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쓰기와 글쓰기…주어 명시와 시제 문제
어느 해 광복절, 일본 아베 총리가 내놓은 담화를 놓고 사죄와 반성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일었다. 특히 누가 누구에게 잘못했다는 것인지, 그 주어가 빠졌다는 것이다.
이는 수필 쓰기에서도 적용되는 문제이다. 누가 주된 입장에서 말을 하고, 쓰고 있다는 것을 표기해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주어를 생략해버린 글을 자주 본다. 글이 늘어진다는 이유로, 당연히 글을 쓰는 사람 자신을 지칭한다는 생각에서 주어를 생략하고 넘어가 버린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그 예를 보자.
“꽃을 들여다본다. 눈이 마주치며 환하게 웃는다. 꽃도 알아보고 활짝 웃는다. 그 바람에 얼굴이 밝아진다.”
이 경우, 누가 꽃을 보고 웃는지가 불분명하다. 자기가 웃는다는 것인지, 제삼자가 웃는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써놓은 사람의 말을 들으면 당연히 본인이 썼으니 당연히 다른 사람도 그렇게 여기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리 볼 수도 있지만, 그러나 글은 주어가 명확해야 한다. 앞글을 참고한다면 적어도 ‘꽃도 나를 보고 활짝 웃는다.’라고 해야 맞다. 그렇지 않으면 아베 총리가 ‘우리 일본이 사죄한다.’라고 밝히지 않아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고개가 갸웃해지고 모호하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다. 작품의 기교 상, 주어를 숨겨놓았다가 맨 나중에 밝히는 경우는 예외적으로만 써야 한다고 본다.
다음으로는 시제(時制) 문제인데, 시제를 명확히 하는 일은 출렁거리는 물에 떠 있는 배를 닻을 놓아 고정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시제가 오락가락하면 갈팡질팡하는 배처럼 안정감을 주지 못한다.
작품을 읽다 보면 시제가 오락가락하는 글을 만날 때가 있다. 과거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현재 이야기로 돌려세우고, 뒤죽박죽 써놓은 글을 보게 된다. 이것은 기교를 부린답시고 한 것 같은데, 아무렇게나 해서는 아니 된다.
‘하였다’가 ‘한다’로 바뀌려면 적어도 먼저 예고의 신호가 있어야 한다. 가령‘몇 년 전 본 경치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를 현재형으로 돌리려면 ‘아름다운 그 경치!’ 혹은 ‘어찌 잊을까.’ 식으로 완화시키고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나서도 그 현재형은 과거의 연속선상에서는 쓰여서는 아니 되며 클로즈업하여 묘사하는데 한정해야 한다. 물론, 상황이 바뀌어 현시제로 돌아와 다른 이야기를 붙일 때는 별문제이다. 어떻게 과거의 행동이 이어져서 지금의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겠는가. 글을 쓰는 사람은 과거의 이야기라도 현시점에서 쓰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