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형도 채 마흔이 되기 전 우리 곁을 떠났다.
두 분 모두 큰 병을 얻어 오랜 시간 투병생활을 하였다.
나는 꿈속에서 아버지나 형을 종종 본다. 어쩌면 죽은 자와 산 자, 저승과 이승의 교감일지 모른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꿈속에서 보는 두 분 모두 살아생전 아픈 모습으로 보이는 것이다. 밝고 환한 표정이면 좋으련만 아픈 모습이다 보니 꿈속에서 그들을 향한 마음은 불안하고 어둡다.
내가 8살이었을까, 9살이었을까.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한 그 어릴 때, 나보다 네 살 아래인 여동생 성희는 내 등에 업힌 채 죽어갔다. 동생이 앓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이웃 마을로 일을 하러 간 그날 성희가 아무래도 이상하여 아이를 업고 어머니를 찾아갔다. 아이는 이미 축 늘어져 두 다리가 덜렁거리는 게 느껴졌다. 아이 얼굴은 잘 안 떠오르지만, 그때 덜렁거리던 두 다리의 느낌은 지금도 서늘하다.
항아리에 넣어진 아이는 뒷산 양지바른 곳에서 묻혔다. 왜 그때는 아이들이 죽으면 무덤을 안 썼는지 모르지만, 작은 흔적이라도 남겼더라면 가끔 찾아가기라도 하였을 것이다.
아이가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요즘 문득문득 성희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지난 밤 꿈속에서 아버지의 작은 승용차가 시골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차 안에는 몇 사람의 여자가 있었는데 작은 아이가 나와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아이에게 서너 발짝 떨어져 있던 나는 쪼그려 앉은 자세로 아이를 향해 안기라는 시늉을 하였다. 무슨 이름을 부른 거 같기도 한데 기억은 안 난다.
아이는 나를 바라보며 웃기만 할 뿐 낯설듯이 잠시 망설였다. 내가 먼저 다가가 앉아주자, 그제야 아이는 와락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이는 내 목을 끌어안은 채 안겨 있었다.
어찌 생겼는지 기억도 없는 성희, 나는 꿈속 아이가 성희일 거라고 생각했다. 성희를 보고 싶어 하니 아버지가 데려온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어디이고 아버지와 성희가 사는 세상은 어디일까….
꿈속의 아버지는 인근 순천에서 자그마한 사업을 하신다고 하였는데 역시 건강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만 여느 때처럼 내 마음이 크게 염려를 하거나 어둡지는 않았다. 서울로 올라가야 하는 나는, 아버지를 챙겨드릴 수 없어 동생에게 전화를 걸다가 꿈이 그쳤다.
돌아가신 아버지나 형이 꿈에서 아픈 모습으로 나타나면 다음 날 몹시 우울하였다. 당신들이 투병할 당시 겪었던 아픔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끄덕끄덕 살아 있는데, 왜 꿈에서조차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싶었다.
성희 꿈을 꾸고서야 깨달았다.
그들이 아픈 모습을 보이는 것은 나를 바라보는 그분들의 마음이라는 것을. 출판사를 운영하며 항상 허덕이는 내가 가슴 아픈 것이다. 힘들고 아파하는 내가 가엾은 것이다. 만일 출판사 운영도 잘 되고 아무 근심 없이 잘 살아간다면, 꿈속 그분들의 모습은 환하고 밝을 게 틀림없다.
나를 향한 짠한 마음이 아픈 모습으로 보인다는 걸 깨달았으니, 이제 꿈속에서 아픈 그들을 만나더라도 우울해하지 않을 거 같다. 죽어서조차 나를 염려하는 그분들의 사랑을 알았으니, 아픈 그들이 보일 때마다 더욱 자신을 추스르며 열심히 살아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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