게 흘러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아닌가.     


타고난 일본의 근성은 변할 수 없다. 아무리 친하게 지내더라도 일본은 영원히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일본이 끝내 대한민국을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뺀다면, 국경일이면 대형 태극기를 거는 우리 해드림 홍보실에다 나만의 항의를 표현한 플래카드를 광복절까지 걸어둘 참이다.

국내 정치적 대립은 물론 지금은 북한과도 대립할 때가 아니다. 한반도를 지키려면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도 일본의 경제적 침탈을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을 드러내는 도구로 활용하여서는 안 된다. 일본의 침탈 앞에서조차 정치적으로 극렬히 대립하는 현상을 일본은 내심 얼마나 즐기고 있을까. 

자꾸 홀로 아리랑의 가사가 귓가를 맴돈다.     


우리네 마음은 어디로 가는가

언제쯤 우리는 하나가 될까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내 것’, ‘우리 것’을 찾아 헤매는 발길은 닿는 곳 모두가 유정하고 다감하다. 이 땅의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스치는 대상 모두가 범상치 않고 거룩한 존재들로 다가오는 것이다. 서낭당의 돌탑에서도, 허물어진 성터 이끼 낀 돌탑에서도 우리 민족의 살아있는 전통을 배우고 겨레의 뜨거운 핏줄에서 용솟음치는 맥박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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