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虛構) 도입 문제를 두고 수필 문단에서 한때, 찬성과 반대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한 적이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채 내연(內燃)을 거듭하고 있다. 양측 논거는 대략 이러하다. 허구 도입을 찬성하는 측은 수필도 문학인 이상 문학성 획득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수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고, 반대 측의 주장은 수필은 어디까지나 자기 가 갖고 있는 정체성이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허구를 도입한 글쓰기를 하면 수필 본래의 특성을 훼손할 뿐만이 아니라, 사실로 믿게 만들어 독자에게도 혼란과 배신감을 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다음의 사례의 글에서 보듯이 이미 가려졌다고 본다. 그 실례가 있다.
일본 작가 구리요혜이가 쓴 '우동 한 그릇'이란 작품을 기억할 것이다. 그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때 감동의 물결을 이루었다. 사실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발표도 수필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그리 믿었다. 한데 그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 허구로 판명이 났다. 당연히 독자들은 속았다며 분개하였다.
왜 이런 그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독자들은 그 작품을 수필 작품으로 대하고 읽었고, 수필은 허구로 쓰는 글이 아니라고 믿었기에 배신감을 느낀 것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하다. 수필은 지어서 써서는 아니 되며, 거짓됨이 없이 진실하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은 애초부터 출발을 그렇게 했다. 허구가 아닌 사실, 진실을 쓰는 문학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태어난 장르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 작가와 독자가 합의한 사항이며 어디에다 명시를 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그리 인정하고 관행화시킨 것이다.
허구로 쓴 글이 감동이 없는 건 아니다. 소설과 희곡들은 허구가 감동을 일으킨다. 또 그렇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은 애초에 그런 장르는 허구로 써도 되게끔 인정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기량에 따라서 상상과 허구를 버무려서 쓸 수 있다. 오히려 그 능력 발휘 여부가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하나의 예를 들면, 전에 어느 시인은 있지도 않은 여동생을 등장시켜 그 동생이 죽은 듯이 애절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비난하거나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시인이고 시로써 그렇게 썼던 것이다.
수필 이외의 다른 장르에서는 그렇게 써도 된다고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필은 다르다. '진실을 기초로 하는 문학, 체험을 위주로 하여 쓰는 1인층 문학으로 출발을 했기 때문에 허구로 써서는 아니 된다. 이는 규칙이고 불문율이다. 어느 수필가가 허구로 '아버지의 별세'에 대하여 글을 써서 발표를 했다고 치자. 모르면 몰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소식을 듣고 마음으로 조의를 표하거나 부의금을 전달할 것이다. 그것이 나중에 거짓으로 써본 글이라고 말해도 곧이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수필은 출발을 허구가 아닌 진실을 쓰기로 정해놓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허구로 쓴 글은 작품으로서 생명력을 유지할 수가 없다. 이는 작가 정신에도 위배가 되지만 도덕성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전에 어느 작가가 '귓밥파기'라는 작품을 발표한 적이 있다. 많은 독자는 실감 있게 느끼고 체험한 일이 아니고서는 쓸 수 없는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작품을 쓴 작가가 스스로 그 작품은 사실이 아니고 지어 썼노라 토설을 했다. 그로 인하여 글이 빛을 잃은 건 물론이다.
진실을 무덤까지 가져갈 자신이 없으면 글에서 허튼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언급하고 넘어갈 문제가 있다. 바로 상상의 문제인데, 수필에서도 허용이 되고 있다. 지나치게 사실관계가 어긋나지 않는다면 수용 가능한 범위로 여긴다. 그것이 중요하고도 명백한 공지의 사실이나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한 허구라면 몰라도 단순히 상상에 그친 것이라면 시비대상은 아니다,
문제는 연득없이 스스로 발설을 하는 데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용인되는 범주를 벗어난 일탈된 글이다. 우리는 지금도 윤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는 노인'을 두고 진정성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불언귀부지(人不言鬼不知)’라는 말과 같이, 본인이 가부간 말이 없었으니 우리는 사실로 믿을 수밖에 없다.
허구의 사달은 대개 다음과 같은 때 일어난다. 별안간 증언자가 나타나거나, 당사자가 정직한 척 고백을 하여 “나는 사실 그 작품을 이렇게 썼다.”고 발설하거나, 어떤 계기로 나중에 그 거짓이 드러나는 경우이다.
작품 속 특정한 날에 내리지도 않은 비나 눈이 내렸다고 한다면 모를까, 다만 심상에 비추어 겨울비를 진눈깨비가 내렸다는 등의 서술(착오나, 기법 상으로나)은 충분히 수용 가능한 범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