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성교회 김주은혜, 손이 아닌 눈으로 쓴 시 ‘숨’

by 해드림 hd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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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은혜


전에 나는 내가 숨을 쉬는지 몰랐다

내 안에 풍선이 저절로 부풀고 꺼지고

생명이 들락날락하는것을 몰랐다


지금 나는 내가 숨을 쉬는지 안다

내 안에 쪼그라든 풍선이 간신히 펴지고

생명을 열심히 끌고가는 것을 안다


이제 나는 내 모든 숨을 느낀다

매분 매초 기계음을 귀로 들으며

전력질주를 한듯 들썩이는 가슴을 눈으로 보며

내 생명을 고스란히 느낀다


태초에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가 무엇인지

비로소 나는 알았다

한 줌의 숨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산다

나를 살리기 위해 열심인 저 기계처럼

미안하지 않기 위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이 시 「숨」은 루게릭병으로 온몸의 근육이 마비되어 오직 눈썹만을 움직일 수 있는 시인이, 안구 마우스를 통해 써낸 생명의 언어이자 마지막까지도 삶을 붙잡는 의지의 증거입니다. 이 시는 단순한 언어의 나열이 아니라, 병마 속에서도 생명을 ‘의식적으로’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의 고백이며, 존재론적 각성과 신앙적 통찰이 섞인 깊은 명상시입니다.


� 숨을 ‘의식한다’는 놀라운 각성


시의 첫 연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전에 나는 내가 숨을 쉬는지 몰랐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호흡합니다. 숨은 ‘저절로’ 쉬어지는 것이고, 생명의 기본적인 기능이기에 우리는 그것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질병으로 인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호흡이 기계에 의존되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가 생존의 여부를 가르는 실존적 문제임을 체감합니다. 이전에는 몰랐던 호흡, 생명의 운동, 그 절박함이 이제는 생생히 감각되는 것이죠.

“내 안에 쪼그라든 풍선이 간신히 펴지고

생명을 열심히 끌고 가는 것을 안다”

이 구절은 인간의 폐를 풍선에 비유함으로써 생물학적인 기능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습니다. ‘간신히’라는 부사, 그리고 ‘열심히’라는 의지의 형용사는 기계가 도와주는 생명 유지의 상태를 묘사하면서도, 그 생명을 지켜내기 위한 치열한 투쟁의 흔적을 내포합니다. ‘숨’이란 단어 하나가 이렇게까지 절실한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우리는 이 시를 통해 배웁니다.


� 신성한 호흡의 재발견


시인은 “태초에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를 말하며, 인간이 숨을 쉬는 행위가 단순한 생리작용이 아니라 신이 부여한 존재의 근원이라는 점을 깨닫습니다.

“한 줌의 숨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 짧은 구절에는 철학적 깊이가 담겨 있습니다. 숨은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산소의 교환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신성한 에너지’임을 시인은 이해합니다. 루게릭병이라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이 시인이 자신의 숨을 ‘느끼며’, 그것을 ‘신의 숨결’로 인식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 미안하지 않기 위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시의 마지막 연은 시인의 결연한 생의 의지를 드러냅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열심인 저 기계처럼

미안하지 않기 위해

후회하지 않기 위해”

시인은 기계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그 생명이 헛되지 않도록, 다른 이들에게 ‘미안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자 합니다. 단지 숨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아내는’ 주체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태도가 이 시의 핵심입니다. 생존과 생명의 차이를 말없이 증명하는 대목입니다.


이 시는 육체의 자유를 잃은 한 인간이, 언어의 자유를 오로지 눈동자와 눈썹 깜박임으로 되찾아낸 기적입니다. 단어 하나하나가 생명과 맞바꾼 호흡이며, 신과 인간, 기계와 생명, 후회와 용서가 맞닿아 있는 경계선 위에서 쓰였습니다.

「숨」은 단지 아픈 사람의 시가 아닙니다. 살아있지만 ‘사는 법’을 잊은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자신의 숨을 느끼고 있습니까?"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일상의 호흡 하나에도 감사하게 만드는 이 시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기도이며 선언입니다. '숨'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얼마나 값진지 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 시는 조용하지만 강한 일침이 됩니다.


김주은혜, 존재의 숭고함을 보이는 시들-숨, 딸,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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