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페스트(The Plague)』는 단순히 전염병을 다룬 이야기로 읽히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본질과 도덕적 선택, 그리고 연대의 의미를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깊이를 지닌 소설이다. 전염병이라는 재난 속에서 인간이 겪는 고통과 갈등은 단지 물리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정신적·도덕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작품 속에서 페스트로 고립된 오랑시의 사람들은 생사의 경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삶과 죽음, 그리고 인간다움에 대해 고민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들의 연대는 카뮈가 부조리 철학에서 주장한 메시지와 연결되며,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행동하며 의미를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페스트라는 재난은 인간 존재의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죽음은 무작위로 찾아오며, 누구도 이를 막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크게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누군가는 도망치려 하고, 누군가는 체념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행동한다. 타루(Tarrou), 리외(Rieux), 랑베르(Rambert) 같은 인물들은 각기 다른 동기와 배경을 가지고 재난에 맞서지만, 이들을 묶는 공통점은 타인과의 연대라는 점이다. 특히 리외의 경우, 그는 의사로서 자신의 윤리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끝까지 싸운다. 그가 페스트의 종식이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히 의무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행동은 부조리한 세계 속에서도 선택과 행동의 자유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한다.
타루는 또 다른 방식으로 연대의 모델을 제시한다. 그는 이상적인 정의를 추구하며 페스트와의 싸움을 개인적 구원의 수단으로 삼는다. 타루의 시선은 인간의 연대를 철학적으로 확장한다. 그는 인간 모두가 죄를 짓는 존재라 믿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돕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려 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단순한 윤리적 책임감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몸부림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타루의 연대는 인간이 스스로를 넘어서는 순간에 빛을 발한다. 그는 개인의 도덕적 성장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고자 한다.
카뮈가 그리는 연대는 단순히 이상적인 도덕적 개념으로 머물지 않는다. 이는 생존을 위한 본능적 선택이자,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저항의 방식이다. 작품 후반부에서 리외는 "페스트균은 결코 죽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단지 질병의 생물학적 특성을 암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언제든 인간 사회를 위협할 수 있는 부조리와 재난의 상징적 속성을 드러낸다. 따라서 연대는 희망적 메시지가 아니라, 현실적이고 필수적인 생존 전략으로 제시된다.
이 작품의 핵심은 인간이 부조리한 현실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카뮈는 절망 속에서도 선택하고 행동하며 연대하는 인간의 모습에 주목한다. 이는 그가 『시지프 신화(The Myth of Sisyphus)』에서 제시한 ‘반항하는 인간’의 모습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개인의 고립을 넘어 타인과 함께 행동하는 연대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페스트』는 이 점에서 단순한 소설이 아닌, 독자에게 깊은 철학적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결국, 카뮈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 존재가 부조리 속에서도 어떻게 삶의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지를 탐구한다.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자신도 삶이라는 무대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재난과 위기의 순간, 연대는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이고 필수적인 인간다움의 표현이다. 『페스트』는 이를 통찰하도록 도와주는 한편, 인간이 지닌 저항과 연대의 힘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1913~1960)는 프랑스의 소설가, 극작가, 철학자이며, 20세기 실존주의와 부조리 철학의 대표적 사상가로 꼽힌다. 그는 알제리에서 태어나 식민지 사회와 유럽 중심적 세계관을 경험하며 성장했으며, 그의 작품 세계에는 이러한 배경이 뚜렷하게 반영된다. 카뮈는 인간 존재의 부조리와 그 속에서 의미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저항을 주제로 한 작품을 통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표작으로는 전염병을 통해 인간의 연대와 도덕적 선택을 탐구한 『페스트(The Plague)』, 인간의 부조리한 삶을 철학적으로 고찰한 『시지프 신화(The Myth of Sisyphus)』, 그리고 실존적 고독과 도덕적 책임을 다룬 『이방인(The Stranger)』 등이 있다. 1957년, 그는 인류의 양심을 일깨우는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짧은 생애 동안 인간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